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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특정성 이후를 프리드로 읽기: 화가로서의 제프 월, 사진가로서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번역 김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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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월, 〈죽은 병사들은 말한다(1986년 겨울 아프가니스탄 모코르 부근에서 소련 정찰군이 매복 공격을 당한 후의 광경)〉, 1992, 228.92cm x 416.88cm, 슬라이드 필름.

 

19661967년 경의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에 따르면[note title=”1″back] 이 글의 ‘화가로서의 제프 월, 사진가로서의 게르하르트 리히터’라는 부제는, 프리드를 여전히 저명한 미술이론가이게 하는 초기 비평 및 이론과 그의 최근 행보인 ‘사진적 전회’와의 관계를 고찰하는 나의 더 긴 글로부터 도출된 것임을 밝혀 둔다. 아울러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받은 레버흄 재단 리서치 펠로우십의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note], 미술은 질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매체 최고의 성취에 비견될 탁월함즉 그 매체의 범례일 수 있을 탁월함을 추구한다.[note title=”2″back] 마이클 프리드의 “Shape as Form: Frank Stella’s New Paintings,” originally published in Artforum 5 (November 1966), 18-27과 “Art and Objecthood,” originally published in Artforum 5 (June 1967)를 참조하라. 마이클 프리드의 『미술과 사물성 Art and Objecthood』(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98)에는 그의 초기 비평에 관한 중요한 회고적 서문과 함께 두 글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note] 하지만 뒤따르는 가능성을 고려해보라. 사진이 지난 회화에서의 최고의 성취에 비견되어야 한다면, 프리드의 판단에서 사진은 최고의 회화일 수 있는가? 반대로, 지난 사진에서의 최고의 성취에 비견되는 화가라면, 프리드의 판단은 그를 위대한 사진가이게도 할 것인가? 여러분은 분명 그렇게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사진이나 회화가알려지기로는개별적 매체 안에 있는 이상, 일정 매체의 범례로 간주되는 무언가가 매체에서의 지난 성취와의 비교를 성립시키는 ‘확신을 촉구’한다면, 지난 회화에 비견되는 사진이나 그 반대의 경우란 사전에 봉쇄되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에 동조하는[note title=”3″back] 스탠리 카벨의 The Claim of Reason: Wittgenstein, Skepticism, Morality and Tragedy(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9)에 수록된 “Natural and Conventional,” 86-125와 The World Viewed에서의 “Excursus: Some Modernist Painting”를 사례로서 참조하라. 또한 카벨의 Must We Mean What We Sa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6)에 실린 “Music Discomposed”와 “A Matter of Meaning It”을 참조하라.[/note] 초기 프리드는, 우리에게 무엇이 일정 매체의 예증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를해당 매체로 이루어진 지난 실천과의 ‘명징한 관계perspicous relation’를 지닌 것으로서가 아닌선험적인 것으로 논할 능력은 없으며, 그 예증이란 자신을 드러나게 만드는 매체 발달의 한 작용일 따름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기도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사진이 지난 회화와의 비교를 성립시키고, 상응하는 논리로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면, 프리드의 미학적 범주로서의 ‘매체 특정성medium specificity’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사진가가 사진의 기술적 도구means로 회화를, 화가는 회화로 사진을 제작할 수 있다면, 예술적 매체란 여전히 원칙적 구별이 가능한가?

 

나는 이러한 의문에 관해 제프 월Jeff Wall과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실천을 요약적으로 검토하며 다루어보려 한다. 자격성이라는 명백히 중요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리드 초기의 미술 비평, 특히 예술적 매체라는 관념을 다루는 구절을 면밀히 읽는다면 사진가 제프 월을 사진으로 그리는 ‘화가’로,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회화의 도구로 사진을 제작하는 ‘사진가’로 주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note title=”4″back] 프리드의 예술적 매체 개념의 성격에 관한 논거로서, 이는 다음과 같은 가제가 붙은 나의 에세이에서 발췌, 재구성된 발언임을 밝혀 둔다. “On the Very Idea of a Specific Medium: Michael Fried on Photography and Painting as Arts.”[/note]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 긴요한데, 프리드가 현재 베허 부부The Bechers 이래의 대형 컬러 사진에 관한 저작으로 논의를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책에 대한 주요 쟁점 중 하나는 프리드가 베허 부부의 작업을 많은 면에서 회화, 특히두 명 이상의 동시 관람을 상정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벽면에 의도된, 대규모이며 대체로 정면적frontal이거나 표층적facing인 경향을 갖는[note title=”5″back] 마이클 프리드의 “Barthes’s Punctum,” Critical Inquiry 31, no.3(Spiring 2005), 562-63, 569-71과 “Jeff Wall, Wittgenstein et le quotidian,” Les Cahiers du Musée National Moderne 92, special issue on “Photographie” (July 2005)를 참조하라.[/note]모더니즘 회화의 규모, 표현 양태mode of address, 목적을 이어받았다고 본다는 것이다. 프리드는 이미 제프 월의 〈아침 세탁Morning Cleaning, Mies van der Rohe Foundation, Barcelona〉(1999)을 위한 기록에서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의 〈알파 파이Alpha Pi〉(1960)에 관해 그렇게 주장한 바 있다.[note title=”6″back] 2005년 11월 10일 컬럼비아 대학에서 라이오넬 트릴링 세미나(The Lionel Trilling Seminar)로 진행된 “Jeff Wall, Wittgenstein and the Everyday”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프리드가 발언한 바에 따른 것이다. 프리드의 관련 논문은 지금까지 프랑스어로만 발표되었다. 각주 38을 참조하라.[/note]

