전지구적 이야기들을 하나씩 전하며: 아시아 미술 전시의 정치학과 시학
번역 전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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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국 회화 소장품 Chinese Painting from Japanese Collections》 전시 전경.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2014년 5월

 

아시아 미술과 유물의 수집, 분류 및 전시는 항상 미국의 사회정치적 담론과 얽혀 있었다. 미국인들이 아시아 미술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19세기 이래로, 개인과 기관은 식민주의와의 양면적 관계를 맺고 ‘서구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그들의 입지를 다질 뿐만 아니라 냉전 시대 중 그들의 영향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아시아 미술을 이용해왔다. 미국 박물관에서 아시아 작품을 취득하고 전시하는 결정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또는 실제 정치에서나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미술 전시들이 1970년대 이후로 재현, 에이전시, 정체성 등의 문제에 있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과 달리, 아시아 미술 전시들은 최근까지도 논쟁적, 비판적, 정치적인 측면에서 같은 층위의 사안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note title=”1″back] 전시 《20세기 미술에서의 원시주의 Primitivism in 20th Century Art》(뉴욕 현대미술관, 1984)는 미국에서 미술과 민족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1970년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최된 ‘흑인 미술’ 전시가 거리에서의 시위를 야기한 바 있다. 《미국에서의 현대 히스패닉 미술 Contemporary Hispanic Art in the US》(휴스턴미술관, 1988) 첫 전시 또한 광범위한 논쟁과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아메리카 원주민 미술과 오세아니아 미술 전시회를 향해서도 비슷한 비평적 접근이 논의되었다. 반면 아시아 미술의 경우 1980년대에 등장한 정체성 정치 논의와 ‘문화적 전쟁’ 논의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곧 다루겠지만, 1990년대부터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활동이 이 판도를 바꾸기 시작했다.[/note] 박물관은 동양 신화 영속화(perpetuation)의 역할을 스스로 지워나가면서도, 아시아 미술에 있어서는 정교하고 이국적인 전통의 결합을 지속했다. 여러 아시아 국가 정부들이 미국 내에서 자신의 문화와 예술을 홍보하기 위해 취한 전략(initiative)은 대부분 획일적이고 진부한 ‘국가 문화’관(觀)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러한 방식을 더욱 지속하였다.[note title=”2″back] 이러한 홍보는 19세기 후반 일본이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필라델피아 국제 박람회(1876년), 시카고 국제 박람회(1893년)에서 자신의 전시를 후원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일반적인 박물관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전시 방식은 수십 년 간 미국에서 아시아 미술이 수용되는 기반을 형성했다. 대만은 1950년대부터 미국과의 외교에 미술을 활용해왔다. 인도의 경우 1985년 미국 정부와 함께 《인도 축제 Festivals of India》를 공동 후원하며 인도 미술의 전통과 ‘현대성’을 보여주는 수십 개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1992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창립과 동시에 한국은 해외에 미술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으며, 박물관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전시회에 작품을 대여해주었다.[/note]

 

이와 같은 결점이 있는 박물관학은 아시아 ‘전통’ 미술의 전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재차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따른 것으로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구 감정가들과 큐레이터들에게는 유일하게 ‘진정한’ 아시아 미술로 인식되었다. 1990년대 아시아의 현대 및 동시대 미술이 주류 미국 미술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작품 선정, 구성, 작품 발표에 대한 비평이 빈번해지고 견고해졌다. 이는 곧 전시 형식 및 방법론의 개혁과 혁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변화의 가속화로 인해 실험적인 전시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는데, 그 중 다수는 명백하게 유럽중심주의를 전복시키거나 국적과 연대기의 신성한 분류를 깨기 위한 것이었다.[note title=”3″back] 《제 3의 사고방식: 아시아를 관조하는 미국 예술가, 1860-1989 The Third Mind: American Artists Contemplating Asia, 1860–1989》(뉴욕 구겐하임미술관, 2009)과 《아시아의 유령들: 동시대가 과거를 깨우다 Phantoms of Asia: Contemporary Awakes the Past》(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2012년 5월-9월)는 이러한 전시 중에서도 가장 야망이 넘치고 눈에 띄는 전시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추후 규모는 작지만 대담한 성격의 전시가 2008년 이후 급격히 확산되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어서 설명하겠다.[/note] 주요 미술관의 후원으로 대안적 전시 패러다임과 모델을 연구하는 심포지움과 컨퍼런스가 아시아 미술 큐레이터, 학자, 비평가들 사이에서 개최되기도 했다.[note title=”4″back] 구겐하임 전시가 개최된 뒤 일련의 심포지엄과 라운드테이블이 이어졌다. 그에 대한 기록은 2008년 『예술: 동시대 중국 미술학 논문집 Yishu: Journal of Contemporary Chinese Art』 7호, 2010년 9호로 출판되었다. 스미소니언박물관 또한 정치적 맥락에서의 역사적 조응과 최근 큐레이토리얼을 살펴보는 <미국 미술에서의 동서양 교류 East-West Interchanges in American Art>(2009년 10월 1일-2일) 심포지엄을 개최했다.[/note] 이처럼 아시아 미술을 새롭게 보여주고 해석하기 위한 활기 있는 노력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맞이하게 된 종잡을 수 없는 결과로 세계 경제에서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강대국의 영향력이 커졌다. 운 좋게도 세계 미술 시장에서도 아시아의 중요성이 점차 커졌는데, 이 또한 중요한 요인이었다.[note title=”5″back] 중국은 2011년에 미술품 최대 구매자로서 미국을 잠시 넘어섰으며, 그 이후로 2위를 유지했다. 한국, 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신흥 시장 또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Christie’s)는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에 아시아 지역 매출이 47% 증가하였음을 보고하였다.[/note] 독특한 역사와 정체성을 주장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숫자와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더욱 미묘하고 유동적이면서도 다양한 시각적 영토가 탄생하기도 했다.[note title=”6″back] 아시아 이민자들은 2009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이민자 집단이 되었다. 아시아계 미국 미술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시작되었으나, 동화(assimilation)에서 이질성으로의 전환이 강조되면서 최근 몇 년 간 급속하게 성장했다. 아시아계 미국 미술에 대해서는 본 논문 뒤에서 더욱 자세히 논하겠다.[/note]

 

