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셉트로니카의 부상: 왜 최근 10년간의 많은 전자 음악은 클럽보다 박물관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번역 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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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적 디테일과 함께 20명 이상의 협업자들이 보탠 목소리와 악기 소리로 와글거리는 프로듀서 치노 아모비(Chino Amobi)의 2017년 작 「Paradiso」는 〈파이널 판타지 7 Final Fantasy 7〉과 같은 복잡한 비디오 게임들을 비롯해 『오딧세이아』와 단테의 『신곡』 같은 대서사 내러티브들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 개념적 일렉트로니카를 만드는 그의 많은 또래들처럼, 아모비의 야심은 평행한 형태로 좌우로 퍼져 나간다. 그는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설명했듯, 「Paradiso」를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 그의 미술 석사 논문에 기반한 〈Eroica〉라는 제목의 책/사운드트랙 – 와 병합하고 그것을 영화, 그래픽 노블, 연극, 전시, 심지어는 의류 제작과 같은 다른 매체를 통한 스핀오프로 발전시키려 한다. “이는 층 위에 층을 쌓아 나가는 것과 같다”라고 그는 말한다.

 

전자음악이 개념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이 과열되기 시작한 것을 내가 언제 처음 알아차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2010년대의 어느 시점부터 내 메일함에 꾸준히 들어오기 시작한 보도 자료들은 마치 박물관 혹은 미술관 입구에 놓여 있는 텍스트처럼 보였다. 나 또한 내가 이 보도 자료들을 대하는 방식이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방문하는 것과 실제로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음악은) 대개 딱 한번만 듣고 말뿐인데, 예술가와의 인터뷰나 리뷰를 읽는 건 마치 「아트포럼 Artforum」에 실린 오래된 에세이처럼 기분 나쁠 정도로 이론적이었다. 이러한 개념적 작품은 캐주얼하고 반복-재생이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레코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개념적 작품은 조우하고 동화되기 위한 스테이트먼트, 뒤처지지 않으려는 개발이었다. 그것들의 프레이밍은, 발매된 앨범을 사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앨범에 투자하려는 소비자를 공략하는 것처럼 보였다.

 

콘셉트로니카(Conceptronica)는 어떤 특정한 장르가 아닌, 고해상도의 디지털 추상화부터 베이퍼웨이브(Vaporwave)와 혼톨로지(Hauntology)[note title=”1″back] 혼톨로지(Hauntology)는 본래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자신의 저작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론만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들을 다루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지만, 음악과 관련해서는 마크 피셔와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가 특정한 분위기의 노이즈를 사용하고 또 과거의 음반들을 활용하여 작업을 시도하는 이들의 음악적 조류를 지칭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이 조류에 속하는 음악가들은 과거의 음반들을 재-녹음하고 샘플링하는 등의 작업 방식을 통해 다소 으스스하고 유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로부터 혼톨로지라는 데리다의 개념과 이들의 연관성을 유추해볼 수 있게 된다. 레이놀즈와 피셔가 혼톨로지 음악으로 분류하는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더 케어테이커(The Caretaker), 더 포커스 그룹(The Focus Group), 베리얼(Burial) 등이 있다. 혼톨로지에 관한 레이놀즈의 논의는 『레트로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의 10장 ‘흘러간 미래의 유령: 샘플링, 혼톨로지, 매시업’을 참고하라. 그리고 혼톨로지에 관한 보다 심도 있는 탐구는 신예슬, “혼톨로지 음악 경향의 매체적 특성과 그 미학”, 서울대학교 석사 논문, 2017. 을 참고하라.(역자 주)[/note]같은 양식들에 이르는, 힙한 음악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예술적 작동의 양태 – 그리고 청중의 수용 – 에 더 가깝다. 콘셉트에 의해 추동되는 프로젝트들은 광범위한 아이디어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정을 반영하면서 과잉-공급되는 주목 경제에서 이들이 경쟁할 방법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선구적인 콘셉트로니카 예술가들은 아트 스쿨이나 대학원 과정을 수학했고, 비판 이론과 철학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이나 대화에 방점을 찍는 것에 익숙하다. 「피치포크 Pitchfork」와의 인터뷰에서, 치노 아모비는 흑인 연구 및 퍼포먼스 연구자인 프레드 모튼(Fred Moten)부터 90년대의 사이버 이론 연구집단인 CCRU까지 많은 사람들을 언급한다. 레이블 하이퍼덥(Hyperdub) 소속 프로듀서인 리 갬블(Lee Gamble)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욕망과 조현병에 대해 혼미할 정도로 조밀한 철학적 작업을 수행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의 저서 『천개의 고원』을 비공식적으로 들려주는 오디오북을 통해 촉발된 영감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이런 종류의 영향력이 큰 담론은, 후기 구조주의의 개념들과 대비되기 보다는 유치한 유머와 포르노 레퍼런스들로 점철된 90년대 IDM[note title=”2″back] Intelligence Dance Music의 약어이다. 레이블 워프에서 발매된 1992년 컴필레이션 앨범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유래한 장르이다. 주로 추상적이면서도 복잡한 소리를 추구하며, 레이브보다는 감상에 더 적합한 전자 음악이라고 평가된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에이펙스 트윈, 보드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 스퀘어푸셔(Squarepusher) 등이 있다.(역자 주)[/note] 기라성들 –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의 리처드 제임스(Richard D. James)와 루크 비버트(Luke Vibert) – 의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일상언어와 대비된다. 콘셉트로니카와 올드스쿨 IDM 사이의 또 다른 주된 차이는 후자가 지적인 사색보다는 생각 없는 몽상의 원동력으로서, 은은하게 비쳐 편안함을 안겨주는 배경 조명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 제도와 학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비평적 공용어에 유창한 콘셉트로니카 예술가들은 어떻게 스스로 큐레이트할지를 안다.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제안서와 기금 신청서로 자연스럽게 번역하여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꽤 유용한 장점인데, 이 예술가들은 음반 발매 수입이 아니라 계속해서 늘어나는 실험 음악 페스티벌의 국제적 순환, 그리고 박물관과 대학에서 보조금을 받은 공연들을 통해 작업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보통, 음악 이론보다 시각 예술 전통에서 훈련받은 콘셉트로니카 예술가들은, 소리 실험에 극도로 집중하는 오테커(Autechre)와 같은 IDM의 선구자보다 다수의 매체를 포함하고 대규모로 실연되는 작품을 만드는 매튜 바니(Matthew Barney)와 같은 인물을 점점 더 닮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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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노 아모비, 〈WELCOME TO PARADISO(CITY IN THE SEA)〉, 2017

