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선언문들
번역 윤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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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랑탱 드 생-포앵(Valentine de Saint-Point)의 “욕망의 미래파 선언(Futurist Manifesto of Lust)” 표지, 1913. 출처: Private Collection of Peter Wille.

 

우리는 누구와, 무엇과 컨템포러리한가? 컨템포러리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note title=”1″back] Giorgio Agamben, “What Is the Contemporary?” in What is an Apparatus? and Other Essays, trans. David Kishik and Stefan Pedatella (Stanford, Cal.: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9), 53.[/note]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미술계에서 말하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의 뜻을 정의하는 데는 좀 문제가 있다. 현재에 생산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부 동시대적이며, 그런 뜻에서 모든 미술은 생산되고/또는 최초로 수용되는 시점에는 동시대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말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미디어나 사회 내부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하다. 이처럼 대중의 의식 속에서 “컨템포러리 아트”가 “모던 아트”를 대체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이 용어가 겉보기에 단순하고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컨템포러리”라는 말은 미술계 바깥에서도 분란을 일으키지 않지만, 미술계 내부에서는 그보다 두 배는 더 유용하다. 일단 이것은 순수하게 시간적인 표식으로, 단순히 “지금”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평적, 이념적 전제로부터 자유롭다. “컨탬포러리”라는 말은 장문의 해명을 요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를테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모던”이라는 말을 해명해야 한다고 느끼고, 그에 내포된 “무상한 것, 우발적인 것”의 의미가 어떤 미래 지향성을 전통적 가치와의 결별, 특히 주기적 시간 개념과의 결별과 연관시킨다고 길게 설명해야 했던 것과 비교해 보라.[note title=”2″back] Charles Baudelaire, “The Painter of Modern Life,” in 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
2nd ed., trans. and ed. Johnathan Mayne (London: Phaidon Press, 1995), 13.[/note]

 

유럽 사상에서 주기적 시간 개념은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인 시간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최근 예란 테르보른(Göran Therborn)이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말에 관해 논의하면서, 그런 변화를 나타내는 극적인 예를 제공한 바 있다.

 

이를테면 “레볼루션”이라는 말을 보자. 이것은 전근대적 개념으로 원래 뒤로 향하는 것, “되돌아 가는 것”, 또는 ‘반복되는 주기적 운동’을 가리켰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공전에 관하여〉에서 이 ‘공전’이 레볼루션이었고,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이 만든 〈백과전서〉에서는 ‘레볼루션’ 항목에서 시계와 시계 제작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레볼루션”이 미래로 가는 문이 된 것은 1789년 이후부터였다. (…)[note title=”3″back] Göran Therborn, From Marxism to Post-Marxism? (London: Verso, 2008), 129.[/note]


17세기 말의 소위 ‘고전 대 모던 논쟁’ 이후부터, “모던”은 시간적 또는 이념적인 어떤 다른 힘에 대한 명시적인 반대파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다른 여러 입장들 중의 하나로서 옹호되고 방어되고 제시되었다. 반면 “컨템포러리”는 어떤 기본 범주 또는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말이 그냥 어쩌다 보니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성공이 전적으로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그 말은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미술 생산의 장에 잘 맞아 떨어진다. 아마도 우리가 집단적으로 길을 잃은 결과로, 오늘날 미술계에서 모더니티는 고대 유물이라는 의심을 사게 되었다. “선언문의 시대”는 오래 전에 향수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선언문의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갈수록 원자화되고, 응집력 있는 미술 운동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아마 “컨템포러리” 선언문은 집단적 행동을 촉구하는 순진하고 낙관적인 요구로 인식될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상황을 제안할 수 있는, 그저 과거만 바라보기보다 다음 가능성의 시작을 명명할 수 있는 급진적 변화에 대한 긴급한 갈망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질문을 2008년 10월 런던 켄싱턴 가든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에서 열린 “선언문 마라톤(Manifesto Marathon)”이라는 이틀 간의 “미래학 회의”에서 심도있게 논의했다.[note title=”4″back] 2008 10 18일과 19일에 열린 선언문 마라톤: 21세기를 위한 선언문들(Manifesto Marathon: Manifestos for the 21th Century)”은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마라톤 이벤트 시리즈의 세 번째 행사로서, 지난 세기에 비해 정규 그룹에 소속되어 작업하는 미술가들의 수가 줄어들고 미술 운동이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는 시대에 어떻게 선언문들을 개발할 것인가 하는 의제를 제기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2005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인터뷰 마라톤의 개념을 발명했는데, 이것은 패널 토론, 전시, 퍼포먼스를 한데 묶는 실험적 성격의 공공 행사로 제시되었다. 이 개념은 2006년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오브리스트의 마라톤 인터뷰에 동참하면서 한층 진화했다. 오브리스트가 24시간 동안 70명 이상을 인터뷰한 서펜타인 갤러리의 섬머 파빌리온은 렘 콜하스와 구조 디자이너 세실 밸몬드(Cecil Balmond)가 공동 디자인한 작품으로, 서펜타인의 디렉터 줄리아 페이턴존스(Julia Peyton-Jones)가 기획한 연례 건축 의뢰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2006년 마라톤은 2007년 올라푸어 엘리아손(Olafur Eliasson)과의 실험 마라톤, 2008년의 선언문 마라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9년 시() 마라톤으로 계속 이어졌다. 2009 12월 오브리스트와 콜하스는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인 선전에 개입하여 선전 마라톤: 중국적 사고라는 행사를 열었다.[/note]