그러나 실험적인 전시는 실제로 기존 전시보다 더 나은가?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전시들이 질문하고 재조합하는 문화적 정체성인가, 그들이 제안하는 사회정치적 의제인가, 아니면 선택된 작품의 새로운 매력과 변화된 이해의 측면인가? 이러한 목표들은 서로 양립 가능한가, 아니면 큐레이터들이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새로운 전시들은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현대성 대 전통, 동양 대 서양과 같은 오래된 이원항을 해체하고 아시아 미술과 미국인 관람객을 더욱 계몽적이고 진보적인 방식으로 연결하는가? 아니면 사실 그들은 진정한 동질성을 간과하고 피상적인 유추로 새로운 ‘타자’ 담론을 만들어낸 것인가? 광범위한 경향을 관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경우와 각 사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최근 여러 아시아 미술 전시를 세부적으로 변주하며, 각각의 의제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구현의 측면에서 정보적, 정서적 영향을 평가하며 연구해보겠다.

 

필자의 의견은 전시 리뷰가 아니다. 선택된 작품의 특성에만 집중하는 대신, 필자는 이러한 전시에 구현된 정치학과 시학을 관찰해보고 다양한 의도가 어떻게 서로 결합되거나 충돌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더 넓게 말하자면, 아시아 미술을 보고, 분류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어떻게 미술에서의 전지구적 서사의 가능성을 창조해내는지 밝히려 한다. 여기에서 논의할 전시들은 한정적이다. 이들은 번성하고 있는 미술 현장의 작은 예시일 뿐이며, 이로써 필자는 중국과 동아시아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 좁은 범위를 다룬다고 하여 아시아의 한 지역이 전체 대륙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강조하겠지만 다양한 작품을 ‘아시아 미술’이라는 하나의 그룹으로 칭하여 분류하는 것은 유럽중심적인 담론이며, 실제로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몇몇 전시에서 전통적인 연대기를 붕괴시키고 미술 생산과 유통의 정치를 드러내거나, 인구 통계와 문화를 혼합하는 전략에 의해 제시된 기회이자 난관은 아시아 미술 전시에 더 큰 반향을 일으킨다.

 

 

과거와 현재: 이분법을 타파하다(또는 구축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대화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을 뛰어넘고자 한 《잉크 아트: 현대 중국의 현재로서의 과거 Ink Art: Past as Present in Contemporary China》(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13년 12월-2014년 4월) 전시의 주요 주제였다.[note title=”7″back] 이 제목은 전자를 가리키며, 카탈로그에 실린 우 훙(Wu Hung)의 에세이 「동/서양 이분법을 넘어서서: 동시대 중국 수묵화의 짧은 역사 Transcending the East/West Dichotomy: A Short History of Contemporary Chinese Ink Painting」는 후자를 가리킨다.[/note] 새로운 의제를 제시한 것은 아니었으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같이 연대순 및 지리적 경계가 명확한 백과사전형 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유의미하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고자 했던 전근대 시대 전문가 큐레이터 맥스웰 헌(Maxwell. K. Hearn)은 미술관의 훌륭한 고대 중국 미술 소정품만으로 전시를 개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note title=”8″back] 맥스웰 헌은 2013년 12월 26일에 게시한 블로그 글을 통해, 전근대 미술을 위해 정비한 갤러리에서 작품의 크기와 매체의 폭넓은 범위를 수용하기 위해 그의 팀이 극복해야했던 역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Installing Ink Art’(http://www.metmuseum.org/about-the-museum/ now-at-the-met/features/2013/installing-ink-art).[/note]

 

미리 예고 받지 않은 관객의 경우, 미술관의 아시아 섹션이 시작되는 전시장 206호 입구에서 양 지에창(Yang Jiechang, 1956-)의 <우는 풍경 Crying Landscape>(2002)과 치우 즈지에(Qiu Zhijie, 1969-)의 <치우 지아와에게 보낸 30개의 편지 30 Letters to Qiu Jiawa>(2009)를 보고 놀라게 될 수도 있다. 벽에 고정된 치우 즈지에의 높이 16피트 삼면화는 전통적인 걸개 두루마리보다 몇 배가 큰 작품으로, 소용돌이 치는 초현실적 형태들로 채워졌다. 비슷한 크기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양 지에창의 작품은 라스베가스, 뉴욕 등 현대 도시의 화려한 모습을 콜라주함으로써 가장 호화스러웠던 우키요에 작품의 선명하고 보석 같은 색상을 발산해낸다. 이들이 자아내는 시각적 효과는 즉각적이고도 거창하다. 이들과 비교해보면 같은 방의 거대한 약사여래(Bhaishajyaguru) 벽화는 희미하고 약해 보인다. 관객은 몇 걸음 떨어진 옆 전시장에 있는 옛 거장들의 조용한 풍경이 치우와 양의 작품 옆에서 어떻게 비교될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잉크아트: 현대 중국의 현재로서의 과거 Ink Art: Past as Present in Contemporary China》 전시 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갤러리 206호, 2014년 3월
《잉크 아트: 현대 중국의 현재로서의 과거》 전시 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갤러리 206호, 2014년 3월

 

아마 이러한 이유로 큐레이터들은 과감한 병치를 피했을 것이다. 고대의 작품과 현대의 작품은 두 개의 주목할 만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더 이상 다른 전시장에 함께 배치되지 않는다. 첫 번째 경우는 애스터 코트(Astor Court)의 중앙 파빌리온 아래에 실제 태호석(太湖石) 대신 설치된 장 지앤준(Zhang Jianjun, 1955-)의 <공석 供石>(2008)인데, 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쑤저우(Suzhou) 정원을 재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note title=”9″back] 더 잘 알려진 작품이자 헌이 직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첫 번째 중국 현대미술 소장품으로 구매한 잔 왕(Zhan Wang, 1962-)의 <공석대신 장의 작품을 선택한 것 또한 흥미롭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는 잔의 작품이 75cm라는 점에서 위 전시에는 너무 작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잔은 더 큰 작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메트로폴리탄이 《잉크 아트》를 위해 몇 점을 대여하기도 했다. 더 그럴듯한 설명으로는,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잔 왕의 바위가 질감과 색상이 실제 바위와 더 흡사하여 장의 작품에 비해 정원과의 더 조화롭다는 이유를 들 수 있겠다.[/note] 밝은 보라색 실리콘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의 바위는 형태와 크기 면에서 실제의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놀랍게도 부자연스러운 색과 질감은 ‘설계되었다’는 정원 자체의 특성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전시된 전근대적 작품 사이에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몇몇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의 작업은 《잉크 아트》에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맥스웰 헌과 우 훙이 이를 광범위하게 ‘전통적인 회화와 붓글씨 개념을 참조한 것’이라고 정의한 바에 따르면 ‘먹의 미학’을 담고 있다. 작가가 참조한 것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한나라 항아리 Han Dynasty Urn with Coca-Cola Logo>(1994)는 실제 한나라 항아리의 옆에 놓였으며, 명나라 스타일로 개조된 <두 개의 다리를 가진 테이블 Table with Two Legs>(2004)과 <스툴 의자 Stool>(2007)는 그대로 보존된 명나라 가구 옆에 전시되었다. 장과 유사하게, 아이 웨이웨이의 중국 전통에 대한 관련성은 간단하면서도 도발적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것은 공명(共鳴) 또는 부활의 문제가 아니라, 약간의 영리한 전유(appropriation)에 있다.

