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리얼리즘에 관하여
번역 이유니

류보프 포포바(Liubov Popova), , 1923-4. 종이에 과슈, 115x92mm.
류보프 포포바(Liubov Popova), 〈텍스타일 디자인 Textile Design〉, 1923-4, 종이에 과슈, 115x92mm.

 

최근 오랜 기간 역사적으로 한물간 것 같았던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은 보기 보다 명확하지 않다. ‘리얼리즘(realism)’은 흔히 ‘현실(reality)’을 모방하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되고는 한다. 물론 이러한 정의에 동의할 수야 있겠지만, ‘애초에 현실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현실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에 앞서 현실을 어떻게 발견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현실을 ‘자연스럽고’ 별달리 의식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테크놀로지의 도움도 받지 않은 우리의 시선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이에 따르면 전통적인 도상은 ‘다른’ 세계, 보통은 비가시적인 세계를 나타내려고 하기에 리얼리즘적이지 않아 보인다. 또한 세계의 ‘본질적 핵심’ 이나 특정 작가의 ‘주관적 전망’을 마주하게 하는 예술작품들도 보통은 리얼리즘적이라고 인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사진을 볼 때 리얼리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은 기술을 사용하여 생산된 이미지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전망 및 사변을 기꺼이 거부하려는 태도로 정의되고는 한다. 그게 아니라면 리얼리즘은 세계에 대한 일반적이고, 일상적이며, 세속적인 관점을 재생산하는 바와 관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이 같은 세속적 전망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세계의 세속적 이미지를 묘사하고 재생산하고자 하는 욕망을 ‘아름다움’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이다. 세속적 이미지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단언되더라도 거기에 아름다움이 없음은 명백하다.

 

현실이 ‘사실들’의 단순한 총합이라고 처음부터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을 행하고 싶은 대로 행하거나 살고 싶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필요와 제약의 총합이라고 이해한다. 현실은 상상속에나 있는 미래에 관한 우리의 전망을 두 부분, 즉 실현 가능한 기획과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순수 환상’으로 나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은 처음에는 현실정치(realpolitik)로, 즉 행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인간 행위의 조건과 한계가 갖는 ‘비현실적’ 관점과 대비된다. 이것이 19세기 리얼리즘 문학과 미술의 실제 의미였는데, 당시의 작품에는 낭만적인, 달리 표현하면 사회적, 감정적으로 ‘이상주의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할 때 맞닥뜨렸던 실망, 좌절, 실패 등이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은 물론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유럽 문학은 ‘예술과 삶’을 합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하는 모습을 묘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주인공이 바라거나 계획한 그 무엇도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이 염원한 모든 것은 ‘비현실적’ 인 것, 즉 순수 환상이라고 판명되었다. 이 같은 리얼리즘 전통에서 비롯한 최선의 귀결은 68운동을 통해 ‘현실적으로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라고 표명되었다. 그리하여 리얼리즘 문학과 미술에서 묘사하는 대상은 – 자연 과학에서 기술하는 대로의 –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이상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 충격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의 심리(psyche)를 일컫는다. 19세기 리얼리즘은 사실상 심리주의(psychologism)였다. 현실은 ‘객관적’인 과학적 탐구의 장소가 아니라 주인공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파멸시키기까지 하는 억압적 힘이라고 이해되었다.

 

반대로 근현대 미술은 탈심리화의 오랜 역사적 산물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와 같은 비평가들은 이를 비인간화(dehumanization)의 역사로 경험하였다. 아방가르드와 포스트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이 리얼리즘적(realist) 이지 않고 실재적(real)이기를 원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른 모든 과정만큼이나 실재적이기를 말이다. 예술작품은 나무나 자동차 같은 다른 여러 사물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었다. 이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외려 반대로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급진화했다는 의미이다.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 1975. 종이에 석판. 315 x 416 mm. Copyright: Vija Celmins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사막 Desert〉, 1975, 종이에 석판, 315 x 416 mm. ⓒ Vija Celmins

 