인쇄물로서의 선언문과 그 부재에 관해, “선언문 마라톤”의 책을 디자인한 잭 케이에스(Zak Kyes)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선언문의 인쇄된 형태는 언제나 그 급진적 어젠다와 분리 불가능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논쟁과 교환의 장소로서 출판과 배포의 행위에 능동적으로 개입한다. 따라서 두껍고 균질한, 휘황찬란한 출판물이 난무하는 오늘날에 발표되는 선언문의 명료함을 – 또는 많은 경우에서 발견되는 교묘한 의도적 혼란스러움을 – 재검토하는 것은 예지적인 일이 될 것이다. (…) 하나는 명백하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선언문 없이는 모호한 유토피아 이상의 대안을 작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선언문 없이는 미래를 생각해낼 수 없다.[note title=”5″back] 잭 케이에스, “선언문 마라톤,” 2008년 10월 18일.[/note]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유토피스틱스 Utopistics〉라는 책에서 21세기의 역사적 선택을 조망하며 현실적 제약 하에서 사회의 어떤 부분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 완벽해지지는 않더라도, 더 낫게 바뀔 수 있는지 – 탐구한다.[note title=”6″back] Immanuel Wallerstein, Utopistics: Or, Historical Choic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The New Press, 1998).[/note] 전방에 부대를 배치하는 것처럼, 선언문은 그런 파열을 일으킬 수 있도록 대항적 전선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19세기적 패러다임을 훌쩍 넘어서, 세계 체제에 팔아넘겨진 꿈들을 가로질러 여행한다.

 

지미 더햄  1988.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가이 토토사가 편집한 《Unbuilt Roads: 107 Unrealised Project》(Hatje Cantz, 1977) 수록 삽화
지미 더럼(Jimmie Durham), 〈빌보드 제안서 Billboard proposal〉, 1988. 출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와 가이 토르토사(Guy Tortosa)가 편집한 Unbuilt Roads: 107 Unrealised Project (Hatje Cantz, 1977) 수록 삽화


결국 선언문은 근본적으로 초학제적인 장치다. 마틴 푸크너(Martin Puchner)는 최근작 〈혁명의 시: 마르크스, 선언문, 아방가르드 Poetry of the Revolution: Marx, Manifestos, and the Avant-Gardes〉에서 그 역사를 거론한다.[note title=”7″back] Martin Puchner, Poetry of the Revolution: Marx, Manifestos, and the Avant-Gard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note] 그는 선언문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누는데, 1단계는 선언문이 식별 가능한 정치 장르로 부상하는 19세기 중반(〈공산당 선언〉, 1949)이고, 2단계는 미술 선언문이 폭증하면서 아방가르드 운동이 창출되는 20세기 초반(〈미래파 선언〉, 1909), 3단계는 사회주의 선언문과 아방가르드 선언문이 경쟁 관계에 놓였던 1910-60년대다. 50여 년이 지난 후, 이 경쟁 관계는 그에 불을 붙였던 정치적 대립 관계가 흐려지면서 함께 쇠퇴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 미술 선언문은 단순히 미술의 정치적 야심을 등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 작품 자체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 선언문의 이미지 속에서 어떤 미술이 형성되었다. 미술은 내성적이기보다 공격적인 것, 과묵하기보다 소리를 지르는 것, 개인적이기보다 집단적인 것이 되었다.”[note title=”8″back] 같은 책, 6. [/note] 이는 전통적인 미술의 선언문에 부합하는 말이다. 그러나 21세기 미술의 선언문은 공격적이기보다 내성적이고, 소리를 지르기보다 과묵하고, 집단적이기보다 개인적이다.