 

그와 같은 주장으로 불거지는 논쟁은 보통 두 가지에 관한 것으로, 프리드의 전체 기획에 있어 각각 외재적, 내재적이다. 일단 외재적 문제란, 다른 도구에 의한 일종의 회화로서의 사진을 우선시하는 접근 방식이 사진을 사진으로서 평가하는 것으로는 명백한 실패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재적 문제란, 매체 특정성을 옹호했던 전력을 상기하면다른 누구도 아닌프리드가 회화의 눈the optic of painting을 통해 사진에 접근한다는 것이 일관적이지 못하게 보인다는 점이다.[note title=”7″back] 짐 엘킨스(Jim Elkins)도 프리드의 “Barthes’s Punctum”에 대한 응답으로 비슷한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What Do We Want Photography to Be? A Response to Michael Fried,” Critical Inquiry 31, no. 4 (Summer 2005), 938-56을 참조하라. 나는 이것이 논란이 될 만하다는 엘킨스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가 그렇게 발생하는 논쟁적 구도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쉽게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엘킨스는 현실로 닥친 이러한 쟁점 자체가 정당화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도록 하는 여러 방식들을 고려하지 않지만, 이는 그의 관심 밖이다.[/note] 「미술과 사물성Art and Objecthood」의 그 지독한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라. “질과 가치의 개념더불어 이 개념들이 미술, 미술이라는 개념 그 자체의 중심에 있는 한에서오로지 각각의 미술 내에서만 따로 또는 전체로서 유효하다. 미술들 사이에 놓인 것은 극장theater이다.” 여기서 극장은 이미 모더니즘 회화와 조각의 천적을 넘어 그러한 미술의 안티테제로까지 곡해되어 있다.[note title=”8″back] 프리드의 「미술과 사물성」, 특히 163-64쪽을 참조하라.[/note] 오늘날의 사진이 모더니즘 회화의 규모, 표현 양태, 목적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 ‘사이’ 공간에 관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보이며, 또한 전적인 표변豹變이 아니더라도 프리드는 최소한 본인의 예전 주장이 가진 집요함에 거리를 두려는 듯 보인다.[note title=”9″back] 근래의 발언과 좌담에서 이 문장과 궤를 같이하는 질문에 답변하는 프리드는, 이를 두고 매체에 관한 당초의 주장에 대한 ‘발열 줄이기(throttling back)’라 묘사하곤 한다. 중요하게도, 이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상관적(vis-à-vis)이다. 프리드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확실히 초창기 그의 문제제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박하다고는 할 수 없다.[/note] 나는 후자인 내재적 문제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둘 모두 예술적 매체란 무엇인가에 관한 사전 개념을 일정 부분 전제하고 있으므로 예술적 매체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편이 합당하며, 외재적 문제와의 통약불가능한incommensurable 출발점에 무엇이 있는가를보다 흔한 경우들에서 그렇듯제시하기보다, 가능한 내재적 문제를 탐색하려는 프리드 자신의 주장을 고려하는 편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프리드가 마음을 바꿨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불명예는 없다. 1967년 그가 미니멀리즘을 극복하려 세운 장엄한 다리 아래에 흐른 물살이 약하지는 않았기에. 하지만 나는 더욱 시사점이 많은 해석에 대한 바램을 피력하는 것이다. 프리드 초기 비평을 후대 미술의 눈으로 해석하기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발에 부딪힐지라도, 나는 월과 리히터에 상관적인 내 주장이 드러내는 것이 예술적 매체에 관한 프리드와 카벨의 초기 개념화 자체가 가진 가능성, 이른바 개념적 가능성이라 말하고 싶다. 예술의 후속적 발달이 있고서야 사실로 보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다수가 확신하려는 바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프리드의 ‘사진적 전회photographic turn’가 언뜻 보이는대로의 전적인 표면은 아니라는 해석을 제안한다. 논점을 분명히 하자면, 그것은 반드시 프리드 초기 작업에 설정된 개념어들의 논리적 증설a logical extension이어야 한다. 프리드가 예술적 매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미술의 지난 성취에 관계하는 작업의 성립에 상관적인 관객으로부터 분명한 확신을 이끌어내려 작가가 만든, 의향의 구조로서고려하면, 어떤 한 작가가 한 매체의 지난 성취에 다른 수단으로 다다르기를 모색하여 하나의 탁월한 범례를 달성했을 때, 그 작업은 전자에 해당하는 매체의 전형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그러나 뒷맛이 씁쓸하다. 그것이 정답이라면, 이는 모든 실질상의 경험적 제약이 수반된 매체라는 관념이 허물어지리라는 조짐이며, 그렇다면 개별 매체 ‘안에 있는’, 매체들 ‘사이에 있는’, 또는 매체들을 ‘횡단하는’ 무언가의 의미도 더는 명료할 수 없게 된다.