그러나 이들 작가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독자, 청자, 관객의 심리에 호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예술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특정 유형의 테크놀로지로 이해했다. 사실 아방가르드는 관객을 예술작품 속의 거주자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관객은 새로운 환경 조건에 적응하여 자신의 감각과 태도를 변화시킬 것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로 말해본다면, 예술은 상부구조의 일부 이거나 물질적 토대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예술은 이데올로기 내지 테크놀로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는 세계를 변형하는 방식 중 두 번째 것, 즉 테크놀로지를 추구했다. 이는 192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추구되었는데, 이 시기의 운동으로는 구성주의, 바우하우스, 데 스틸이 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실재를 탐색하는 데 완전히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예술의 현실 – 아방가르드가 주제로 삼고자 한 예술의 물질적 측면 – 은 끊임없이 재미학화되었기(re- aestheticized) 때문이다. 이 같은 주제화는 기존의 예술적 조건인 재현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 제도의 세속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측면을 주제로 삼고자 했던 제도 비판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와 마찬가지로 제도 비판도 미술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러한 상황은 변화했다. 이는 인터넷 때문인데, 인터넷은 예술 생산과 유통의 주요 플랫폼으로 기능하던 전통적인 미술 제도를 대체했다. 이제 예술의 세속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다시 말해 ‘실재적’인 측면은 인터넷을 통해 주제화된다. 실제로 동시대 작가들은 인터넷을 활용하여 작업하는 것이 보통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작품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특정 작가가 제작한 예술 작품은, 인터넷에서 그 작가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다른 정보, 이를테면 작가의 활동 이력, 그밖의 다른 작업물, 정치적 활동, 비판적 리뷰, 개인 신상 명세 등의정보와같은 맥락에서 검색된다. 작가는 예술을 생산하는 데 뿐만 아니라, 티켓을 구입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사업을 경영하는 데에도 인터넷을 활용한다. 이러한 활동 모두는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공간에서 발생하며, 여기에는 다른 인터넷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잠재한다. 여기서 예술작품은 실재하는 세속적 개인으로서의 작가에 관한 정보와 통합되기에 ‘실재’적이며 세속적으로 된다. 예술은 인터넷상에서 특정 종류의 실천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실제 오프라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작업 과정의 도큐멘테이션으로서 말이다. 확실히 인터넷 상에서 예술은 군사기획, 관광 사업 자본 흐름 등과 같은 공간에서 작동한다. 무엇보다 구글은 인터넷 공간에는 어떠한 벽도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도큐멘테이션’이라는 단어는 중요하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예술에 대한 도큐멘테이션은 미술 전시나 미술관으로 점차 흡수되어,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 나란히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 도큐멘테이션은 예술이 아니다. 다시 말해 예술 도큐멘테이션은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정되는 예술적 사건, 전시, 설치, 기획을 지시할 뿐이다. 인터넷에서야말로 예술 도큐멘테이션은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찾는 바, 이때 도큐멘테이션은 예술을 ‘현실 그 자체’에서 일어난, 자신의 ‘실재’ 하는 외부 지시체로 지시한다. 혹자는 아방가르드와 포스트 아방가르드 예술이 마침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현실’의 일부가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때의 현실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정보로 주어지는 현실이다. 동시대 세계에서 우리는 사실상 예술과 마주한다기보다는 예술에 관한 정보와 마주한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동시대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다른 권역의 사회적 삶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 환경(milieus)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잡을 수 있다.

 

리얼리즘에 대한 향수를 유발하는 것은 동시대 미술의 바로 이 실증주의적 사실성이다. 예술이 진짜 실천이, 즉 현실의 정당한 일부가 된다면, 현실에 대한 불만은 예술과 더불어 아트마켓이나 전시 행위 등과 같은 예술 제도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 다시 말해 현실과의 이러한 갈등을 기술하는 데에는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니, ‘새로운 리얼리즘(New Realism)’이 바로 그 표현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표현이 단지 예술적 표현일 수만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폭력 시위나 혁명적 행위를 통해 불만을 표명하지 않는 한 감춰져 있으며, 그렇기에 허구적이라는 혐의를 늘 받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내 직업을 싫어하면서도 그 일을 계속한다면 내 존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객관적 근거를 들어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없다. 이러한 불만은 ‘허구적’인 채로 남는 것이다. 이처럼 허구로 남겨진 불만은, 기존에 허구적인 것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표현될 수 있지만, 진지한 과학적 연구 주제는 될 수 없다.