 

이러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90년대 IDM과 2010년대 콘셉트로니카가 주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과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유사하다. IDM은 마약으로 추동되는 레이브 문화에 부속된 소수의 관심사였다. IDM 프로듀서들은 테크노와 같은 기능적 양식은 취했지만 집에서의 내향적인 감상에 적합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 양식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춤은 배제했다. IDM 프로듀서들은 또한 정글(Jungle)[note title=”3″back] 정글(Jungle)은 전자 음악의 세부 장르 중 하나로, 1990년대 초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브레이크비트 씬으로부터 발전되었다고 논해진다. 정글로 분류되는 많은 곡들은 150bpm에서 200bpm까지의 빠른 브레이크비트와 더불어 다소 느린 레게의 베이스라인을 함께 사용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엄격하게는 1990년대 말부터 독자적인 장르로 분화된 드럼 앤 베이스와 구분해야 하지만, 많은 경우 드럼 앤 베이스와 정글을 크게 구분하지 않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샤이 FX(Shy FX), 콩고 나띠(Congo Natty) 등이 있다.(역자 주)[/note]과 같은 장르들의 형식적 특징들 – 잘게 쪼개지고, 가속된 브레이크비트들 – 을 도전적인 아방가르드와 바보 같은 슬랩스틱으로 만들면서, 불능의 극한으로 밀어 넣었다.

 

마찬가지로, 콘셉트로니카는 종종 동시대 춤의 양식들과 왜곡된 거울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디컨스트럭티드 클럽(Deconstructed Club)”이라는 용어가 부상한다. 베를린 소재의레이블 팬(PAN)은 콘셉트로니카 예술가들이 모인 중심지로, 여기에 소속된 암네시아 스캐너(Amnesia Scanner)와 M.E.S.H는 모두 하드스타일(Hardstyle)로 알려진 과장된 유로 테크노에서 영감을 얻었다. 팬 레이블 소속의 또 다른 예술가인 스티네 얀빈(Stine Janvin)의 〈Fake Synthetic Music〉은 레이브에 대한 완곡한 오마주이며, 온전히 아티스트 자신의 목소리를 조작해서 만들어졌다. 다른 이들은 쾌락주의적 랩과 R&B 양식들을 뒤틀고 훼손한다. 이를테면, 베네수엘라의 프로듀서 아르카(Arca)의 초기 트랙인 〈Doep〉는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50센트(50 Cent)를 닮았다.

 

IDM이 레이브와 클럽의 유행이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중계 실황이었던 것만큼이나, 콘셉트로니카 또한 댄스 음악 역사의 아카이브를 뒤적거릴 수 있다. 실험적 전자 음악의 전설적인 레이블인 워프(Warp)와 메고(Mego)에서 작품을 냈던 이탈리아 프로듀서 로렌조 세니(Lorenzo Senni)는 〈The Shape of Trance to Come〉과 같은 트랙들에서 90년대 대형 클럽들을 솜털 같은 황홀감으로 가득 채운 유로 스타일을 개조한다. 팬에서 발매된 리 갬블의 2012년 데뷔 앨범 〈Diversions 1994-96〉은 영국 미들랜즈 지방의 정글 레이브에 대한 신기루 같은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특정 시기의 복고적 재창조가 아니라 낭비된 10대 시절 동안 그가 경험했던 강렬함에 대한 의례적인 회상에 가깝다.

 

콘셉트로니카 음악은 여전히 밤새도록 취한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댄스 음악의 가장 미치고 정신 나간 비트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그러나 콘셉트로니카 음악은 육체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음악이 쓰는 리듬을 사용하더라도 물리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진 않는다. 그것은 귀로 숙고하기 위한 음악이고, 듣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듣는 것으로 생각하기 위한 음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콘셉트로니카는 실제 클럽 음악보다는 과거의 클럽에서 촬영된 비디오나 사진을 전시한 것에 가깝다. 사실, 갬블의 〈Diversions 1994-96〉은, 레이브와 노던 소울과 같은 영국 노동 계급의 춤 문화에 대한 비가라는 점에서 시각 예술가 마크 레키(Mark Leckey)의 유명한 파운드푸티지 작품 〈피오구치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 Fiorucci Made Me Hardcore〉와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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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갬블, 〈In The Wreck Room〉, 2019

 

