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미술에 대한 발췌된 답변들
번역 문혜진

더그 앳킨(Doug Aitken), 〈몽유병자Sleepwalkers 〉(2007)
더그 앳킨(Doug Aitken), 〈몽유병자 Sleepwalkers 〉(2007)

 

여기서 나는 ‘동시대미술’에 대한 설문 조사(추후  『옥토버 October』지에 실렸다)에 답한 몇몇 대답들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글을 구성할까 한다. 우선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동시대미술’이라는 범주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동시대미술의 혼종성에 나타나는 감각으로, 현재 벌어지는 사례 중 다수가 역사적 결정이나 개념적 정의, 비평적 판단과 무관하게 부유하는 듯한 현상을 뜻한다. 한때 일부 작품과 이론을 좌우했던, ‘네오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패러다임들은 궁지에 빠졌고, 대신 등장한 지적 세력이나 보다 상세한 주해 모델도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이와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동시대미술’은 그 자체로 제도적 대상이 되었다. 학계에서는 동시대미술 분야의 교수직과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미술관에서는 동시대미술만 전담하는 부서와 기관이 존재한다. 이들 대부분은 동시대미술을 이차대전 이전의 미술과 구분할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차대전 이후의 미술과도 다른 것으로 취급하곤 한다.

 

이와 같은 자유로운 부유는 실제인가 가상인가? 그저 일부 지역에서만 감지되는 것일까? 아니면 대서사의 종말이 불러 온 단순한 효과일까? 만약 이런 현상이 실제라면, ‘시장’과 ‘세계화’라는 일반적인 이유 외의 주요 원인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현상은 정말 (와중에 현재 위기에 처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직접적 산물인가? 작가와 비평가, 큐레이터, 미술사가의 형성과 실천에 미친 주된 결과는 무엇인가? 미술사의 다른 분야에 부차적인 영향을 준 것이 있나? 도움이 될만한 유사한 상황이 다른 학문이나 예술에 존재하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명백한 존재의 가벼움에 이점이 있을까? [note title=”1″back] Hal Foster for the Editors, “Questionnaire on ‘The Contemporary’,” October 130 (Fall 2009), p. 3. [/note]  

 

보다시피 질문지는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와 큐레이터를 겨냥한 것이다. 이 질문들이 결과적으로 너무 지엽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발췌된 답변들을 연관성이 있는 것끼리 묶어서 배치했다. 이 글의 목적은 오늘날 내 분야에서 벌어지는 ‘동시대미술’에 대한 논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발췌는 남캘리포니아의 동시대미술사가 그랜트 케스터(Grant Kester)의 답변 중 일부다.

 

‘동시대미술’의 문제는 하나의 학문으로 서양미술사가 처음 공식화되었을 때 발생한 긴장에서 기인한다. 19세기 중반 미술사라는 학문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유럽의 역사가들은 대단히 다양한 낯설고도 새로운 미술품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은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초기 고고학적 출토품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로 식민지를 확장한 결과 유럽 전역에 유통되던 식민지의 미술품들이었다. 역사가와 철학자들은 현대의 관객이 그들이 흠모하는 미술작품의 극히 다른 문화(시간이나 공간적 거리 때문에 동시대 관객은 그 문화가 공유하는 의미에 접근할 수 없는 문화)와 자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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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바(Alfred Barr), 『추상미술의 진화 Evolution of Abstract Art』 (1936) 표지

 

다음은 시카고에서 미술사에 대한 메타 연구를 진행하는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의 답변 중 일부다.