 

내 주장에 대해 가능할 또 다른 반론에 대해서는 실례를 들어서만 대응할 수 있다. 그 반론이란 월을 화가로, 리히터를 사진가로 기술하기란 지극히 반직관적이고, 더 나쁘게는 순전히 의도적이며, 심지어 프리드 매체론에 대한 명백히 반본질주의적이고 역사화된 착상에 기반할 뿐이라는 것이다. 프리드의 매체 특정성 개념이 스스로를 녹일 수 있는 요인을 갖는다는 것을 리히터와 월의 작업에 대한 조명이 드러낸다 하더라도, 결국 그러한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음의 사례를 유념하자. 월은 모더니즘 회화의 과제였던 자율성에 밀려난 ‘현대적 삶의 회화the painting of modern life’라는 기획을 부활시키려는 것으로 자신의 작업을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다음은 T J. 클락T. J. Clark과의 대화에서 월이 이와 관련된 본인의 생각을 밝히는 대목이다.

 

1920년대 뿐 아니라 1820년대에도, 심지어 1750년대에도 있었던 문화적 문제들 중 일부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대적 삶의 회화’라는 관념으로의 회귀가 정당하다고 느꼈다. 그것을 보들레르가 프로그램programme으로 위치지운 순간과 현재 사이에는 자본주의 자체의 연속성이 있다.”[note title=”10″back] Jeff Wall, “Representation, Suspicions and Critical Transparency: Interview with T.J. Clark, Serge Guilbaut and Anne Wagner”(1990), in Jeff Wall, edited by Thiery de Duve, Arielle Pelenc, and Boris Groys (London: Phaidon Contemporary Artists, 2002), 112에서 발췌.[/note]

 

그리고 한 번 더, 같은 인터뷰에서의 내용이다.

 

19세기에 그 각별한 자명성으로 부각된 개념인 ‘현대적 삶의 회화’는, 미술의 역사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 마네의 미술을 오랜 서구 형상화figuration 전통의 끝으로 본다는 것은 아방가르디즘의 시작으로 본다는 것에 다름없었다. 현대적 삶의 회화(굳이 회화가 아니더라도 회화일 수 있는)의 일반 프로그램이란, 어쨌든 서구 현대 미술의 가장 의미심장한 진화적 발달이 아니었나 한다.”[note title=”11″back] De Duve, Pelenc, and Groys, Jeff Wall, 124; 강조 처리는 필자.[/note]

 

게르하르트 리히터, 목초지, 1985, 90.5cm x 94.9cm, Oil on canvas
제프 월,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호쿠사이를 따랐음) A Sudden Gust of Wind (After Hokusai)〉, 1993, 397cm x 250cm, 슬라이드 필름.

 