베를린에 기반을 둔 마티 칼리알라(Martti Kalliala)와 빌 하이말라(Ville Haimala)로 구성된 듀오 – 암네시아 스캐너는 자신들의 작품을 묘사하는 데 있어 비디오 게임이라는 하나의 시각예술 형식을 제시한다. 설령 그 형식이 교양 없고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말이다. 그들은 암네시아 스캐너를 “게임 디자인 스튜디오”에 비교한다. 레코딩과 믹싱 과정 동안 “POV 시점”이라는 아이디어가 그들을 안내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360도 서라운드 사운드를 모방하는 양이(兩耳)적인 요소들을 사용한다. 하이말라는 “이 세계를 구축한 것은 우리지만, 우리는 이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

 

“세계-구축하기(World-building)”라는 말은 인터뷰와 리뷰에서 클리셰가 될 정도로 너무 자주 등장하는 2010년대 레프트-필드(left-field)[note title=”4″back] 레프트-필드는 흔히 ‘비관습적’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레프트-필드 음악도 이러한 의미에 맞게,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지 않거나 장르적 관습에 이질적인 요소를 추가한 음악을 뜻한다. 다만, 이를 비관습적 음악으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영미권 내에서 이를 독립적인 장르로 간주해야 할 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컨템포러리”라는 범주를 둘러싼 시각 예술계 내의 논쟁을 떠올린다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관련된 논의는  디스콕스(Discogs)나 레이트유어뮤직(Rateyourmusic) 혹은 레딧(Reddit)의 키워드를 참고하라.(역자 주)[/note] 음악의 유행어 중 하나이다. 심지어, 수수께끼의 다크 엠비언트 예술가인 화이트 고블린(White Goblin)은 국제적인 넷 레이블 퀀텀 네이티브스(Quantum Natives)를 통해 「World Building」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렉순드(Recscund)의 클리포드 세이지(Clifford Sage)처럼, 퀀텀 네이티브스의 여러 예술가는 게임 디자인과 3D 애니메이션에 종사한다. 그들의 음악은 그들이 유튜브에 올린 비디오들과 함께 구상되며, 또 하나의 통일된 예술 형식으로서 경험되도록 의도된다.

 

세계를 구축하려는 야심은 분명 게임이 젊은 세대의 여가로 만연해진 것에 크게 힘입는다. 그것은 또한 영어덜트 소설 및 TV와 영화 속 디스토피아 판타지 프랜차이즈의 인기와도 연결된다. 디지털 오디오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화상 처리 기술(CGI)에 유사한 초인적 힘을 제공한다. 소프트웨어 사용자는, 규모 면에서 어마어마하고 불가능할 정도의 디테일을 갖춘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가상 현실 내에서 움직임의 환영을 떠올릴 수 있다. 오만과 독선은 – 노골적인 신 콤플렉스(God complex)[note title=”5″back] 정신분석학자 어니스트 존스(Ernsest Jones)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로, 개인이 자신의 능력이나 권한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과장된 감정을 갖는 특징이 있는 확고한 믿음 상태를 의미한다. 신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논박할 수 없는 증거나 해결 불가능한 문제나 어려움 등을 마주해도, 자신의 오류나 실패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이 의심의 여지없이 옳다고 간주한다. 다만, 이는 임상 심리학의 정식 용어나 공식적인 정신 질환의 병명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의 “God Complex” 항목을 참고하라.(역자 주)[/note]가 아니라면 – 마치 이들의 직업병처럼 보인다.

 

규모의 방대함은 이러한 가상 세계들의 물리적 차원에만 적용되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가상적 세계들의 성향에도 적용된다. 책 『디지모더니즘 Digimodernism』에서, 비평가 앨런 커비(Alan Kirby)는 “전진성과 무한성”을 21세기 문화의 특징이라고 밝힌다. 흥미진진한 추동성, 줄거리와 등장인물과 장소들로 가득 찬 대하소설 같은 서사들의 전개, 많은 프리퀄과 속편의 생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10년, 톨킨의 팬인 그라임스 Grimes가 “두꺼운 책을 만들고 싶다… 나는 30장쯤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더미 Dummy에서 발표했을 때 그는 콘셉트로니카 시대를 위한 풍조를 확립한 셈이다.)

 

거시적으로 사유하기가 주변부에 있는 음악에 토착화되었다. 실험적인 전자음악가인 제임스 페라로(James Ferraro)는 〈Four Pieces for Mirai〉라는 제목의 대서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는 네 장의 레코드로 이루어진 서사시에, 서곡에 해당하는 EP와 600쪽 분량의 텍스트로 구성된다. 리 갬블은 하이퍼덥에서 발매된 삼부작의 – 혹은 그가 선호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세폭화”의 – 중반에 도달했다. 이 삼부작은 수수께끼 같은 제목인 「Flush Real Pharynx」를 포함해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청각적 알레고리를 제공한다. 올해 초 발매된 1부 「In a Paraventral Scale」은 뱀 비늘의 한 유형으로부터 그 이름을 따왔으며, 이는 90년대 고전 정글(소스 다이렉트 Source Direct스네이크 스타일 Snake Style)에 대한 레퍼런스이자 “매끄럽고, 변형적이며, 아름다운 대상들을 가지고 유혹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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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네시아 스캐너, 〈AS A.W.O.L〉, 2018

 

청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 춤과 개념, 이 쌍들을 “총체적 예술” 작품으로 병합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염원이다. 그것은 60년대의 다매체적 해프닝들,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에 의해 대중화된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 – “총체적 예술작품” – 이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고대인들이 시와 극과 노래와 춤과 제례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혼합한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레이브는 현실로부터 격리된 환각적 병동으로 향하는 문화의 도피를 강화하고 증폭시키는 방식으로서 빛과 레이저와 영상을 포용했다. 그러나 90년대 시각적인 것은 일반적으로는 DJ나 라이브 퍼포머가 수행하는 일에 동반되는 느슨한 반주 정도에 불과했다. 주된 매력의 대상은 여전히 음악이었다.