 

꽤나 오랫동안 예술작품은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의 심리를 기원으로 삼았다. 문학, 예술, 인문학에서 이 시기는 심리적 리얼리즘의 시대였다. 19세기 심리주의에 대한 저항은 20세기 예술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바, 이는 명확한 관찰을 방법론으로 삼음으로써 촉발되었다. 이 방법론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기원은 창작자의 심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인데, 창작자의 심리에 접근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심리 외부에 놓인 관객은 작가의 주관성을 꿰뚫어 볼 수 없을뿐더러, 작가 스스로도 내성을 수단으로 하더라도 자기내면의 심리 상태를 알아낼 수 없다. ‘심리’ 그 자체는 순전히 허구적이라는, 따라서 문화사를 설명하는 용어로는 기능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 이유로 예술과 문학은 심리주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인간 형상은 색채와 형태의 유희로, 또는 단어들의 유희로 사라져 버렸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사실성은 심리를 재현하는 데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되었다. 그것이 저자의 심리나 저자 캐릭터의 심리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이러한 탈심리화 전략은 지극히 정당해 보인다. 확실히 심리는 접근할 수도, 과학적 대상으로 삼아 탐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리가 있다 – 즉, 외적으로는 진단될 수 없더라도 현실에 대한 내적 불만이 있다 – 는 가정이 순전히 허구적이라고 기각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 – 또한 타자의 자기 의식에 대한 가정 – 이 최초로 출현하는 순간을 기술한 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이점은 분명해진다. 이 순간에 우리는 타자를 위험으로 – 생사가 달린 위험으로까지 – 경험한다. 물론 ‘자연적’인 위험이나 테크놀로지를 통해 발생한 위험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위험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이때의 위험은 우연적인 것으로 경험될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를 죽이려는 – 이를 테면 총을 쏴서 죽이려는 – 시도를 우연적인 것으로 경험할 리는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왜 그 사람이 이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를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는 잠재적 살인자의 심리에 관한 일련의 환상, 추측, 투사(projection)를 낳는다. 이러한 투사로는 어떠한 최종 결론에도 이를 수 없지만, 동시에 투사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오늘날 이 같은 현상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런저런 테러 행위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들과 추측들에서 거의 매일 같이 목격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후에, 즉 폭력적 테러의 과잉이 발생한 후에, 외부의 관찰자들은 폭력적인 행위의 주체가 일상의 현실을 불만스러운 상태로 살아갔다는 가정을 쉽게 받아들인다 – 동시에 뉴스 보도가 이 인물이 조용해 보였으며 자신의 사회적 환경에 만족했다는 점을 거의 항상 강조하더라도 말이다. 달리 말해, 내면의 심리적 불만은 폭력적 행위가 발생하기 전에는 허구적인 듯 보이지만, 그 행위가 일어나면 소급하여 ‘실재’가 된다. 재차 말하면, 자신의 여러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범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이 같은 소급적 시도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바로 그 소설들이 보여주는 바는, 다름 아닌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동일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 문학 전체는 기본적으로 범죄 문학이다. 여기서 인간은 특히나 위험한 동물로, 정확히는 ‘심리적’ 동물이기 때문에 위험한 동물로 다뤄진다.