미술 선언문과 정치 선언문의 두드러진 공통점은 집단적 파열을 일으키고자 했다는 것, 특히 집단 선언의 형태를 취했던 과거의 거의 모든 선언문의 경우에 어떤 집단적 “우리”의 목소리를 상정하려고 의도했다는 점이다. “선언문 마라톤”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정치 선언문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복수형으로 말했고 (마찬가지로 복수형으로) 지지자들을 모으고자 했다.”[note title=”9″back] 에릭 홉스봄, “선언문 마라톤,” 2008 10 19일.[/note] 참된 민중의 집단들은 때로 어떤 사람이나 정기간행물을 중심으로 집결하면서, 아무리 단명하더라도 자기들이 무엇에 대항하고 무엇을 공유하는지 분명히 의식한다. 하지만 홉스봄도 인정하듯이, 이제 그것은 지난 세기의 역사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홉스봄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미래에 관한 모든 저술이 봉착하는 문제는 우리가 미래에 관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의 어떤 점이 싫고 왜 싫은지 알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선언문은 비난에 가장 능하다. 그러나 미래에 관해서는, 우리의 행동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 외에는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note title=”10″back] 같은 발표.[/note]


홉스봄의 말에 호응하여, 티노 세갈(Tino Sehgal)은 그런 의도치 않은 결과를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 21세기의 특징이라고 시사했다.

 

나는 21세기가 바라건대 좀 더 대화나 대담과 같은 것이 되리라고, 아마도 그 자체가 일종의 선언이랄까 뭐 그런 것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지 20세기가 저 자신에 대해 너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21세기는 너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에 참여하는 것, 벌떡 일어서서 즉각적으로 자기 의도를 표명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note title=”11″back] 티노 세갈, “선언문 마라톤,” 2008 10 19.[/note]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톰 매카시(Tom McCarthy)가 지적했듯이, 선언문의 확실성은 아직도 어떤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선언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포맷이다. 그것은 20세기 초반의 정치적, 미학적 격동기에 속한다. 허풍과 공격성, 반쯤은 묵시론적이고 또 반쯤은 유토피아적인 추진력, 그 성실성 – 이 모든 선언문의 수사법적 장치는 오늘날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저항하기 어려운 힘이 있다. 마치 뒤샹에게 부서진 자전거 바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작동을 멈춘 것들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note title=”12″back] 톰 매카시, “선언문 마라톤,” 2008 10 18.[/note]

 

그렇지만 선언문을 추동하는 것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 또는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는 미래의 속성 그 자체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들 속에서, 선언문의 유토피아적 추진력이나 사회적 상상력과 유사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실행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면, 전 세계의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과학자, 다른 실무자들이 만든 수백 개의 제안서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버려져 있다. 실현되지 않은 건축 모형이나 공모전에 제출된 프로젝트는 종종 출판되고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시각 미술 분야에서 계획되었으나 실행되지 못한 공적 노력은 일반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남게 된다.


나는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미술계에서 아직 보고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이라고 본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보여주었듯이, 현행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단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며, 그 주변으로 주의깊게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이 에워싸고 있다.[note title=”13″back] 다음을 참조하라. Henri Bergson, Creative Evolution (New York: Dover, 1998[1911]).[/note] 실현되지 않은 놀라운 프로젝트들이 저기 펼쳐져 있다. 잊혀진 프로젝트, 오해된 프로젝트, 상실된 프로젝트, 서랍에 파묻힌 프로젝트,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 시적-유토피아적 꿈의 구성물,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 부분적으로 실현된 프로젝트, 검열된 프로젝트 등. 가지 않은 어떤 길들을 기억하고, 그중 일부를 (향수적이거나 애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미래의 제안 또는 가능성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긴급해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컨템포러리의 역설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모더니즘의 역사화 자체가 역설적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무상하고 우발적인 것, 미래적인 것이 과거의 유물이 될 수 있는가? 사실 오늘날의 미술계 안에서 “컨템포러리”라는 말은 대부분 시대 구분의 기능을 가져간다. 그리고 이런 시간적 표식은 항상 그 이전과 이후를 함축한다. 이런 식으로 “컨템포러리”는 처음 선언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제하며, 더욱 특화된 용법으로 수렴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지 그 겉보기 의미를 가리키는 말로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결국 “컨템포러리 아트”는 겉보기의 단순성을 상실하고 고유한 “그 이전”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물론 모더니즘과 컨템포러리 사이의 결정적인 역사적 분기점을 지정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종국에는 끝없는 논쟁만을 낳을 뿐이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1960년대의 귀환”은 안 될거고, 마찬가지로 1959년을 “모든 것이 바뀐 해”라고 매혹적으로 설명하는 프레드 캐플란(Fred Kaplan)의 논의 또한 소금을 좀 쳐서 먹어야 맛이 난다.[note title=”14″back] 다음을 참조하라. Fred Kaplan, 1959: The Year Everything Changed (Hoboken, NJ: Wiley, 2009).[/note]