 

2010년대의 일렉트로닉 댄스 문화에 있어서 충격적인 점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난 시청각적 전회이다. 스크릴렉스(Skrillex)와 같은 EDM 거물은 롤러코스터처럼 쏟아지는 음악에 맞춰 프로젝션 매핑과 CG 애니메이션의 스펙터클을 거대한 타워형 스크린에 쫙 펼쳐내는데, 이는 저속한 스릴을 제공한다. 반면, 실험적 페스티벌 계통에서는 시각적인 것이 좀 더 추상적이고 비체적이다 – 돌연변이적인 그로테스크한 것, 용해되는 형상들이 그러하다. 시각 예술과 실험적 일렉트로니카 사이의 이러한 교차-오염은 매우 큰 인기를 끌었고, 레이블 팬은 예술, 영화, 극, 춤, 그리고 패션을 위해 쓰인 음악을 다루는 엔토피아(Entopia)라는 임프린트를 시작했을 정도다.

 

실제로, 비평가 기타 다얄(Geeta Dayal)이 “페스티벌-산업 단지”라고 장난스럽게 이름을 붙인 것 내에서 시청각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가들은 그저 청중들을 열광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라인업에 포함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페스티벌들은 점점 더 단지 훌륭한 DJ 셋이나 음향적으로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왁자지껄한 아방가르드적 충격을 주는 새로운 쇼를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지금 시점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사람이 조명과 노트북만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말이 안 된다.”라고 갬블은 말한다. “기대는 그보다 훨씬 크다.” 그러한 기대는 예술가들에게 음악과 함께 작동하는 시각적 요소들을 창조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절제되고 반추를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감상되는 갤러리에서의 사운드 아트 전시 같지 않다. 갬블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페스티벌에서는 사람들에게 빠르고 강하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즉각성과 임팩트가 필요하다.”

 

갬블은 최근 한정판 바이닐과 스트리밍 서비스와 더불어 페스티벌 무대가 그의 작품이 남아 있는 주요한 장소이자 그가 생계를 꾸려가는 주된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그는 「In a Paraventral Scale」을 중심으로 한 쇼를 만들기 위해 세계를 구축하는 게임 소프트웨어로 작업하는 퀀텀 네이티브스의 클리포드 세이지와 함께 팀을 꾸렸다. 트랙 〈BMW Shuanghuan X5〉 – BMW의 중국 암시장 복제품에서 주제에 대한 영감을 받고 운전 중인 자동차의 도플러 효과[note title=”6″back] 1842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Doppler)에 의해 제안된 효과이다. 파동을 발생시키는 파원과 관찰자의 상대적인 운동에 의해, 관찰자가 파원의 진동수와는 다른 진동수를 관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음파의 경우, 도플러 효과에 따라 관찰자에게 다가오는 음원의 파장은 짧아지고 멀어질수록 음원의 파장은 길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가 멀리서 점점 다가오고 있을 경우, 멀리 있을 경우 낮은 소리로 들리다가 가까워질수록 높은 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물리학회 물리학백과의 “도플러 효과” 항목 참고)(역자 주)[/note] 샘플들을 합친 트랙 – 를 위해, 세이지는 가상의 자동차 부품들이 갬블의 음향적 트리거에 반응하여 스스로 조립되는 비디오 반주를 개발했다. 청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들은 레코드의 주제들 – 브랜드의 매혹적인 신비로움, 그리고 소비자의 욕구로는 진정성 있는 원본과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원본과 가짜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믿는 방식 – 을 눈에 띄게 만든다.

 

다른 종류의 진정성 – 이벤트에 참가하는 특권을 구매하는 것 – 에 대한 추구는 암네시아 스캐너가 오늘날의 페스티벌에 대해 “경험 경제”라고 부른 것을 부채질한다. 크루즈에서의 바틀-서비스(Bottle-Service)[note title=”7″back] 주로 미국의 라운지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이루어지는 주류 판매의 한 형태이다. 바틀-서비스를 이용하면 고급 주류를 병 단위로 구매하게 되는데, 주류와 더불어 전용석, 토닉 워터처럼 주문한 주류와 섞어 마실 수 있는 음료(mixer), 봉사료, 입장 대기 면제 등과 같이 VIP 호스트에게 주어지는 서비스가 함께 제공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영문 위키피디아의 ‘Bottle service’ 항목을 참조하라.(역자 주)[/note] 레이브나 일렉트릭 데이지 카니발(Electric Daisy Carnival) 같은 EDM 페스티벌만큼이나 실험 음악 페스티벌들도 고급 서비스와 특별하다는 느낌을 판매하고 있다. 일 년 내내 운영되는 런던의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와 같은 예술 기관들은 물론이고 이러한 행사들의 수도 – 언사운드(Unsound), 플로우(Flow), 레드 불 뮤직 아카데미(Red Bull Music Academy)[note title=”8″back] 원문에는 RMBA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맥락상 RBMA(Red Bull Music Academy)의 오기로 보여서 수정했다.(역자 주)[/note], 슈퍼노멀(Supernormal), 데시벨(Decibel), 뉘 소노르(Nuits Sonores), 슈퍼소닉(Supersonic), 기타 등등 – 외견상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몇몇은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문화예술 부처의 지원을 받는다. 다른 행사들은 기업 스폰서들에게서 기금을 끌어낸다.