미술사적으로 훈련된 작가인 월은 특히 회화사에 몰두한 사진가로, 작업에 있어서도 회화의 한 장르를 자처하는 듯 보이며, 그 규모도월의 최근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note title=”12″back] 내게는 설득력 없이 다가오지만, 자서전적 글인 “참조의 프레임(Frames of Reference)”에서 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에 관해 쓰는 사람들은 대개 나의 작업이 항상 19세기 회화로부터 직접적인 방식으로 유래되었다고들 생각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상당수의 그러한 비평적 반응이란 내가 하는 작업과는 동떨어진, 과장된 것들이다. 나는 예전의 픽토리얼한 미술 장르를 참조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강조 처리는 필자. 월은 그가 회화에서 물려받은 것이 “그림에 대한 애정”과 “픽토리얼한 미술에 걸맞는 크기와 스케일이라는 아이디어”라며 글을 이어나간다. 후자는 납득할 수 있지만, 전자는 확실히 부풀려졌다. 이는 어쩌면 그가 항변하는, 자신에 대한 마찬가지의 부풀려진 주장(가령, 그가 과거의 회화 장르를 참조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는)을 상쇄하려는 시도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장르를 참조하기에 대한 모든 관심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월의 실천과 그 실천을 위한 예전의 주장에 대한 기만일 수밖에 없다. 제프 월의 “Frame of Reference,” Artforum (September 2003), 191을 참조하라.[/note]통상적인 인식에서의 감광판, 프린트, 앨범보다 명시적으로 회화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월은 회화의 가장 원숙한 장르인 역사화의 픽토리얼pictorial한 열망, 규모, 표현 양태에 비견되기를 모색하며, 〈죽은 병사들은 말한다(1986년 겨울 아프가니스탄 모코르 부근에서 소련 정찰군이 매복 공격을 당한 후의 광경)Dead Troops Talk (a vision after an ambush of a red army patrol, near Moqor, Afghanistan, winter 1986)〉와 같은 대작들 다수의 구성적 전략은 대개 그러한 전통으로부터 유래된다. 이는 월을 동시대적 역사화가contemporary history painter로 기술하기란 온당치 못함을 말해준다. 그보다는, 그가 현대적 삶의 회화라는 보들레르의 요청에 화답하여, 일상의 당대적 장면과 사건으로서 현대적 삶인 것을 다루는 ‘회화’를역사적 어조를 띄고, 시사적이며, 따라서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가치가 있는역사극으로서 제작하고자 전통적 역사화의 구성적 역능, 표현 양태, 규모를 동원한다는 것이 월에 대한 기술로서 정확할 것이다. 월이 화가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회화라는 단어에 우려섞인 따옴표를 붙였다. 내 논점은, 시간이 지나며 매체가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대한 프리드의 판단에서 월을 염두에 두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것에 있다. 그러한 월의 작업은 사실상 회화보다 픽처링picturing이라 불리는 편이 정확할 수 있을 텐데, 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월의 모든 작업은 주로 기록된 것the documentary과 각색된 것the staged, 직접적인 것the straight과 조작된 것the manipulated이라는, 수사법들 또는 표현 양태들 사이에서의 기본적 진동(지난 10년 동안은 확실히 전자의 것들에 치우친)으로서의 상이함을 갖는데, 그 이미지들이 공유하는 것은 일상적 삶의 묘사에 대한 천착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월의 이미지들은 일상적 삶을 서술하기에 적합한 개념을 공유한다. 그 개념을 회화가 독점하는 것은 아니라면, 확실히 그것은 불연속적 매체로 인식된 사진이 아니라 회화와 사진과 영화라는 픽토리얼한 연속체pictorial continuum의 개념이다. 근래에 월 자신부터가 이를 분명히 했다. “사진, 영화, 그리고 회화는 보다 새로운 미술 이후로 상호 연관적이다. 따라서 이 세 형식을 아우르는 거의 단일한 규준 체계가 있다고 주장될 수 있는 선에서, 각각의 미학적 규준은 다른 두 매체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부가적이거나 새로운 요소란 영화에서의 움직임뿐이다.”[note title=”13″back] Wall, “Frame of Reference,” 190.[/note] 일정 매체의 물질적 고유성이 아닌 예술적 의향의 구조라 불릴 수 있는 것특정한 예술적 전통, 또한 그것에 속하는 지난 작업과의 연관성을 성립시키는 관객으로부터 이끌어내려는 확신의 유형을 표현하는 양태로 구체화된 것에 근거하는 프리드의 예술적 매체 개념화는, 월이 화가, 시네마토그래퍼cinematographer의 ‘고유성’을 갖는 사진가, 또는 어쩌면 ‘픽토그래퍼pictographer’의 ‘고유성’을 갖는 사진가일 수 있게 한다. 월이 당대성의 어법contemporary idiom에 비견되기 위해 모색하는 것은 회화의 지난 성취일 뿐만 아니라, 더욱 포괄적이며, 비매체-특정적nonmedium-specific이거나 총칭적인generic 픽토리얼이라는 개념의 성취이고, 이는 그 자체로서 사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대비되는 사례로서 살펴보자. 구 동독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가로 양성되기 전 사진 연구소 어시스턴트로 근무한 리히터는, 사진에서 비롯된 자신의 회화적 실천을 ‘사진-회화photo-painting’로 설명한다. 이렇듯 리히터는 단순히 사진그림이나 사진으로부터의 그림을 그리기보다 훨씬 강력한, 회화를 사진으로 복무시키는 것으로서의 어떤 엄밀한 의도를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회화로 사진 찍기다.

 

“사진에는 아무런 양식도, 구성도, 판단도 없다. 그것은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처음으로, 그 무엇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순수한 그림picture이었다. 이것이 내가 사진을 이용하고, 보여주고 싶어 했던 이유다회화의 도구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회화를 도구로 쓰는 사진을.”