 

 ‘세계미술사’와 오늘날 이 분야 비평가의 관점에서 보면, ‘동시대미술’이란 미술사라는 학문에 속하지 않거나 아니면 반대로 이 학문의 대표적인 예로 생각될 것이다. 전자는 동시대미술이 미술사의 바깥 혹은 미술사 이전에 자리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새로 발견된 보편성(정의상 ‘동시대미술’이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동시대미술 비평가이자 미술사가인 권미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동시대미술사는 미술사라는 학문을 구성하는 세부 전공들이 불균등하게 조직된 교차점에 자리한다. 대부분 대학의 미술사학과에서 서양미술사를 다루는 세부 전공은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로 향하는) 시대 개념에 따라 연대기 순으로 조직된다. 비서구미술사를 다루는 세부 전공의 경우 설사 대륙 전체(아프리카, 중국, 라틴아메리카 등)를 포괄하더라도 문화적으로 분리된 단위로 지리적으로 파악된다. 비록 제도적으로는 서양미술사의 시간적 축을 따라 근대 ‘이후’에 도래하는 가장 최근의 시기(학과가 교수진의 업무량이나 분야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시작 시점이 1945년이 되기도 하고 1960년이 되기도 한다)로 자리매김되지만, 동시대미술사의 범주는 공간적이기도 하다. 전 세계 역사가 공유하는 동시대성을 이접적이면서도 연속적인 지적 지평으로 동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인데, 이는 (총체로서의) 현재를 이해하는 근간이다. 다시 말해 동시대미술사는 시간적으로 묶는 단위인 동시에 공간적으로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전혀 다른 지식과 전통들이 생성되며 발생하는 강력한 긴장의 장이요 그렇기 때문에 미술사 일반에 도전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중국동시대미술사를 어디에 자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역사에 맞는 시간의 틀은 무엇인가? 중국동시대미술사는 중국전통미술 및 중국의 문화적, 정치적 역사와 얼마나 긴밀히 관련되어야 하나? 서양미술사나 서구 미학 담론과는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중국동시대미술사는 동시대미술사의 하위 장르인가? 아니면 동시대미술사에서 명명되지 않은 영역은 서양미술 혹은 미국미술이라고 전제하고, 중국동시대미술사를 동시대미술사에 상응하는 별도의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

 

 

워싱턴 D.C. 근처 동부 연안에서 이차대전 이후의 미술(이하 전후 미술)을 연구하는 미술사가 조슈아 쉐넌(Joshua Shannon)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5년 간 동시대미술에 대한 학술연구는 미술사의 주변부에서부터 가장 빨리 발전하는 분야로까지 성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존 작가를 논문 주제로 쓰지 못했으나, 2009년 대학미술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이제는 동시대미술사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미술사 내 어떤 다른 전공의 경우보다 많다. 예를 들어 동시대미술사 분야의 일자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를 합한 것보다 거의 두 배쯤 많다. 우리는 한때 현재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꺼려하던 미술사가 이제는 현재에 푹 빠져버린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은 로스앤젤레스의 동시대미술이론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yer)의 답이다.

 

최근 나는 ‘동시대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고도 공격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져왔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지금 이순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라면, 너는 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가? 네가 이용해야 할 아카이브와 연구 자료는 어디에 있나? 상업 갤러리의 작가 파일에 있는 건가? 아니면 작가의 작업실 서랍에? 그도 아니면 작품 그 자체에? 혹은 작가와의 인터뷰에? 작품에 적용하고자 하는 이론적인 패러다임에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순간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비평에 있는 걸까? 동시대미술사가로서 네가 하는 일이 미술비평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미술사가 네가 글 쓰고자 하는 작품과 네가 하고자 하는 학술적 기여에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후 미술을 연구하는 패멀라 리(Pamela Lee)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나는 동시대미술의 양상을 ‘움직이는 표적 신드롬(moving target syndrome)’이라 부르겠다. 보도자료 한 뭉치는 어떤 시점에 적절하다고 수용되는 역사가 되는가? 도중에 작업이 급격하게 바뀌는 현대작가들에 대해 어떻게 쓸 것인가? 지극히 긴급하고 중요해 보이던 문제가 얼마 안 되어 절실함을 잃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규정할 역설적 방법이 있다. 동시대미술사는 언제나 영속적으로 진행 중의 상태라 미성숙하다. 새로움과 비평적/상업적 소진 사이를 끝없이 왕복하기 때문이다.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동시대미술을 담당하는 젊은 큐레이터 마크 고드프리(Mark Godfre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오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사상에서 어떤 ‘패러다임’도 도출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담론의 성공부터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비평담론은 대부분의 역사가와 비평가들로 하여금 동시대미술에서 무엇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하고도 지배적인 모델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영향으로 시야를 확장하면서, 미국 및 유럽의 미술사가와 큐레이터들은 동시대미술이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중국과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진지한 미술이 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를 볼 기회가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누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이름을 붙이려 할 것인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명명한다는 것은 전체를 총괄해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오만한 신식민주의의 행보와 흡사한 것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가정하던 것들을 불신해야 한다. 북아메리카나 서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의 개념이 전혀 다른 곳의 미술에서, ‘네오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쓸모가 있겠는가?