 

“컨템포러리”에 대하여 내가 앞서 개괄한 몇 가지 혐의들 – 의미의 모호함, 기본적 범주로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 또는 그저 저질의 상식으로 고착되는 것 – 을 벗겨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컨템포러리”의 명사적 용법을 살펴보면 가장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이 말은 어떤 관계를 함축한다. 그러니까 무언가 다른 것에 대하여 “컨-템포러리”하다는 것이다. “컨템포러리”라는 말의 어원은 중세 라틴어 “contemporarius”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와 함께”라는 의미의 “con”과 “시간의”라는 의미의 “temporarius”로 구성되는 이 단어는, 오늘날의 의미와 유사하게 “시간과 함께,” “시간 속에서” 등의 관계적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 또한 보들레르의 “모던”이 간과했던 것은 – 공간을 가로지르는 서로 다른 시간들의 다중성, 오늘날까지 진정 전 지구적 규모로 계속되고 있는 모더니티를 관통해 나가는 서로 다른 경험들과 궤적들의 다중성이다.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장기 지속(longue durée) 상에서 어떻게 격변이 일어나는지, 이를테면 16세기 권력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변환되는 그런 큰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기술한다.[note title=”15″back] 다음을 참조하라. Fernand Braudel, The Mediterranean and the Mediterranean World in the Age of Philip II, vol. 2, trans. Siân Reynold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note] 지금 우리는 중력의 중심이 신세계들로 옮겨가는 시기에 살고 있다. 20세기의 두 번째 50년은,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와 라즐로 글로처(Laszlo Glozer)의 혁신적인 전시 제목을 빌자면, “서양 미술(Westkunst)”의 시대였다.[note title=”16″back] 서양 미술”, 쾰른시립미술관, 쾰른, 서독, 1981 5 30-8 16.[/note] 반면 21세기 초반에는 새로운 중심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몇 개만 예를 들어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홍콩, 서울, 도쿄, 뭄바이, 델리, 베이루트, 테헤란, 카이로 등이 있다. 1990년대 이후의 미술 전시들은 이처럼 새로운 미술의 지형도가 형성되는 데 눈에 띄게 기여했다.


도시의 서로 다른 입력의 지층들에 대한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시의 주요한 잠재력 중 하나다. 이런 이벤트들이 증식하는 것은 중심의 다중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20세기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절대적인 중심을 향한 추구는 21세기에 중심의 다중화를 불러일으켰고, 여기에 비엔날레가 중요하게 기여했다. 또한 비엔날레는 지역적인 것과 전 지구적인 것 간의 다리 역할도 했다. 다리는 그 정의상 두 개의 끝이 있는데, 미술가 황용핑(Huang Yong Ping)이 최근 지적했듯이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나의 지점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다리가 된다면 두 개의 지점을 가져야 한다.”[note title=”17″back] Huang Yong Ping in conversation with Rohini Malik and Gavin Jantjes, trans. Hou Hanru, Fondation Cartier, Paris, March 8, 1997, http://www.londonfoodfilmfiesta.co.uk/Artmai~1/Ping.htm.[/note] 이 다리는 언제나 위험하다. 하지만 황용핑은 다리라는 관념이 뭔가 새로운 것을 개방할 가능성을 창출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컨템포러리”는 속속들이 시간-공간적인 것이다.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 , 1989. 종이에 수채화, 캔버스에 마운트. 51 x 72 cm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 〈하늘 높은 곳 Cieli ad alta quota〉, 1989. 종이에 수채화, 캔버스에 마운트. 51 x 72 cm