 

이에 인터뷰어는 묻는다. “환영illusion에 관련하여 당신은 어떤 입장인가? 사진 모사하기란 환영에 거리를 두기 위한 장치인가? 아니면 현실의 외양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리히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사진 모사하기가 아닌 사진 만들기를 시도한다. 나는 사진이란 빛에 쪼인 종잇장이라는 통념은 무시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도구에 의한 사진을 실천 중인 셈이고, 사진을 생산해낼 뿐, 사진에 관한 회화를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진적 자료가 없는 내 회화(추상 등의)도 사진에 해당한다.”[note title=”14″back] Gerhard Richter, “Interview with Rolf Schön” (1972), in his The Daily Practice of Painting: Writings 1962-1993 (London: Thames & Hudson, 1994), 73; 강조 처리는 필자.[/note]

 

제프 월, 죽은 병사들은 말한다, 1992, 228.92cm x 416.88cm, Transparency in lightbox
게르하르트 리히터, 〈죽은 사람 3 Dead 3〉, 1988, 35cm x 40cm, 캔버스에 유화.

 

이렇듯 리히터는 손으로그가 ‘순수한 그림’이라 부르는사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사진의 실천을 이해한다.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면(그러지 말아야 할 듯 해도), 리히터는 실질적으로 한 대의 자동적인, 또는 어쩌면 준-자동적일 기록 장치가 된다. 이때의 기계적 장치mechanical apparatus 의태하기(엄격히 말해 리히터의 작업이 기존 이미지를 확대하는 유형의 하나인 한, 그는 카메라보다는 확대기에 가깝다)는 주관성과 개인적 경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하에 노동에 가까운 손기술을 최대한 발휘해낸 것이다. 카벨의 개념으로 보자면, 리히터의 실천은 주관성이나 자체의 활동에 관한 지식의 결핍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비인간적, 기계적 본성(한 번 이상 전사될 이미지의 선택이 이루어진다는)의 측면에도 관계된 카메라(그리고 사진 관련 장치 전반)의 ‘불모성sterility’을 의태한다.[note title=”15″back] 리히터가 전사할 이미지를 고른다는 후자의 사실은 사진에서도 동일하게 참이므로 이러한 유비의 걸림돌일 수 없다. 마치 리히터가 전사(transcription)할 이미지를 고르듯, 사진가는 포착하고자 하는 어떤 것(적어도, 카메라에 직면시킬 것으로서의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카벨이 말하는 카메라의 불모성에 관해서는 The World Viewed, 184-185를 참조하라.[/note] 그런데 리히터는 카벨이 말하는 사진의 ‘자동기법automatism’에 더 교묘한 방식으로 가담한다. 〈눈에 비치는 세계The World Viewed〉에서 자동기법에 연루된 ‘적절한 깊이’ 갖기의 필수성으로 꾸준히 독자의 주목을 끄는[note title=”16″back] 한 예로 21쪽을 참조하라. “자동기법에 얽힌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적절한 깊이 얻기는 필수불가결하다. (…) 사진은 하나의 소망을 만족시킨다. (…) 그것은 주관성과 형이상학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으로, 결국은 타자에게 정확성을 현시하려 노력하기를 절망적으로 거듭하게 만드는, 세계에 가 닿을 힘에 대한 소망이다.”[/note] 카벨에게, 그 깊이란 사진이 회의주의와 맺는 관계다. 리히터는 주관의 왜곡 없이 ‘순수한’ 그림을 산출하려는 카메라의 자동기법을 의태하여카벨이 ‘인지’의 파산으로 이해할자신의 주관성을 회피하기를 획책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 같은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것으로서의 세계를 향해 줄일 수 없는 주관성, 그 인간적 유한성의 극한으로 비-제약화된 현실의 의심할 수 없는 지식에 이르려는 회의론자의 갈망의 편린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아무런 양식도, 구성도, 판단도 없다. 사진은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전사 기계transcription machine가 되어 주관적 경험의 한계를 우회하려는 리히터는 회의주의의 한 유형이 될 것이다.[note title=”17″back] “사진은 회화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주관성을 억제했다. 그것은 회화는 충족할 수 없으면서도 회화적 행위를 완전히 타파하지는 않은 채 주관성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 방식이란 자동기법으로, 인간적 행위자를 재생산의 과업으로부터 지워낸다.” Cavell, The World Viewed, 23.[/note] 그로써 리히터는 회의주의의 근본적 역설에 가담하는데, 현실의 재생산에서 주관성의 제약을 철폐하여 사진의 완전성을 촉진하더라도, 그러한 완전성은 주관성이 기계적으로 잘려나가 표류하는 세계, 결국 그 자체로는 승인할 수 없게 드러나는 세계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note title=”18″back] 카벨이 말하는 사진과 회의주의의 관계를 정식화하는 나의 이러한 방식은 스티븐 멀홀(Stephen Mulhall)의 논의에 빚지고 있다. Stanley Cavell: Philosophy’s Recounting of the Ordinary (Oxford: Clarendon Press, 1994), 228-30을 참조하라. 카벨의 The World Viewed, ch. 2, 특히 20-23쪽을 참조하라. 나는 이 페이지들을 인용한 스티븐 멀홀의 더 긴 글에 기술된 주해에서 실마리를 찾았다.[/note] 덧붙이자면, 프리드가 카벨의 철학적 견해에 동조하는 한, 내가 리히터의 ‘회의주의’라 부르는 무엇은 리히터의 작업에 대한 프리드의 통상적 반발심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note title=”19″back] 사실 이러한 반발에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리드는 리히터의 1994년작 〈읽기 Lesende(Reading)〉를 몰입성의(absorptive) 이미지로서 즐겨 언급하고 제시하지만, 그 작업이 리히터 작업의 전형이지는 않다.[/note]