 

뤼시앵 클레르그(Lucian Clergu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caso)와 마르키즈 제도의 조각상
뤼시앵 클레르그(Lucian Clergue), 〈파블로 피카소와 마르키즈 제도의 조각상 Picasso and the statue of the Marquesas Islands〉(1955)

 

다음은 피츠버그에서 활동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동시대미술사가 테리 스미스(Terry Smith)의 대답이다.

 

 이차대전의 여파가 유럽이라는 개념을 재편하게 만든 이래 오늘날의 세계상은 어떻게 변화했나? 탈식민화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문호를 개방하고 중국과 인도가 초강대국[note title=”2″back] 냉전 체제의 종식을 알리는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 사건 이후 유일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을 의미한다.(역자 주)[/note] 으로 부상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은 침체되는 상황에서, 작금의 세계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혁명의 시대 대 남아메리카의 독재가 일차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이끌어내고 다음으로 대륙 전체를 포퓰리즘 사회주의로 몰고 간 이래, 오늘날의 세계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 제4세계로 구축된 구조가 내파되면서, 어떤 종류의 새로운 힘의 재배열이 생겼나? 오늘날 포스트-1989 시대의 유일한 초강대국 과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역사적 자아실현, 끝없이 팽창하는 생산과 소비의 전지구적 분배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만들어낸 심연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세계에 대한 인식(world-picturing)과 장소의 창출(place-making)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 우리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인 그 둘을 말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전후 미술을 연구하는 캐나다 출신 미술사가 알렉스 알베로(Alex Alberro)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 기술과 의사소통 수단이 예상치 못하게 전지구적으로 규제 없이 퍼지면서, 동시대미술은 새로운 기술 이미지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그 한가지 현상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테크놀로지아트가 갈수록 유형의 작품을 대체하는 것이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디지털 사진부터 영화와 비디오 설치, 나아가 컴퓨터아트와 기타 뉴미디어아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하이테크 혼종들이 급증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화이트큐브’는 ‘블랙박스’로 대체되고 있으며, 소형 스크린 영화나 비디오 모니터는 대형 벽면 투사로 대체된다. 또 다른 현상은 미술품 생산과 분석의 주요 관심이 사물에서 이미지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의 경우 이 시기 시각문화연구의 부상은 새롭게 대세로 떠오른 이미지의 우위를 드러내는 징후다. 더욱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한다는 상상은 예측하지 못한 영향을 무수히 끼쳤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사실을 말하기 위해 소설과 애니메이션을 도입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에는 실제를 생각하려면 허구화해야 하며, 실제는 너무 난해해서 차라리 비유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고 여기는 것 같다.

 

 

뉴욕에서 『아트포럼』 편집장으로 일하는 팀 그리핀(Tim Griffin)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동시대미술의 잠재적 아이러니는 자신의 입지를 따로 표시함으로써 실상 스스로를 더 넓은 문화적 맥락 내의 한 장소, 즉 수많은 것들 중 또 하나의 흥미거리 정도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는 은연중 역설적이다. 미술이 존재하려면 고유의 특수성을 단언해야 한다는 사실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다양한 역사 속에 스스로를 재기입하거나 이전 시대의 해석 모델을 현재의 상황에 투사하는 행위 같은 것이 그러한 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러한 단언이 미술로 하여금 오늘날의 대중문화를 점점 더 닮게 만든다.