 

1993년 1월부터 12월까지 알리기에로 에 보에티는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 Museum in Progres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본인의 작업 〈하늘 높은 곳〉의 베리에이션을 만들었다. 이 수채화 드로잉의 6가지 버전이 오스트리아 항공사 사보 〈스카이 라인즈 Sky Lines〉에 수록되었는데, 항공사 승객이 승무원에게 요청하면 이 드로잉을 비행기에 설치된 접이식 테이블과 똑같은 크기의 지그소 퍼즐로 만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note title=”18″back] 〈하늘 높은 곳전시는 오스트리아 항공사와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가 주최하고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기획했다. 다음을 참조하라. http://www.mip.at/.[/note] 다방면의 특정 영역 안에서 특정한 수의 비행기들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 높은 곳〉의 6가지 디테일 이미지들은 언제나 확장의 잠재력을 함축한다. 그것은 높은 곳과 낮은 곳 양쪽 모두에서 프레임 바깥으로 계속 뻗어 나간다. 목적지들은 상호 접속하고 한데 뒤엉키면서 노선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노선들을 따라 의미가 창출되며, 형태들이 이주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생겨난다.


우리는 보에티의 〈하늘 높은 곳〉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파악 불가능성으로부터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글 “무엇이 컨템포러리인가?”로 건너갈 수 있다. 이 글은 자신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란 그 시대와 완벽하게 동조되지 않는 사람임을 보여 준다. 자신의 국면을 파악한다는 것은, 현재의 어둠 속에서 우리와 만나려 하나 그러지 못하는 시대의 빛을 지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컨템포러리한 사람은 자기 시대의 어둠을 자기와 관련된 무엇으로, 자기에게 개입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 무엇으로 지각하는 자다.”[note title=”19″back] Agamben, 45.[/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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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오거스트-도르멜(Renaud Auguste-Dormeuil), 〈게르니카 – 1937년 4월 25일 – 23 : 59 Guernica – April 25, 1937 – 23 : 59〉, 2005. 잉크젯 프린트, 알루미늄에 마운트해서 액자를 씌움. 170 x 150 cm.

 

그는 컨템포러리를 정확히 “분리와 시대착오를 통해 시간에 달라붙는 관계의 형식”으로 정의하면서, 이런 의미에서 컨템포러리한 사람을 자기 시대 또는 세기의 빛에 눈멀지 않는 자로 묘사한다. “컨템포러리한 사람은 자기 시대의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하기 위해 그 시대를 계속해서 응시하는 자다.”[note title=”20″back] 같은 책, 41, 44.[/note] 아감벤은 천체물리학을 끌고 와서, 빛이 최고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지만 그 빛이 발원하는 은하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뒤로 물러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닿지 못한다고, 그래서 하늘이 어두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정의를 끊임없이 벗어나는 잠재성들을 분간하는 것이 바로 컨템포러리의 순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장 루슈(Jean Rouch)는 종종 내게 컨템포러리한 사람이 되는 것, 과거와 미래 간의 어려운 협상에 참여하는 것에 요구되는 엄청난 용기에 관해 말하곤 했다.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그는 어떤 고고학적 형태를 통해 현재의 국면에 접속하는 법에 관해 말했다. 루슈와 아감벤은 컨템포러리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의견이 일치한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가본 적이 없는 현재로 회귀하는 것, 파열과 불연속을 통해 시간의 동질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아감벤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 컨템포러리한 사람은 현재의 어둠을 지각하면서 결코 그 목적지에 닿지 못하는 빛을 파악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시간을 나누고 보충하면서 그것을 변형시켜 다른 시간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는 자다. 그는 뜻밖의 방식으로 역사를 읽을 줄 알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의지의 소산이 아니라 자신이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어떤 긴급함으로부터 발생한 필연에 따라 “그 역사를 인용할” 줄 안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어둠을 이루는 이 비가시적 빛이 과거에 그늘을 드리우고, 그 그늘에 닿은 과거가 다시 현재의 어둠에 응답할 능력을 획득하는 것과 같다.[note title=”21″back] 같은 책, 53.[/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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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미술전문지 월간 「아트인컬쳐 Art In Culture」 2013년 1월호에 수록된 바 있으나 편집부와 번역자의 동의를 얻어 수정 후 재게재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