 

나아가, 카벨이 말하는 카메라가 대상을 자동적으로 기록하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그 시야에 쏟아져 들어오는 무언가를 기록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면, 이 지점에서적어도 프리드가 해석한 것으로서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사진에 관한 개념[note title=”20″back] 바르트의 『밝은 방: 사진에 관한 성찰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New York: Hill & Wang, 1981)에 대한 프리드의 최근 독해인 “바르트의 푼크툼(Barthes’s Punctum)”에서, 프리드는 전체적 장면이나 대상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부(a detail)를 푼크툼이라 본다. 이러한 독해에 따르면 푼크툼은 감상자에 의해 목격된 무언가이며, 사진가에 의해 감상자에게 보여진(shown) 것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프리드에게 푼크툼은 어떤 사진의 비연극성(nontheatricality)에 대한 ‘존재론적 보증’(553)으로 기능한다. 프리드가 바르트를 인용하는 545쪽을 참조하라. “나를 끌어들이는 세부란 의도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완전히 의도된 것은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사진화된 장(field) 속에서 필연적이며 있는 그대로 주어졌을 뿐인 보충물처럼 발생한다[마이클 프리드의 번역]. 그것으로 반드시 사진가의 예술이 단번에 입증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사진가가 그곳에 있었음을 말하며, 굳이 명료히 해두자면 그가 총체적 대상을 촬영하는 동시에 파편적 대상을 촬영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바르트의 『밝은 방』, 47쪽을 참조하라. 프리드는 이렇게 주해한다. “푼크툼이란 바르트에 의해 목격된 것으로, 사진가에 의해 바르트에게 보여진 것이 아니다. 사진가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note]과 카벨의 그것에는 주목할 만한 일치점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노에마noema란 바르트가 사진으로부터 이끌어낸 확신인 ‘그것이-존재-했음that has been’에 붙인 이름으로[note title=”21″back] “회화는 현실을 목격하지 않고도 가장할 수 있다. (…) 사진에서 나는 사물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현실과 과거의 중첩이 있다. 이 제약은 오직 사진을 위한 것인 만큼, 우리는 환원을 거쳐 그것을 노에마라는 사진의 불가결한 요소로 고려해야만 한다. 사진에서 나를 의도적이게 하는 것은 (…) 사진을 정립시키는 질서인 지시체(Reference)다. 사진의 노에마라는 명칭은 따라서 ‘그것이-존재-했음‘이 되리라.” 바르트의 『밝은 방』, 76-77쪽을 참조하라.[/note], 이것은 사진에 출현한 것이 한때 그 카메라에 존재했었다는 생각이다. 이와 유사하게, 카벨이 말하는 사진은 ‘과거의 세계’를 현존present시킨다. 그 세계는 나에게 현존하지만, 그곳에서의 내 시-공간적spatio-temporal 부재를 지불하고서야 나타난 세계다.[note title=”22″back] “사진의 현존성은 그것으로부터의 우리의 부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유지된다. 사진 속 현실은 내가 그 안에 현존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현존한다. 이때 그 세계, 내가 경험하고 목도하지만 나는 부재하는 세계란 (…) 과거의 세계다.” Cavell, The World Viewed, 23.[/note] 이때 리히터의 사진-회화가 카벨이 의식하는 사진의 자동기법에 가담한다면, 바르트가 말하는 사진의 노에마에도 참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사진을 독립된 미술로 최종 보증하는 것이필름 감광면을 반응시킨 반사광의 산물로 기입되는 대상에 직접적이고 비자발적인 의존성을 갖는다는 사실인‘지표성indexicality’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하지만 매체란 물리적, 인과적, 또는 존재론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그 유형의 범례라는 확신을 촉구(우선 작가 안에서, 그리고는 관객 안에서)하는 차원에서 특정된다는 견해에 따라 추측하자면, 사진에 불가결한 요소로서의 지표성은 프리드의 선택지가 아니다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이러한 이해 방식이다. 오히려, 지표성으로 사진을 정의했던 이해에서는 월이야말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데, 월의 많은 이미지들은 어떤 직접적 의미straightforward sense에서도 지표로는 기능하지 않는 최종 이미지(구성 성분과는 대립적인)로 조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프 월,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 (倣 호쿠사이) 1993, 397cm x 250cm, Transparency on lightbox
게르하르트 리히터, 〈목초지Meadowland〉, 1985, 90.5cm x 94.9cm, 캔버스에 유화.