 

리얼리즘의 귀환은 사실상 심리학과 심리주의의 귀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심리 소설, 심리 영화, 심리극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이나, 동시대 미술이라는 좁은 범위에서 –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심리와 그 작품에 거주하는 주인공의 심리 둘 다 또는 둘 중 하나를 주제로 삼는 – 사진이나 비디오 작업이 영향력을 점점 더 획득하는 현상에서 이러한 귀환을 실제로 볼 수 있다. 귀환의 이유는 명백하다. 예술을 테크네로 이해하는 것은 아방가르드나 여러 포스트아방가르드 작가의 기대와 밀접하게 연관했는데, 이러한 기대에 따르면 예술은 테크놀로지적 진보에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여, 진보가 유토피아적 목적에 이르도록 하거나, 혹은 적어도 진보의 파괴적 측면을 상쇄하도록 할 것이었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소망은 파괴된 듯 보인다. 테크놀로지적 진보의 역동성은 진보를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테크놀로지적 진보를 ‘현실’로 만들어온 것은 모든 ‘주체적’인 예술 기획이 행하는 통제에 대한 바로 이와 같은 저항이다. 동시대의 포스트-들뢰즈주의자, 신-디오니소스주의자, 가속주의자, 테크놀로지적 진보에 대한 ‘리얼리즘’의 찬미자가 그들의 감탄을 오로지 심리적인 용어들로 설명하는 데는, 곧 그 감탄을 자신들의 심리에 극도의 강렬함을 생산하는 자기 파괴의 황홀경으로 설명하는 데는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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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알메이다(Helena Almeida), 〈무제 Untitled〉, 1975, 사진에 유화. 사진: 필리퍼 브라가(Filipe Braga). ⓒ Fundação de Serralves, Porto.

 

리얼리즘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예술가가 심리적으로 경험하는 대로 묘사한다. 마르크스가, 그 이후에는 루카치가 발자크를 비롯한 여타 프랑스 리얼리즘 사조의 작가들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이 사회, 경제, 정치적 현실을 ‘시스템’으로서 기술한 데 반해, 이들 작가는 현실을 반목하는 갈등과 절망의 터로 ‘심리적인 측면에서’ 묘사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출된 심리적 불만이 갖는 혁명적 잠재성을 주제로 삼았다 – 이때 불만은 ‘객관적’ 통계자료에 의해 가려졌고 아직 일상의 표면을 뚫고나오지 못했던 상태에 있다. 픽션은 그 픽션이 현실에 진입할 때, 다시 말해 예술에서 묘사된 심리적 갈등이 혁명적 행위로 이어질 때 현실이 된다. 이 혁명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리얼리즘적 픽션’은 픽션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리얼리즘의 귀환은 심리적인 것의 귀환, 그리고 억압하는 힘으로서 경험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의 귀환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 리얼리즘은 ‘평범한 사람들’ 이나 ‘노동자 계급’같이 예술 시스템 너머에 있는 여러 현실을 묘사하는 예술 형태라고 오인되고는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예술 시스템은 이미 현실의 일부이다. 리얼리즘은 예술 시스템 바깥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바, 즉 주인공이 경험하는 예술 제도라는 현실들에 대한 불만을 폭로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작가와 미술가가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실패했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에야, 그들은 현실에 순응한다는 것, 다른 모든 이들이 말하는 평범 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기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는 바깥으로 투사된다. 『참회록』에서 톨스토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에 어떠한 의미나 목적도 없음을 틀림없이 알고 있을 때조차도 자살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유에 의문을 품었다고 쓴 바 있다. 그는 이 물음을 통해 문학을 비롯한 지적 활동을 하는 특권적 집단 너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톨스토이의 가정, 이른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방식 안에서 내적으로, 즉 심리적으로 갈등하며 그들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경험한다는 가정이 순수 픽션 – 즉, 톨스토이가 자기 내면의 갈등을 타인의 심리에 투사하는 것 – 은 아닌지를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10월 혁명의 폭력적 파열은 톨스토이의 진단을 그의 사후에 확증했다. 그렇기에 작가와 미술가는, 리얼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인간 심리에 대한 묘사가 순수 픽션이라는 의심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역사가 그들의 작업에 담긴 리얼리즘을 확증해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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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다듬고 편집하는 데 도움을 준 신우승 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