 

비평가들은 《잉크 아트》에서 선택된 현대미술 작품이 광범위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구현된 전시가 어색하고 과도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미술 전시에서 현대과 전통을 결합하는 일은 얼마나 유효한가? 우선, 그러한 접근은 실용적인 수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활동 지역과 상관없이 현대미술가들은 화려하고 연극적인 족자 풍경화, 락소 도기(raku earthenware), 무굴제국 세밀화, 자바 섬의 바틱(batik) 등과 같이 가장 근대적인 아시아에 대한 미술계의 애호를 인식하고 이에 참여한다. 즉, 전자가 가장 현대적인 미술관에서 부티크 조명이 있는 깨끗한 벽에 설치된 것과 달리, 후자는 세밀하게 조정된 관람 환경에서 그 이점을 누린다. 개념적으로는 후자의 조합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매체, 모티프, 기법에서의 명백한 유사점은 동양이 신비하고 변치 않는 곳이라는 유구한 통념을 환기시킨다. 반면 아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과거로부터 현재로의 전환은 분리와 치환으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전통’에 대한 탐색은 종종 뚜렷하게 현대적이고도 민족주의적이었는데, 이는 서구화의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과정에 대한 반응이었다. 전통과 현대 사이의 이분법이 형성된 기존의 역사를 비틀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이항적 사고방식을 깨려는 모든 시도에 결정적이다.

 

《잉크 아트》가 과거와 현재를 결합한 최초의 전시는 아니었다. 이전의 전시들 또한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는데, 《아시아의 유령들: 동시대가 과거를 깨우다》(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2012)는 ‘아시아 우주론’, ‘신화, 의례, 그리고 명상’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더욱 야심차고 넓은 범위에서 동양 신화를 다루었다. 더욱 작고 좁은 범위에 포커스를 맞추고 프린트와 디지털 형식에 집중했던 《산과 강을 넘은 여정: 고대와 현대의 중국 풍경 Journey through Mountains and Rivers: Chinese Landscape Ancient and Modern》(캔자스 시티 넬슨-앳킨스 미술관, 2013년 2월-4월) 전시에서는 병치가 충분히 문맥화되지 않으면 노련한 관객을 당혹케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연대기적 전시가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잉크 아트》에서 장 지앤준과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배치는 명백한 의도로 이루어졌으나 그 작업과 기원에 대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낸다. 분명히, 취해지고 변형되는 대상은 고대와 이국의 전통에서 온 신령한 ‘본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티프 및 기법의 물질적 실재와 작가들이 한 일은 현대의 관객을 위해 그 본질을 복제하고 변형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시아와 다른 지역에서 현대 작가들이 과거를 활용하는 것은 종종 시대와 공간이 혼재되는 문화적 기억인 포스트모던적 전유와 패스티시(pastiche)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며, 향수(鄕愁)로부터 패러디까지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러한 [note title=”10″back] 주지하듯이,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포스트모던의 패스티시을 ‘풍자적인 충동’ 없이 후기 자본주의의 논리를 재현하는 블랙 패러디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학계는 이 개념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해왔다. 필자는 여기에서 패스티시가 보수적이면서도 비판적일 수 있으며 그 의미는 대부분 독자와 맥락에 달려 있다는 잉게보르크 후스터레이(Ingeborg Hoesterey)의 견해에 따르고자 한다.[/note]경로를 탐색하는 큐레이터들은 세심함을 강조해야 하며, 계승된 미학으로부터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속성이 탄생했다고 제시하는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가 ‘스스로 작업의 전 과정에서 원천들을 어떻게 의도적으로 선택하는지’, ‘위 선택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도판 2] 유 홍(Yu Hong, 1966-), , 2008. 캔버스에 아크릴, 4판넬. 250x1200 cm. 장 쉬안(Zhang Xuan, 713-755), 를 참조.)
유 홍(Yu Hong), <봄의 로맨스 Spring Romance>, 2008. 캔버스에 아크릴, 4판넬. 250×1200 cm. 장 쉬안(Zhang Xuan), <새로 짠 실크를 준비하는 궁녀들 Court Ladies Preparing Newly Woven Silk>를 참조.

 