 

요컨대 도상과 지표라는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구분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더 이상 사진과 여타 매체간 범주적 식별의 근거일 수 없다. 그것은 ‘화가’ 리히터보다 ‘사진가’ 월에게야말로 더 배타적이다. 설령 자동기법에 근거한 넓은 의미의 사진이라는 이해로, ‘이것이-존재-했음’이라는 확신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앞세우더라도, 리히터의 많은 부분은 포섭될지언정 월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note title=”23″back] 단, 이러한 구분의 작동에 퍼스 기호학의 복잡성이 늘 온전히 반영되어 있어왔음을 전제해야 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제임스 엘킨스의 “What Does Peirce’s Sign System Have to Say to Art History?,” Culture, Theory, and Critique 44, no. 1 (2003), 5-22를 참조하라. 퍼스의 작업에 관한 예로서는 Charles Sanders Peirce, “Logic as Semiotic: The Theory of Signs,” in The Philosophy of Peirce: Selected Writings, edited by Justus Bechler (London: Routledge, 2000) 그리고 Charles Sanders Peirce, “The Icon, Index and Symbol,” in The Collected Papers of Charles Sanders Peirce, vol. 2, Elements of Logic, edited by Charles Hartshorne and Paul Weis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32)를 참조하라.[/note] 리히터의 화업畵業을 관통하는 아노미적anomic 사진-회화가 사진의 노에마에 가담한다고 한다면, 더 거칠게는 앙상한 확언bare assertion의 범속함으로 되돌려진 사진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note title=”24″back] 이에 대해서 나는 리히터가 광범위하게 다룬 사진-회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가족사진(나치 친위대 제복을 걸친 Uncle Rudi〉[1965]부터 1990년대 후반의 가족사진들까지), 휴가 스냅샷(동년에 작업된 Administrative Building〉처럼 그리자이유로 그려진 Family at the Sea-Side〉[1964]와 같은), 다소 “낭만주의적”인 풍경화(Seascapes〉[1969-1970]부터 Barn또는 Meadowland[1984-1985]까지), 그리고 백과사전적 작업(〈48 Famous Men[1971-1972]과 같은)까지를 망라한다. 나는 〈1977년 10월 18일 18 October 1977〉의 경우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에 관해 리히터는 공포를 비탄으로 변형시키기에 대한 모색이라 말한 바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리히터의 사진-회화 중에서도 변칙적인 것으로 남게 된다. 보도용 이미지부터 휴가 스냅샷을 아우르며 존재-했던-무엇 그려내기라는 사진적 도큐멘트의 권리를 무정하게 재언명(reassert)하는 작업들과는 달리, 〈1977년 10월 18일〉은 더 많은 것을 겨냥한다. 리히터의 Daily Practice of Painting에 수록된 “Conversation with Jan Thorn Prikker concerning the Cycle 18 October 1977” (1989), 189을 참조하라.[/note] 따라서 리히터의 이미지 다수, 특히 보도 사진으로부터 파생된 이미지들이 갖는 불온한 서브텍스트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로서의 외양이 불온한 것은 어디까지나리히터가 양식, 구성, 판단의 결여라 묘사하는그 범속함과 정동affect의 부재 때문이다. 월이 전통적인 판단에서라면 회화의 권역에 속할 이미지를 구성하고, “존재-했던-무엇”을 직접적으로 포획할 자격으로서 사진의 도큐멘터리적 기능에 괄호를 치는 반면, 리히터는 회화라기에는 극히 불안정할, 그토록 몰인격한그토록 ‘자동적인’그림을 제작하여 표현적 매체로서의 회화를 음해한다고 할 수 있다.[note title=”25″back] 그렇듯 월이 2002년 제시한 개념인 ‘근사 도큐멘터리(near documentary)’도 자신의 최근 작업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조어에 프리드는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사건이 그려낸 무언가가 반(anti)연극적 의도의 촬영물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양상을 보여주려는 취지가 있다는 월의 주장을 발견해나가면서였다. 마이클 프리드의 “Being There,” Artforum (September 2004), 53을 참조하라. 또한 프리드의 “Jeff Wall, Wittgenstein et le quotidien”에서의 (1992)에 관한 논의도 참조하라. 프리드의 “Barthes’s Punctum”도 함께 참조하라. 이 글은 예일 대학 출판부에서 나올 예정으로 현재 Ontological Pictures: The Argument from Recent Photography라는 가제가 붙어 있는, 프리드가 베허 부부 이후의 사진에 관하여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책에 수록될 것이 확실하다. Jeff Wall에 수록된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와의 흥미로운 1988년 인터뷰에서, 월은 그가 “사실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유래하는, 사진의 고전적 미학”이라 부르는 것에 본인 작업이 가진 과거와 현재와의 관계 문제를 전가한다. 월은 자신이 이러한 문제제기를 “회화나 시네마가 주종인 여타의 그림-만들기(picture-making) 예술들과 사진 간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류시키려 했으며, “그러한 예술들에서 사실에 입각한 권리란 은근하고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행사되어 왔음을 다른 예술들에 대한 미메시스로 고민한다”고 주장한다. 본문에 부합하는 국면이 많은 이 인터뷰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대목이다.[/note]