 

암네시아 스캐너의 하이말라는 “유럽은 이제 이러한 페스티벌들로 가득 차 있고, 이곳은 우리의 음악이 발생하는 장소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우리 같은 예술가의 단독 공연 티켓을 사진 않아도, 페스티벌 티켓은 얼마든지 구매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가들 사이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더 야심찬 쇼를 시도한다.” 그는 이 페스티벌들 중 상당수가 밤에는 음악을 틀고 낮에는 패널들과 강의들로 구성된 콘퍼런스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여기서 나오는 담론은 결국 콘셉트로니카 곁에서 넘실거리는 이론의 물결에 반영된다. 칼리알라는 이러한 페스티벌의 순환이 “마케팅할 수 있는 인구를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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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순드, 〈BUDDHA GEOMETRY BRAIN TOY〉, 2017

 

실험적 일렉트로니카가 만들어낸 시청각적 전회는 몰입감에 대한 실험적 일렉트로니카의 야망을 고려해볼 때 이해가 된다. 만약 세계-구축하기가 당신의 목표라면, 영화를 상상하도록 고무하는 소리만을 만드는 것보다, 영화 그 자체를 만드는 게 당연히 더 낫지 않은가? 게임들과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가 가득한 판타지들과 함께, 세계-구축하기 기저의 추동력은 짜릿하지만 안전한 모험의 영역을 위해 리얼리티를 뒤에 남겨둔다. 콘셉트로니카의 최근 흐름에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소외와 위험으로 가득한 실제 세계에 대한 콘셉트로니카의 참여이다. 세계-구축하기만큼이나, 콘셉트로니카의 추동력은 세계-바꾸기 혹은 적어도 세계-비평하기이다.

 

콘셉츄얼리즘과 시청각성과 함께, 2010년대의 전자 음악에는 정치적 전회가 발생했다. 예술가들은 눈에 띄게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은 인종, 섹슈얼리티, 혹은 젠더에 기반한 소수자적 정체성에 뿌리를 두곤 한다. 이는 정치적인 것들이 보다 암시적이었던 댄스 음악 문화의 초기 국면과 대조된다.

 

하우스 음악은 게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와서 자부심, 수용, 통합, 사랑이라는 가치를 표상했지만, 이는 선언적인 입장들보다는 잠재적인 원칙들로서 공유되었다. 마찬가지로 정글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세계관보다는 분위기로서의 세계관을 전달했다. 정글의 긴장감 넘치는 리듬과 위협적인 베이스는 소리로 투쟁과 거리의 리얼리즘의 태도를 표현했는데, 이는 때때로 바빌론의 몰락[note title=”9″back] 바빌론(Babylon)은 영어에서 매우 다양한 함의를 갖는 표현인데, 대체로 기성의 체계나 정치 등을 의미하는 속어처럼 쓰이는 듯하다. 특히, 라스타파리 운동(Rastafari Movement)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은어로서 바빌론을 사용하는데, 라스타파리 운동에 영향을 받은 레게 음악가도 해당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이들의 경우, 성경을 모티프 삼아 신에게 반역을 꾀하는 기관이나 정부 혹은 가난한 이들을 핍박하는 부패한 정치인을 지칭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한다. 구체적으로는 대중음악 내에서 직접적인 레퍼런스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드럼 앤 베이스 음악가 스플래시(Splash)는 1994년에 트랙 “바빌론(Babylon)”을 발표했는데, 해당 트랙의 1분 28초쯤부터 “모든 청년들은 바빌론이 몰락하는 날을 목격할 것이다.(All of the youth shall witness the day that Babylon shall fall)”이라는 가사를 담은 샘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샘플은 1978년 개봉된 영화 〈로커스 Rockers〉의 한 장면인데, 이 영화는 자메이카의 여러 레게 뮤지션들을 다룬 영화이다. 앞서 언급했듯 “바빌론”이라는 표현이 레게 음악가들이 자주 쓰는 은어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는 꽤 오랜 기간 동안 흑인 음악 내의 여러 장르에 걸쳐 관습화된 레퍼런스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역자 주)[/note] 이나 경찰에 대한 루츠 레게나 갱스타 랩 샘플들을 통해 뚜렷하게 들리곤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명시적인 진술은 대개 피했다. 다양한 씬들과 하위문화들에서 널리 사용되었듯,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 그 자체는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모호했다. 그것은 기업화된 음악 산업과 주류 가치에 대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지만, 정치적 활동에 미치지는 못했다.

 

콘셉트로니카는 훨씬 명백하고 확실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창작자들의 자기성찰적 인식과 고등 교육을 받은 그들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이 새로운 정치화는 현재의 급박함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레이브에 대한 자신의 성장기 경험과 청각적 환영에 관한 신비로운 연구로부터 영감을 이끌어내 고도로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어 왔던 리 갬블은 2016년에 모든 것이 변했음을 느꼈다. “브렉시트가 일어났고,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며, 나는 ‘지금 내가 모두가 멍해지게 하는 엠비언트 레코드를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현실 도피적인 음악을 만드는 일은 책임 회피일 것이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세계를 경악시킨 포퓰리즘적 권위주의와 제노포비아를 지향하는 끔찍한 요동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일부에서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전자 음악을 향한 추동은 오바마 정권 동안 시작되었는데, 이 추동은 영국의 학생 시위와 월가 점령 운동에 불을 지폈던 불평등과 불안정한 근무 형태 그리고 세계 금융 상류층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은 것에 대한 폭락 이후의 불만에 의지한다.