위와 같은 전략을 따르는 아시아 미술 전시들은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10명의 중국 출신 이주 작가를 초대하고, 박물관 소장품 중 전근대 작품을 각자 선택하여 이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신작을 발표하도록 했던 《새로운 잉크: 작가 10인이 본 중국 전통 Fresh Ink: Ten Takes on Chinese Tradition》(보스턴미술관, 2010년 11월-2011년 2월)은 과거가 새로운 창조에 방아쇠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필자가 곧 다룰 전근대 아시아 미술 전시에 대한 일부 아시아계 미국 작가들의 최근 개입 또한 현대적 실천과 전통적 실천의 병치가 어떻게 인상적이고 쾌활하면서도 정치적으로 통찰력이 있는지 드러낸다. 《세 번째 사고방식: 아시아를 관조하는 미국 예술가 The Third Mind: American Artist Contemplating Asia》(뉴욕 구겐하임미술관, 2009)는 정확히 아시아 미술에 관한 전시는 아니었으나, 예술가들이 아시아의 ‘전통’을 모방하고 흡수하는 매개 과정에 주목한 야심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구겐하임의 나선형 원형 홀을 점령한 100점 이상의 작품들과 함께, 이 전시는 서예와 선불교와 같은 아시아의 종교적/예술적/철학적 전통이 어떻게 휘슬러(James Whistler)와 폴록(Jackson Pollock)에서부터 존 케이지(John Cage)와 테칭 시에(Tehching Hsieh)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예술가들에게 제재와 아이디어를 제공했는지 보여준다. 전시는 많은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도 미술계 학자들로부터 강하게 비난받았다. 무엇보다도 비평가들은 아시아 미술과 문화 및 사상에 대한 미국 예술가들의 관련성이 전시회에서 ‘피상적(superficial)’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러한 비판은 큐레이터였던 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onroe)가 자주 대응해야 했던 일이다. 비평은 정당했지만, 어떤 면에서 그러한 피상(superficiality)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사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화의 혼란 속에서 대대적으로 재발명되고 서구화에 안티테제로 묘사되는 소위 ‘아시아 전통’과 아시아 및 다른 지역의 숱한 현대 작가들이 갖는 관계의 특징이다. 따라서 현대 작가들의 과거에 대한 접근은 단편적이고 왜곡되기 마련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도 작가들 스스로의 미학과 의제로부터 동기를 부여 받는다. 《세 번째 사고방식》은 이처럼 ‘피상적’이면서도 굉장히 생산적인 관계를 인정하며, 과거가 지속적으로 현재에 의해 재구성되고 명확해진다는 예술의 비선형적이고도 공명적인 이야기를 말해준다.

 

 

시학 또는 정치학: 작품의 매혹과 유래

 

《일본의 중국 회화 소장품》(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2014년 5월-7월) 또한 비유럽/미국 중심적 관점을 통해 다시금 과거를 보여주고자 했다. 도쿄 문화청의 후원으로 개최된 LACMA의 본 전시는, 관장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중국 회화 수집사를 돌아보는 미국 최초의 대형 전시’였다. 전시 작품 35점 모두 일본 박물관으로부터 대여한 것이었으며, 그 중 15점은 일본 정부에 의해 ‘국보’나 ‘중요 문화재’로 분류된 것으로서 해외 반출이 거의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이를 미국으로 들여와 동시에 한 곳에서 전시하고자 했던 지대한 노력을 감안할 때, 큐레이터들이 작품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했다. 희미한 조명의 전시장은 조용한 사원과도 같았고, 각 작품의 두루마리는 엄격하게 짠 진열장 속에서 따뜻한 빛을 뿜는 개별 조명을 받았다. 월텍스트는 최소한으로 유지되었는데, 입구의 서문을 위한 몇 단락을 제외하면 각 작품에는 일본 문화재 순위만이 담긴 기본 라벨이 붙어 있었다. 한편, 전시와 동명의 카탈로그는 정교하고 학술적이었다. 큐레이터들은 각 작품의 유래에 대해 광범위하고 세밀한 조사를 진행해왔다.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문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구성이었다. 관람객들은 주의 깊게 작품만을 바라보며, 황홀함과 경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전시 구성에서의 미적인 쾌감은 배후에 거대하게 자리한 정치적 비용 덕에 성취되었다. 필자는 이 전시를 아시아 미술계뿐만 아니라 아시아 내 국제관계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있어 중요한 테마였고, LACMA 전시 자체의 방아쇠이기도 했던 ‘아시아 국가 간 교류 강화 및 쇄신’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note title=”11″back] 큐레이터 스티븐 리틀(Stephen Little)은 호놀룰루미술관 재직 중(2003-2011년) 일본 학계로부터 부분적 후원을 받아 중국과 일본 미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련의 심포지움을 개최했다.[/note] 탈식민주의 이론과 아시아학에 영향을 받아 아시아 미술사학자들과 큐레이터들은 동양-서양이라는 이분법에서 탈피하여 1990년대 이후 아시아 내 미술의 순환과 혼합을 연구하고 촉진하는 데에 집중하였다.[note title=”12″back] 미술의 이러한 트렌드는 아시아 지역주의와 범아시아 연구의 부활과 동일 선상에 있다. 호미 바바(Homi Bhabha)나 왕 후이(Wang Hui)와 같은 학자들은 1990년대부터 아시아 미술 평론가, 미술사학자, 큐레이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케우치 요시미(Takeuchi Yoshimi)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Asia as Method, 1961」는 중요한 전시인 《공사 중: 아시아 미술의 새로운 차원 Under Construction: New Dimensions of Asian Art》(후쿠오카미술관, 2002)에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note] 지난 수십 년 간 아시아 박물관, 비엔날레, 예술가 공동체, 미술사 연구의 급성장은 지역 정체성 발전과 생산적인 만남을 위한 장소 제공을 목표로 하는 아시아 국가 간 네트워크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note title=”13″back] 현재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35개의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가 개최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시작되었다. 2012년 광주 회의 <이동하는 중력:  제 1회 세계 비엔날레 포럼  Shifting Gravity: World Biennials Forum No. 1>은 특히 ‘비엔날레의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엔날레를 제외한 초국적 네트워크 또한 동남아시아에서 급증했다.[/note] 그러나 이러한 네트워크는 공통점과 다양성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디디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계층화된 대륙 내에서 중앙과 주변부의 계급구조를 다루고, 국가들이 주변국과 충돌할 때 실제 정치적 상황에 반응해야 했다. 반면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내 국제관계에 깊이 관여해왔고, 동맹국들을 적과 구분 짓는 전략에 미술을 항상 활용해왔다. 미술의 자율성과 중립성은 더욱 미묘하고도 효과적인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다. 특히 미국 내 중국/일본 미술의 소장품과 감정은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문화적 인식에 관련되어 있다. 3국의 역사적 관계뿐만 아니라 현재 관계와 긴장감을 고려할 때, 일본이 소유한 중국 미술품을 미국에서 전시함에 있어 그 기원과 출처 및 소유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 제기는 유관 관계자들이나 그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황홀감을 무너뜨릴 위험의 소지가 있다.