 

프리드와 카벨의 예술적 매체에 관한 초기 개념이 너무나 과용되었고, 그것으로 포착하려던 ‘특정적’ 매체라는 관념을 근절시키는 위험을 안아야 할 정도로모든 기대에 반하여순응적인 것이 되어간다는 것이 입증되려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프리드의 예술적 매체 개념에 따라 월은 디지털 사진의 도구로 회화, 사진, 영화를 픽토리얼이라는 총칭적 개념으로 아우르는 작가로서, 리히터는 회화의 수단으로 사진적 도큐멘트의 아노미를 재생산하기를 갈망하는 작가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note title=”26″back] “On the Very Idea of a Specific Medium: Douglas Crimp and Michael Fried on Photography and Painting as Arts”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더 자세히 고찰한다. 조만간 발표될 나의 논문인 Aesthetics after Modernism에서는 본문의 종결부가 지시하는 기획이 진행될 것이다.[/note]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 개념에 대한 일견상의prima facie 불신을 해소해두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가 이러한 논의로 개시하려는 바가 무엇인가를 말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내가 묵과할 수 없고, 미술에서의 가치에 대한 질문과 어떻게든 직교orthogonal한다고 여기는 매체 특정성 담론으로부터 구해내기를 바라는 미학 담론을, 그중에서도 미학적 가치를 두드러지게 지니는 작업들에 대한 관념으로서의 미학 담론을 구속에서 풀어주려는 더 광범위한 기획의 일환이다. 이 글은 특히 사진에 대한 접근 면에서 지난 25년에 걸친 포스트모던 미술이론에서의 지배적 경향에 정면으로 대치하며, 미술이론에서 미학을 폐기하려는 당위를 궁극적으로는 부정해야 하는 예술적 가치인 모더니즘 미학 개념에 암묵적으로나마 의탁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반미학주의를 추동한 생명력animus이었던 그러한 당위는 미학이 징후적으로 주변화된 동시대 미술계에서 지지부진하게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나에게 미학적 가치에 관한 모더니즘의 개념인 매체 특정성과 미학적 가치 그 자체 사이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실패한 결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 시대 미학의 숙명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침에 있어, 나는 내 기획이 모더니즘 이론에 대한 또 한번의 공격은 확실히 아니라 믿는다. 반미학적, 반모더니즘적 언술에서 전자의 효력이 거의 소진되었다고 할 때, 내 기획은 포스트모던 이론으로서 결코 유효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미학적 가치를 구출해내기를 목표하는 것이다미학적 가치는 매체 내에 부속되어 작동할 뿐, 매체들을 횡단하지는 못한다는모더니즘의 유용appropriation, 그리고 그 필연적 결과이자 ‘포스트-매체’ 시대의 미술을 고민하기에는 부적절한, 미학적 가치에의 포스트모던한 기각[note title=”27″back] 이러한 생각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크라우스의 『북해에서의 항해 A Voyage on the North Sea』(현실문화A, 2017)를 참조하라.[/note], 그 모두에게서의 미학적 가치를.

 

 

Diarmuid Costello, "After Medium Specificity chez Fried: Jeff Wall as a Painter, Gerhard Richter as a Photographer," in Photography Theory, ed. James Elkins(New York: Routledge, 2007), 75-89.
김세인
학부에서 고고미술사학를 전공했고, 예술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일종의 레거시 콘솔로서의 미술을 지향하고 있다. 비평적 규약이나 실재론적 대상으로서의 ‘전통’, 그리고 그것이 동시대 조건과 상호 매개되는 방식에 주안점을 둔다. 2019년 산수문화에서 열린 전시 《X의 산》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