 

2015년, 영국의 프로듀서 잭 레이덤(Jack Latham)이 잼 시티(Jam City)로서 만든 그의 두 번째 앨범에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다고 느껴질 요소가 담겨 있었다. 「Dream a Gardene」은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정치 의식이 담긴 가사들을 노래하는 그의 섬세한 보컬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싱글 〈Unhappy〉의 비디오는 쇼핑몰과 무장 경찰, 광고판,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의 드론 공격, 도시의 폐허를 배경으로 셀피를 찍는 수척한 모델들의 몽타주로 구성되었다. 영상의 끝에서, 레이덤은 자켓 등판에 적힌 “계급 전쟁”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카메라 밖으로 걸어 나가고, 그 다음 “두려워하지 말라.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고무적인 메시지가 화면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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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시티, 〈Unhappy〉, 2015

 

여러 인터뷰에서 레이덤은 개인들이 금권정치에 의해 남겨진 찌꺼기들을 두고 경쟁하고 마약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빠져서 비참해지고 고립되고 또 원자화되기를, 권력 구조가 얼마나 바랐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러한 사태들을 반성하는 것은, 설령 그것을 분석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았다. 「Dream a Garden」은 더 나은 삶을 집단적으로 상상하는 힘에 바치는 찬가였다.

 

레이덤의 2012년 앨범 「Classical Curves」가 얼마나 번지르르한 표층을 지향했는지를 고려한다면, 진심 어리면서 또 어느 정도 냉정하기까지 한 비판으로의 이러한 변화(“사랑은 저항이다”는 이 시대에 대한 잼 시티의 또 다른 슬로건이었다)는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Classical Curves」는 “부의 미학” – 패션 런웨이, 고급 브랜드, 벨벳 로프[note title=”10″back] 벨벳 로프 경제(Velvet Rope Economy)를 염두에 두고 쓴 표현으로 보인다. 벨벳 로프 경제는 경제학 용어로, 극장이나 시상식 등의 행사장에서 티켓이나 초대장이 없는 이들의 입장을 벨벳 로프가 막는 모습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이처럼 초대받은 자 혹은 특권을 인정받은 자만이 소비 대상이 될 수 있게끔 하는 영업 전략 등을 지칭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상황이 야기하는 경제적 상류 계층과 하위 계층 사이의 양극화를 의미한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넬슨 슈워츠(Nelson D. Schwartz)의 The Velvet Rope Economy: How Inequality Became Big Business를 참고하라.(역자 주)[/note]의 매력 – 이 지닌 매혹적인 힘에 대한 것이었으며, 거기엔 기교의 마술적인 매력과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듯한 환상이 있었다. 이제, 레이덤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우리는 하이퍼-자본주의의 “시각 문화”에 “단지 혐오를 느끼거나 매료되거나 할 뿐인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다.” 그 대신, “당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정말 명확히 해야 할” 시간이 됐다.

 

유토피아로서의 정원이라는 레이덤의 비유는 2015년 하반기에 치노 아모비와 텍사스 휴스턴의 프로듀서 래빗(Rabit)이 협업한 〈THE GREAT GAME: FREEDOM FROM MENTAL POISONING(The Purification of the Furies)〉에서 불쑥 나타났다. “전문직 영국 여성”으로 설정된 여성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GPS 안내 음성은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정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것이다.” 해당 프로젝트를 돌아보면서, 아모비는 화가 나있고 호전적인 만큼이나 “도움이 되고 힐링이 되는” 정치-참여적 음악에 대해 말한다. 뉴스피드가 당신의 시스템을 통해 그렇게나 많은 독성 스트레스를 뿜어댈 때, 분노와 두려움만을 증폭시키는 정치는 역효과를 낳는다.

 

아모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적 음독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콘셉트를 위한 구체적인 영감을 “오버클럭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얻었다고 말한다. 오버클럭은 사용자들이 기술의 연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묘책이다. 래빗과 아모비에게 오버클럭은 병적으로 가속화되고 과활성화된 디지털 생활방식과 미디어 문화에 대한 은유로 쓰였다. 이는 단지 고통스러운 뉴스와 선동적인 견해들만이 아니라, 광고와 SNS 사용에 의해 촉발된 습관성 엔도르핀 포화 상태도 포함한다.