 

시각적인 장관으로부터 생산되는 ‘경이의 순간’을 사라지게 하지 않고 ‘미술품의 제작 조건과 전용(appropriation), 전시를 하게 된 과정’ 등을 작품과 다시금 연결하는 방법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몇 가지 대안을 상상해볼 수 있다. 위 전시는 추가적인 작품과 텍스트를 통해 어떻게 일본 미술가들이 8세기가 넘도록 지녀온 중국 미술품을 모방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며 변형시켰는지 보여줄 수도 있었다.[note title=”14″back] 카탈로그는 이러한 과정의 많은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명나라 화가 장 뤼투(Zhang Ruitu)의 작품 한 점에 일본 에도시대 화가 두 명의 동일한 복제본들이 함께 배치되었다.[/note] 또한 전시 작품들이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예술 규범이 형성되고 개혁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여줄 수 있었다.[note title=”15″back] 일본 수집가들이 원한 작품들은 현대 중국인 감정가들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 수집가들은 19세기 후반부터 근대 중국미술사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현대 ‘국보’와 ‘문화재’의 계층 구조는 유럽과 미국 수집가들의 적극적인 작품 구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20세기 초 일본 정부에 의해 구축된 것이다.[/note] 마지막으로, 중국에서의 창작 연대기를 따르는 대신 일본으로의 이동과 관련된 시대 및 조건을 중심으로 큐레이팅을 진행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수집 과정의 변화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초기 일본의 중국 미술 매입이 주로 불교 순례자, 상호무역 및 선물 등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마지막 대규모 소장품은 일본이 오랜 시간 존경해왔던 중국을 꺾은 청일전쟁(1894-1985) 시기와 중국 신하들이 황실의 소장품을 숱하게 팔아넘기고 고고학적 현장에서의 약탈 또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1911년 청나라의 몰락 사이에 들여온 것이었다. 중국 미술품 구매로 (일본) 수집가들은 취향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해왔으나, 마지막 소장품으로써 확실히 개인적 및 국가적 긍지를 갖게 되었다. 일본은 더 이상 중국의 아래에 있지 않았고, 일본인들은 중국 미술을 부와 권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치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유럽 회화 소장품은 도쿄에서 굉장한 유행을 이끌었다.

 

20년 전 비샤카 데사이(Vishakha N. Desai)는 미국의 아시아 미술 전시에 적절한 맥락이 없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큐레이터나 수집가들이 작품 본래의 위상을 상기하지 않은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중국 회화 》를 포함한 많은 아시아 미술 전시들은 그러한 문제(the reluctance)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숱한 프로젝트들은 수집에 대한 연구 증가와 (아마도) 미술품 본국 귀환에 대한 수요 증가 덕분에 그 주문(spell)에서 탈피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의 전시 《아시아 미술의 보물: 록펠러의 유산 Treasures of Asian Art: A Rockefeller Legacy》(2012)에서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가 창립자 존 D. 록펠러 3세(John D. Rockefeller III)의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이후 아시아 미술 수집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기를, ‘선의에 의도했으나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라 지적했다.[note title=”16″back] 존 D. 록펠러 3세는 자신의 소장품을 통해 ‘아시아와 미국의 관계에 중요성과 기회를 불어넣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시 사이트로는 http://asiasociety.org/texas/exhibitions/를 참조하라. 그의 수집 활동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Abe Stanley K., “Rockefeller Home Decorating and Objects from China.” In Collecting China: The World, China, and a History of Collecting, edited by Vimalin Rujivacharakul(Newark: University of Delaware Press, 2011), 107–23.에서 확인할 수 있다.[/note] 게티 재단(Getty Foundation)은 아시아와 그 외 지역의 미술품 및 유물이 국제적 수준에 오르기까지의 궤도를 톺아보는 《바다를 연결하다: 발견과 만남의 시각적 역사 Connecting Seas: A Visual History of Discoveries and Encounters》(2013–2014)와 《미술의 삶: 맥락, 수집, 그리고 전시 The Life of Art: Context, Collecting, and Display》(2012년 2월부터 전시 진행 중) 등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프리어 앤 새클러 갤러리(Freer and Sackler Gallery)는, 특히 《고대 중국에 대한 한 인간의 탐구: 폴 싱어 소장품 One Man’s Search for Ancient China: The Paul Singer Collection》(2013), 《낯설고도 경이로운 것: 로버트 J. 델 본타 소장품의 인도 판화 Strange and Wondrous: Prints of India from the Robert J. Del Bonta Collection》(2013–2014), 《여행자의 눈: 아시아의 풍경들 The Traveler’s Eye: Scenes of Asia》(2014년 11월-2015년 5월)과 같은 전시를 통해 미술품을 현장으로 이끈 인물과 사건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전시들의 대부분은 작품의 이동과 획득을 설명하는 측면에서 기념될 만하다. 그러나 《낯설고도 경이로운 것》은 비판적인 시각을 취한다. 이 전시는 16-20세기 사이 유럽과 미국에 유통된 인도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시각적 이미지가 이국 문화의 매력을 이끌어내면서도 크나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각화된 ‘지식’이 유럽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켰고 식민 지배를 손쉽게 하였는지 보여준다. ‘종교적 전통의 해석’과 ‘징표로서의 시바’와 같은 섹션은 서양인들이 기독교와 그리스 신화의 틀 속에서 힌두 신화를 ‘교화시킨’ 방식을 확연히 드러낸다. 반면, ‘통제 수단으로서의 미술’과 ‘숭고한 의식들’은 식민주의에 대한 비난에서 좀 더 무겁고 논쟁적으로 나타난다. 작지만 세심하게 구성된 이 전시는 같은 날 프리어 앤 새클러 갤러리에서 오픈하여 이전에는 대부분 함께 전시된 적이 없었던 그로테스크한 형상부터 천상의 자세까지의 요가 관련 작품을 100점 이상 선보인 《요가: 변신의 예술 Yoga: The Art of Transformation》만큼 관심 받지 못했다. 《낯설고도 경이로운 것》은 이전 서양인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몇몇 요가 자세의 극단적 고행이 어떻게 20세기에 들어 그들에게 익숙한 ‘낭만적인 갈망’과 더욱 ‘단조로운 자세’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전시는 《요가: 변신의 예술》에 대한 보도와 관심에 완전히 가려졌다.[note title=”17″back] 《요가: 변신의 예술》 전시 비평의 예시로는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Holland Cotter 2014년 1월 2일),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The Los Angeles Review of Books, Ann Louise Bardach 2014년 9월 4일), 그리고 특히 칼리지 아트 어소시에이션(College Art Association, Stephanie E. Rozman 2014년 12월 11일)을 참조하라. 《요가》가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과 클리블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에서 개최된 것과 달리, 《낯설고도 경이로운 것》은 프리어 앤 새클러 갤러리에서만 전시되었다.[/note]