 

 

다음은 미국 중서부에서 활동하는 젊은 비평가이자 활동가인 예이츠 맥키(Yates McKee)의 답변이다.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제도화는 작품과 비평활동에 있어 새로운 종류의 제휴와 가능성, 복합성을 수반한다. 거시 구조분석이 시급함을 부인하진 않지만, 이러한 종류의 뒤엉킴을 평가하는 것은 포괄적인 칭찬이나 비난보다 보다 면밀하고 장소특정적인 독해다. 이는 한편으로 미술시장의 후원자들이 조장하고 다른 한편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라는 멜랑콜리한 (그리고 종종 위선적으로 스스로를 무죄시하는) 내러티브에 근거해 미술사적 권위의 수호자들이 방어적으로 무시하는 어떤 경향을 거부하는 것으로, 동시대미술을 이달의 신제품처럼 치부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에 따르면, 담론과 제도, 경제적 측면에서 갈수록 초국가적으로 변하는 동시대미술은 뿌리깊은 예술적, 비평적, 역사적 전통에 대한 생산적인 지적 도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때 비평 및 역사적 전통에 도전하는 것은 엔위저가 ‘포스트식민주의의 성좌’라고 부른 여전히 진행중인 모순을 고려해 예술 실천을 행하는 것이다.

 

 

다음은 런던의 동시대미술사가 T. J. 디모스(T. J. Demos)의 대답 중 일부다.

 

한가지 위험은 어떤 한계도 부인하는 차이를 다문화적으로 ‘존중’하도록 지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에 한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은연중 타자에 대한 신식민주의적 관계를 감추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이 주장하듯, 타자를 위한 다문화주의는 “부인되고, 뒤집히고, 자기 지시적인 형태의 인종차별주의를 노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거리가 있는 인종차별주의(racism with a distance)’는 타자의 정체성을 ‘존중’하지만, 타자를 자폐적인 ‘진정한(authentic)’ 공동체로 상정한다. 이때 다문화주의자는 타자의 공동체에 대해 자신의 우월한 보편적 지위 때문에 가능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note title=”3″back]Slavoj Žižek, “multiculturalism, Or, the Cultural Logic of Multinational Capitalism,” New Left Review 225 (Sept/Oct 1997), p. 44. [/note]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에게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의 〈매와 여인 Lady with a Falcon〉(c. 1880)을 보여주는 사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에게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의 〈응사 The Falconer〉(1880)을 보여주는 사진. 히틀러는 이 그림을 화상 칼 하버스톡(Karl Haberstock)에게서 합법적으로 구매했다.

 

내 모교인 프린스턴대학의 동시대미술 담당 큐레이터 켈리 바움(Kelly Baum)은 이렇게 답했다.

 

만약 미술의 혼종성이 기능장애가 아닌 가능성을 의미한다면 어떨까? 혼종성이 고통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혼종성 덕분에 미술이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로 귀결되지 않는 오늘날의 사회정치적 조건에 생산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면 어떠한가? 

 

나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미술은 맥락을 흉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공격적 논쟁(agonism)’, ‘개별화(disaggregation)’, ‘특수화(particularization)’를 시연하고 있는 미술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혼종성은 단지 동시대미술의 조건만이 아니다. 즉, 혼종성은 그 자체로 중요한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 답변은 뉴욕 북부에서 전후 미술을 연구하는 젊은 미술사가 레이첼 하이두(Rachel Haidu)의 것이다.

 

지식에 대한 자기애적 쾌락을 제외한다면, 무엇 때문에 역사와 연관되고자 하는가? 당신의 질문은 미술과 비평의 관계에 있어 역사적 타당성을 상정한다. 하지만 비평을 만들어내는 욕망과 환상, 전이(displacement)는 어떠한가? 이들은 미술과 역사를 연관시키는 비평에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만약 구체적이고 생산적으로 검토하게끔 이끄는 것이 미술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체 왜 (미술의 제도화는 차치하고라도) 미술에서 역사적 무게나 복합성을 찾는가? 그저 무게감만을 위해서? 역사와 관련이 없으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하다고 생각되기에, 역사와 연관이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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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미술전문지 월간 「아트인컬쳐 Art In Culture」 2013년 1월호에 수록된 바 있으나 편집부와 번역자의 동의를 얻어 수정 후 재게재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