 

아모비와 래빗의 음악이 사이버펑크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지닌 것과 달리, 홀리 헌돈(Holly Herndon) – 동시대 전자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콘셉츄얼리스트인 베를린 기반의 미국인 프로듀서 – 은 “SF적 정치”에 대한 더 낙관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레코드를 만들 때 테크노크라트와 미래학자 집단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그는 약간 일렉트로니카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둘 모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문제 해결을 위한 용기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작품에 기술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하긴 하지만, 헌돈은 “내가 사용하는 기술로 행위자성을 느끼려 하고, 내 음악을 듣는 이들을 그러한 행위자성의 감각으로 채우려 한다. 모든 것들이 완전히 디스토피아적으로 떨어질 때, 나는 일종의 절망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권력을 가진 자, 서사를 이끌어가는 자들에게 통제권을 넘겨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헌돈의 최신 앨범인 〈PROTO〉는 어린 시절에 테네시에서 들은 교회 합창단 음악과 하우스 클럽 및 레이브에 모인 죄인들로 구성된 회중(會衆)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약 300명의 목소리가 모인 – 실험적인 보컬리스트들로 구성된 핵심 앙상블에, 라이브 콘서트홀의 청중들과 인공지능 프로그램 스폰(Spawn)이 더해진 – 목소리를 사용하여, 〈PROTO〉는 “일종의 공유된 해방”과 “공동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낸다. 헌돈은 “그것이 바로 내가 갈망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수많은 방법들을 알아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실제 시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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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헌돈, 〈Eternal〉, 2019

 

소외에 대한 치료법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정치적 우려 및 관심 외에도 홀리 헌돈, 잭 레이덤, 치노 아모비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음악 전면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전자 음악의 정치화가 가시성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자기 자신을 얼굴이나 목소리로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모비는 처음에는 다이아몬드 블랙 하티드 보이(Diamond Black Hearted Boy)라는 이름 뒤에서 주목을 거의 못 받는 노이즈 음악을 만들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가명이 더 이상 자신이 숨고 싶은 가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본명을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아모비는 「Paradiso」의 앨범 커버에 자신의 이미지를 배치했다. 「Paradiso」의 앨범 커버는 그를 레이블 논 월드와이드(Non Worldwide)의 시민으로서 인증하는 신분증인데, 이는 마치 논 월드와이드를 반체제를 꿈꾸는 사람들의 초국가적인 정치 단체처럼 만든다. 아모비의 반항적인 응시와는 대조적으로, 헌돈은 더 밝은 내일을 향한 푸른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로 2015년에 만든 「Platform」의 커버에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댄스의 역사적 관점에서, 아모비는 마치 전투를 치르는 디트로이트의 테크노 유닛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Underground Resistance)처럼 보이지만, 이번에는 가면을 벗은 채이다. 헌돈은 약속된 땅을 꿈꾸는 시카고 하우스의 전설 조 스무스(Joe Smooth)로 보인다.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공적으로 위치 짓는 일은 지난 10년간 더욱 격렬해졌기 때문에, 전자 음악이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아모비가 보기에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라는 “포스트-블로고스피어”[note title=”11″back]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는 1999년에 브래드 그레이엄(Brad. L. Graham)에 의해 농담처럼 고안된 용어이다. 웹상의 모든 블로그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그 모든 블로그의 집합을 가리키는 공간적 개념으로 흔히 소개된다. 블로고스피어를 “특정한 사안이나 주제 혹은 대상에 관심을 갖고 의견 교환과 논쟁에 참여하는 블로거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담론 공간”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주민재. “블로고스피어의 형성과 담론 공간의 구조”. 작문연구, 11(0), 2010, 399-428. 를 참고하라.(역자 주)[/note]는 “단어와 표현의 새로운 수준을 도입했다. 어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 속에서 그들이 많이 동질감을 느끼는 목소리들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지지를 얻는다. 사람들은 말하고 표현하는 데 더 많은 자신감을 느낀다.”

 

아모비와 논 월드와이드는 엘리시아 크램튼(Elysia Crampton), 아르카, 로틱(Lotic), 소피(SOPHIE)를 포함한 퀴어 및 트랜스젠더 전자 음악가들이 맺은 느슨한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이들 모두는 젠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만큼이나 장르 관행을 따르지 않는 음악을 만들며, 동시대 댄스 음악과 전통적인 댄스 음악 장르 사이의 경계를 흐릴 뿐만 아니라 레이브 전통과 노이즈, 인더스트리얼, 구체 음악 사이의 경계들도 희미하게 만든다. 「Paradiso」의 전면에 그의 가상 신분증을 놓았던 아모비처럼, 이 예술가들은 음악의 한 켠에 서 있기보다 자신들의 음악 전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용하며, 재킷과 비디오, 라이브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또한 육체적 존재로서 자신을 연극적으로 무대 위에 드러내는데, 이는 과거의 레프트-필드 전자 음악이 상대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육체를 숨겼던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현재 아르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 연극, 기술, 디자인, 그리고 소리를 혼합한 4부 구성의 실험적 서사시 〈Mutant; Faith〉 – 는 콘셉트로니카 예술가들이 프로듀서인 동시에 퍼포머가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피의 〈Faceshopping〉은 자신의 음악 전면으로 나선 프로듀서에 대한 주목할 만한 사례다. 2018년에 발표된 〈Faceshipping〉과 〈Faceshopping〉의 비디오는 브랜드로서의 자아라는 개념에 대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21세기의 SNS 및 볼룸(ballroom)과 드랙 문화의 화려함이라는 전통 모두에서 영감을 끌어오고 있다. 소피의 얼굴 – 이는 이미 메이크업이라는 양식화된 가면이다 – 의 디지털 시뮬라크룸은 컴퓨터-애니메이션 효과를 통해 산산이 부서지고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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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Faceshopping〉, 2018

 