 

결국 이 불일치는 실제 박물관학에서 시각적 장관이 정치적 맥락에 항상 우선할 것임을 시사하는가? 그럴 수도 있다. (두 전시의 규모와 이를 다룬 매체들은 각각의 매력을 강조하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큐레이터는 각 전시를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며, 바라건대 동시에 전시를 개최하지 않고 번갈아 선보아야 한다. 반면 교훈적이고 진지한 태도 대신, 정치적인 것은 고무적이고도 쾌활할 수 있다. 일례로 치락 바크타(Chiraag Bhakta)는 《요가: 변신의 예술》 순회 전시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에서 개최되었을 때, 역설적인 프로젝트 <백인들이 요가를 한다 White People Doing Yoga>를 기획하였다. 그는 요가가 짧게 유행했던 수십 년 간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Bay Area)에서 모은 것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 쌓아 요가의 상품화와 ‘화이트워시(whitewash)’를 짚고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그가 갖던 요가와의 양면적 관계를 밝힌다(작품 ‘힌디어를 해서 죄송합니다 Pardon My Hindi‘). 이러한 지역 중심의 접근법은 작가의 태도를 더욱 친숙하고도 신랄하게 만든다. 결국 그가 사물을 맵핑하고 추적하는 과정은 사물 각각의 아우라를 약하게 만들지만, 또 다른 종류의 불가사의한 순간을 창조해낸다. 방대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과 미술 사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강력하고 복잡한지를 친숙하고도 비판적으로 관찰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 그 연결고리가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미술은 인간을 연결한다.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다: 퍼포먼스에서의 정체성들

 

《이면: 중국인과 멕시코인의 미국 이민 The Other Side: Chinese and Mexican Immigration to America》(패서디나 퍼시픽 아시아 미술관, 2014년 2월-7월)은 전시 팜플렛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이민의 역사를 인정하고 검토해보기’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작가 5인의 작품 8점만을 내보인 전시였다. 그러나 관객이 전시 초반에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놀라울 만큼 부드럽다. 훙 리우(Hung Liu, 1948-)의 2005년작 <정원에서 In the Garden>와 2006년작 <차이나 메리, 와이오밍 China Mary, Wyoming>은 야외를 배경으로 노년의 아시아 여인 두 명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들은 처음 보았을 때 미숙하게 느껴진다. 붓질은 무겁고 눈에 띄게 서투른데다 몇 방울 떨어진 물감이 번져 있다. 등장인물들은 헤진 옷을 입은 소박한 모습이지만, 이들 주변에는 무지개 빛깔의 비눗방울과 꽃과 새가 가득하다. 화려한 꽃과 새들은 비슷한 주제의 중국 전통 회화를 연상케 한다. 브로셔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작품 속 두 여인은 각각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서 성공한 지역사회 일원이 되기 위해 역경을 극복해온 초기 이민자 폴리 베미스(Polly Bemis, 1853-1933), 차이나 메리(China Mary, 1836-1906)이다. 비눗방울, 꽃과 새, 극히 평범한 희망과 꿈의 상징, 아름다움과 여성성은 두 여성의 거친 외모보다 더 생기 있고 아름다운 인생의 이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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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 리우, <차이나 메리, 와이오밍>, 2006. 캔버스에 유채, 36×24 cm

 

훙의 작품은 전시에서 유일하게 구상적이다. 즈 린(Zhi Lin, 1948-)의 <1865년 캘리포니아 케이프 혼에서의 끔찍했던 여름, 중국 노동자들의 센트럴 퍼시픽 빌딩 Bloody Summer, Cape Horn, California, 1865, Building of the Central Pacific by Chinese Workers>(2013)과 토니 데 로스 레예스(Tony de los Reyes, 1960-)의 <국경 이론 Border Theory> 연작(2012)은 모두 작품의 내용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추상표현주의의 시각적 화려함을 활용하며, 회화적 면의 분리를 위해 선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자의 선은 후자의 선에 비해 좀 더 확연히 정치적 성향을 띤다. 즈의 경우 톱니 모양의 수직선이 중국 노동자가 건설한 철도를 떠올리게 하며, 레예스의 작품에서는 지그재그 모양의 선이 두 그룹의 인구가 혼재되어 충돌하는 미국-멕시코 국경과 유사점을 보인다. 안드레아 보워스(Andrea Bowers, 1965-)와 마가리타 카브레라(Margarita Cabrera, 1973-)의 작품은 심지어 실제 정치에 더욱 큰 기반을 둔 이미지와 대상을 차용했다. 국경을 넘는 동안 살해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철조망, 국경 정찰대 유니폼으로 만든 선인장 조각, 흐릿한 흰 배경에 대비되어 흔들리는 새빨간 실루엣, 즉 2012년 5월 로스앤젤레스 시위에서의 이민자 연합(Immigrantes Unidos)’ 배너가 등장하는 비디오 등이 그것이다.

 

히스패닉 인구가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큰 인종 그룹인 곳이자, 중국인이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닌 지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보다 《이면》을 개최하기에 더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두 개의 다른 디아스포라 서사를 병치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note title=”18″back] 아시아퍼시픽미술관은 2009년에 22명의 작가가 참여한 《캘리그라피티: 동시대 중국 미술과 라틴아메리카 미술에서의 글자들 Calligraffiti: Writings in Contemporary Chinese and Latino Art》을 개최하기도 했다. 5인의 작가들은 협업하여 중국 문자와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그래피티를 조합한 거대 벽화를 만들었다.[/note] 그리고 큐레이터들이 예상한 방식을 통해 얻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전시의 성과는 계몽적이었다. 주최자가 두 그룹 사이의 공통점을 강조할 때, 작품들은 각자 다른 관심사와 감성, 시각적 전략을 넓은 관점에서 보여주었다. 1세대 이민자였던 중국인 화가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스타일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기렸으며, 젊지만 미국에서의 뿌리가 더 깊은 히스패닉 작가들은 더욱 개념적이고 대립적인 언어로 최근의 이슈를 다루었다. 이러한 대조는 (아마 우연히) 중국인 이민자들이 직면했던 차별이 과거의 것으로서 기억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반면, 히스패닉 커뮤니티는 여전히 그러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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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데 로스 레예스, <경계 압축 #1 Border Compression #1>, 2012, 린넨에 염색과 유채, 7×10 ft

 

디아스포라와 하이브리드는 몇 년 간 문화예술계에서 중요한 슬로건이 되었으며, 《이면》과 같은 전시는 그러한 주제를 둘러싼 예술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어떤 기회와 어려움이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디아스포라’라고 불리는 것 내에서도, 각자의 배경과 (이민) 기간, 교육에서 차이점을 보이는 작가들을 전시할 경우 연관성을 드러낸다기보다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러한 괴리는 넓은 범위의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지니면서도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이주의 궤적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포괄하려 한 용어 ‘아시아계 미국인’ 자체의 심층적인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들이 유일하게 지닌 공통점은 이전부터 현재까지 유구하게 존재하는 ‘계급화’와 그로부터의 오명일 것이다. 디아스포라를 탐구하는 전시는 주류 사회와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그에 포함된 동질성과 모순을 포함해야 한다.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처음부터 아시아계 미국인 미술에서 중요한 주제였으며, 항상 논쟁거리였다. 여타 많은 소수자 미술과 마찬가지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미술은 단결과 단체 교섭 정신을 통해 그 존재를 확립했으나 곧 그러한 전략적 집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다변화되는 개인주의에서의 ‘포스트 정체성(post-identity)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명백히 《이면》는 전자에 속한다. 이는 하나의 민족적 집단을 넘어서서 연대의 기치를 확장하였으나, 고상한 정치적 의제는 개인마다 다르게 겪은 이질적 경험의 결합으로 인해 어느 정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시각적 용어로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제한되거나 균질화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전시에서 디아스포라를 구성하여 보여줌으로써 정체성의 개념을 뒤엎고 재구성할 수 있다. 《아웃사이드 인: 중국x미국x동시대 미술 Outside In: Chinese x American x Contemporary Art》(프린스턴대학교 미술관, 2009년)는 작지만 학술적인 전시로서, 미래의 정체성으로 예견된 내용을 다루었다. 중국 태생 이민자 3명, 미국 태생 중국인 1명, 베트남인 1명, 유대인 1명 등 다양한 인종 및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섯 명의 미국인 예술가가 중국 미술의 복잡한 역사를 함께 다룬 이 전시는 무엇이 미술에서의 ‘중국성(Chineseness)’을 구성하는지 재정의하였다. 또한 세계 시장에서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확실히 알리며 유명세를 얻은 전시 《인사이드 아웃: 새로운 중국 미술 Inside Out: New Chinese Art》(1998-2000)의 제목을 유머러스하게 뒤집었는데, 《아웃사이드 인》 또한 평범함보다 눈에 띄는 새로움을 더 가치 있게 보는 현대미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1세대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만을 조명하고 일관성을 위해 ‘아시안’ 주제에 집중했던 《아시아/아메리카: 동시대 아시아 미술에서의 정체성들 Asia/America: Identities in Contemporary Asian Art》(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1994년) 등 이전에 개최된 획기적인 전시와 비교하면, 《아웃사이드 인》이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은 파괴적이면서도 재건의 특성을 보인다. 전시는 예술가가 민족성과 출생지에 무관하게 ‘중국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러한 정체성은 미국인, 유대인, 또는 포스트모던과 같은 정체성과도 양립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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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처니(Michael Cherney), <선택된 원천 이미지(부채 모티프), #1a Selected Source Images(Fan Motif), #1a>, 2005, 사진, 프린트, 인감, 18×40 cm

 

이미지의 순환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짐에 따라, 혼종성은 오늘날 미술계의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 ‘현대적’인 것이란 경향과 원형을 흡수하고 변형하거나 우회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현재 ‘미술계’라고 불리는 것의 주변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이다.[note title=”19″back] 테리 스미스(Terry Smith)는 그가 현대미술의 결정적 속성이라고 여긴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을 ‘예술을 초월한 현재 세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보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용어로 정의하였다. 이는 작가들이 전시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상태지만, 필자는 세계 상황이 미술을 통해 중재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작가들 간의 경쟁은 결국 각자의 관찰과 반응에 달려 있다고 본다.[/note] 이러한 맥락에서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구조와 성과가 되어야 하지만, 역사적, 지각적, 재생적인 실제 트라우마 및 문제점들과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 《전쟁 세대/사생아: 아시아계 혼혈 미국인 미술 War Baby/Love Child: Mixed Race Asian American Art》(시카고 드폴대학교 미술관, 2013년, 시애틀 아시안 퍼시픽 아메리칸 윙 루크 박물관, 2013년-2014년)은 민족적으로 정의된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는데, 그 정체성은 이미 모호함과 모순으로 가득하다. 이 전시회는 충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통해 전쟁 중 출생한 일본계 미국인 전쟁 세대부터 시민권 운동 시대의 사생아까지, 다양한 아시아 혼혈 미국인 집단에 체화된 역사적 기원과 인종 간 갈등을 분명히 함으로써 ‘정체성의 정치’ 논의를 회피한다.[note title=”20″back] 12명의 학자에 의한 글과 작가 19명과의 인터뷰는 동일한 제목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전시에서 소개되지 않았다. 드폴(DePaul Art Museum)의 경우 원래의 짧은 텍스트가 전시되었으나, 시애틀(Wing Luke Museum of the Asian Pacific American Experience)의 경우 인터뷰 부분이 더욱 자세히 설명되었다. 두 전시 모두 오프닝과 전시 중에 작가들을 초청하여 각자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도록 했다.[/note] 참여한 작가들의 인터뷰와 작품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전쟁 세대/사생아》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정체성을 피할 수 없는 것이자 인위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방식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아시아성(asianness)’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면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직업적인 측면에서 평소 생활까지 다양한 단계를 거치며 이와 관련된 문제를 떠맡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대응 전략 중 하나는 ‘알로하’와 같은 경멸적이고 정형화된 용어를 연극적이고 과장된, 또는 모순적인 방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실제로나 이론적으로나 새롭지는 않았지만, 정체성의 후기식민주의 구조를 드러내고 파괴하는 효과는 검증받았다. 또한, 각 퍼포먼스에 수반되는 역사적 특수성은 그들의 비판적 힘을 강화시켰다. 