〈Faceshopping〉과 「Paradiso」부터 최근 아르카의 보컬 중심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지닌 또 다른 공통된 특질은 유포리아와 디스포리아 사이의 결정 불가능한 영역에서 맴도는, 극적인 감각과 표현주의적 과잉이다. 종말론적 연극성은 격식 있는 트랩인 〈The Prisoners of Nymphaion〉부터 바로크 EBM[note title=”12″back] Electronic Body Music의 약어이다. 종종 “인더스트리얼 댄스(Industrial Dance)”라는 장르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인더스트리얼의 요소와 디스코 및 댄스 음악의 요소를 합친 전자음악으로, 1980년대 초 독일과 벨기에에서 시작되었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랄프 휘터(Ralf Hütter)가 「The Man-Machine」을 소개할 때 사용한 단어로부터 고안된 장르명이다. 이 이름이 보다 많은 음악가들에게 공유되면서, 하나의 세부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 EBM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프론트 242(Front 242), 나이처 엡(Nitzer Ebb) 등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의 ‘Electronic Body Music’ 항목을 참고하라.(역자 주)[/note]인 〈Blood of the Covenant〉까지 아모비의 작업을 관통한다. 그리고 베를린 기반의 프로듀서 로틱의 〈Power〉와 〈Distribution of Care〉와 같은 트랙들은 날이 선 불협화음들과 신경을 파쇄하는 듯한 하이엔드급의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상당수 콘셉트로니카를 관통하는 하나의 소리 모티프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부서지는 듯한 드럼 소리일 것이다. 이는 경찰봉이 부딪치는 것처럼 의례적이고 장엄하지만 그 이면에는 희미하게 징벌적 심상이 담긴 소리처럼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거나, 산산이 부서진 시위 진압용 방패의 덜렁거리는 파편들처럼 도시의 불안을 상기시키는 종류의 소리다. 퍼커션에 있어서 이 인상적이지만 그루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접근 – 아마도 잼 시티의 「Classical Curves」가 이런 소리를 처음 들려줬을 것이다 – 은 비평가 매튜 필립스(Matthew Phillips)가 밝힌 전자 음악의 “신-미래주의” 미학에서 핵심 요소를 담당한다. 불연속성과 파열은 안정적인 댄스 비트들을 대체한다. 이는 드론 공격과 폭풍 트윗의 시대에 클럽 음악이 어떤 소리를 들려줘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요컨대, 춤추는 이들을 최면적인 트랜스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색경보 속에 남겨두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개념적 일렉트로니카 내 선동선전국(agit-prop sector)은 깨어 있는 음악을 지향한다. 아모비는 “불협화음과 특이한 소리를 사용하면서, 청취의 수동적인 경험을 거부하고자 한다. 그리고 청취자를 깨우고 그들을 깨우는 그 순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능동적인 소리를 사용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레토릭은 포스트-펑크 밴드 디스 히트(This Heat)를 상기시킨다. 디스 히트의 노래 〈Sleep〉은 소비자중심주의와 집단적 진정 작용으로서의 엔터테인먼트에 반대했다. 콘셉트로니카와 포스트-펑크 모두, 탈신화화와 거짓말의 눈보라를 간파해내는 데에 공통의 흥미를 지녔다. 리 갬블이 고인이 된 이론가 마크 피셔(Mark Fisher)의 용어인 “기호학적 공습(semioblitz)” – 오늘날 욕망을 촉발시키고, 불안을 조장하는 정보문화의 폭격 – 을 차용할 때, 나는 갱 오브 포(Gang of Four)의 1979년 노래인 “Natural’s Not In It”과 광고를 “감각의 강요”로 바라본 그 노래의 가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당신은 40년 전 포스트-펑크를 괴롭혔던 몇몇 문제, 특히 그 장르가 후기에 빠졌던 교착 상태를 콘셉트로니카에서도 동일하게 감지할지도 모른다. 콘셉트로니카를 들을 때도 때때로 설교 당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이미 개종한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속적인 의심이 존재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반-엘리트주의적 좌파 정치와 문화 경제 및 인구 통계학으로서의 콘셉트로니카의 물질적 현실 사이의 불안한 불일치를 지적하는 것이다. 콘셉트로니카는 고등 교육 및 예술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또 그것들에 매우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셉트로니카는 분명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매력적인 만큼이나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만약 그것의 주제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해방이라면, 왜 나는 그것을 들으면서 해방감을 느끼지 못했는가? 콘셉트로니카에서는, 90년대 레이브나 트랩 같은 형식들이 지닌 상품 물신주의와 성정치는 반혁명적임에도 그 소리가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던, 90년대 레이브 혹은 더 가까이는 트랩과 같은 방종한 형식으로부터 얻었던 해방감 혹은 자유분방함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 병렬관계는 록 그 자체에 대한 포스트-펑크의 비판적 주해에서 가장 참된 형태로 나타난다. 포스트-펑크는 소외와 불안을 표현한 긴장감 있고 균열된 리듬을 통해, 단순한 자유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 초 록과의 관계를 끊는 길을 택했다.

 

음악 창작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내가 음악을 이해하고 또 더 잘 “느끼도록” 도왔다. 콘셉트로니카가 이끌리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파열적인 힘으로, 그것은 정글, 볼룸, 개버와 같은 역사적인 언더그라운드 장르들은 물론, 그라임과 트랩 같은 동시대적 소리에도 잠재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콘셉트로니카는 이러한 음악들 속에 있는,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해방과 연대에 대한 선언문을 취하고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기를 원한다. 치노 아모비는 콘셉트로니카의 선봉에 선 예술가로서, 비판적인 예술을 창조하는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든 댄스 문화의 황홀한 교감과 결합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어려운 균형 잡기이자 고귀한 야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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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다듬고 편집하는 데 도움을 준 나원영과 정구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