 

[크기변환]도판 7
데브라 예파-파판(Debra Yepa-Pappan), <헬로 키티 천막집(별이 빛나는 밤) Hello Kitty Tipi(Starry Sky)>, 2007. 디지털 프린트, 20×18.5 in

 

실제로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들은 박물관의 아시아 미술 전시 판도를 바꾸는 데 점점 큰 역할을 했는데, 그들의 영향은 대항적이고 영리하면서도 실제적이었다. 바크타의 <백인들이 요가를 한다>는 이러한 실천의 좋은 예시이다. 캘리포니아 기반의 예술가 스캇 쓰치타니(Scott Tsuchitani) 또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포스터, 전단지, 웹사이트 등을 만들어 정치적 이해가 부족했던 게이샤, 사무라이, 티베트 미술 이미지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을 고발했다. 그는 이를 박물관 기념품점에 붙이고, 웹사이트에 업로드하여 미디어 백래시로서의 역할을 부여했다.[note title=”21″back] 바크타의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은  http://pardonmyhindi.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그의 작품을 소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해준 스캇 쓰치타니에게 감사를 전한다.[/note]  쓰치타니와 바크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박물관학에 유쾌함을 부여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두 작품 모두 전시된 이미지의 역사적 복잡성을 보여주며, 작품 내에서 장난스럽게 혼합된 이미지 콜라주는 감상자들로 하여금 박물관 전시의 뒷이야기를 돌아보게 한다. 동시에 전시를 위해 선택된 작품들을 더욱 미묘하고 비판적이며 반사적인 방식으로 읽어내도록 한다. 일례로 쓰치타니의 전시 《사무라이 Samurai》에 대한 모의 웹사이트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여 사무라이 문화나 다도의 영광 뒤에 숨겨진 잔혹한 군국주의, 성적 착취, 한국인 장인들의 노예화에 관련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미술의 형태가 어떻게 ‘동양’의 모범적인 예시로 여겨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위와 같은 정보는 관객을 유치해야 하는 박물관의 목표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직 잔존하는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아시아가 이질적이거나 불가해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고, 아시아 이외에서 아시아의 스펙타클과 어두운 과거를 동시에 알리기 위해 필요하다.

 

스캇 쓰치타니(Scott Tsuchitani), 《Lords of the Samurai》 포스터,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2009. 스캇 쓰치타니(Scott Tsuchitani), , 2009.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스캇 쓰치타니, 《사무라이의 제왕 Lords of the Samurai》 포스터, 2009,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결론, 또는 이 세계를 어떻게 미술관으로 옮길 것인가

 

오늘날 세계 미술관이 행해야 할 올바른 역할이란 무엇인가? 의제는 다각적이더라도, 미술관들은 특히 동떨어져 있는 것과 소외된 것에 대한 전시를 통해 보는 것을 넘어 ‘알 수 있게’, 감탄하는 것을 넘어 ‘질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십 년 간 미국에서의 아시아 미술 전시는 그 반대의 과정을 추구해왔다. 그들은 전시를 하면서도 이국적이고, 신비로우며 합리적인 이해를 넘어선 것을 선보였다. 최근 전시들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지만, 물리적 맥락과 역사적 맥락에서 작품의 본래 위치를 찾는 데에는 주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이분법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은 때로 영원한 ‘타자’의 신화를 강화하기도 한다. 필자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듯이, 이러한 문제점은 선택된 대상 연구에 대해 의지가 부족하거나 무능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큐레이터들이 단순히 호소력 있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려 한 것 또한 아니었다. 때로 비서구 미술품의 수집, 선정 및 전시와 관련된 정치적 측면을 다루는 데 있어서 주저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최근 몇 년 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심미적 매력으로 쉽게 전환되곤 하는 ‘이국성(foreignness)’을 근본적으로 유지하는 미국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한 주저함은 극복하기 어려우며, 《낯설고도 경이로운 것》와 같은 전시가 제안한 바와 같이 정치에 대한 너무 명백하게 설명은 미술을 역사 수업의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신중하고 위트 있는 태도로 아시아 미술 전시를 기획한다면 이는 계몽적이고 매력적일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분석한 사례들은 여러 생산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고대와 현대가 병치될 때, 그들의 연결은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드러나야 하며 그 대조는 일관성의 정도와 동일하게 중시되어야 한다. 대상의 수집, 순환과 변화하는 해석은 그것이 현대 사회와 정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만큼이나 각별히 주의와 함께 고무적이고 활기 있게 묘사될 수 있다. 디아스포라와 혼성에 대한 전시에 있어 그들의 이질성, 경계 넘기, 실행성은 적절한 맥락에서 인식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큐레이터는 작품을 고립된 대상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배경을 지니며 각기 다른 세대를 살아온 예술가, 후원자, 수집가, 감정가, 인구 통계의 각 부분을 이루는 서로 다른 그룹, 그리고 박물관 그 자체 등 숱한 주체들이 만나고 협업할 뿐만 아니라 협상하고 충돌하는 지점으로 삼아야 한다.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미술에 대한 ‘세계적인’ 관점을 구축하는 데 가장 열성적인 인물로서, 완벽한 세계 미술사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최초로 논의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선, 우리는 왜 세계 미술사를 필요로 하는가?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다문화주의가 지방제일주의(provincialism)보다 더 공정하고 바람직해 보이며, 세계화는 오늘날 모든 학문 분야가 해결해야 하는 저항 불가능한 경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답변은 여전히 미술과 미술사 자체에선 외부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로는 이미지와 대상 자체의 충분한 이동성과 다중성, 즉 이들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그 과정에서 형태와 의미가 변화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종종 서구 미술관의 목표가 되는 ‘궤적과 변형을 추적하는 역사’는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연결과 갈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먼저 인정하자면, 그러한 역사는 절대 완벽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이 ‘전지구적 이야기’들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이며 종종 불쾌한 정치의 일면과 얽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스펙타클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더욱 시적이며, 의미 있는 이야기들로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