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의 충동
번역 이주연, 조주연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 <너무 너무-많고 많은 Too Too-Much Much〉, 가변 크기, 설치 전경, 2010. 벨기에 드륄레의 돈트-데넨스 미술관 사진 제공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 〈너무 너무-많고 많은 Too Too-Much Much〉, 가변 크기, 설치 전경, 2010. 벨기에 드륄레의 돈트-데넨스 미술관 사진 제공.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자. 카드보드, 알루미늄 호일, 포장 테이프처럼 일상적인 재료들을 대충 꿰어 맞추고, 급진적 예술가, 작가, 철학자에게 헌정된 이미지, 텍스트, 기념물을 사제 공부방-겸-제단마냥 하나 가득 정신없이 늘어놓은 일시적인 전시물. 혹은, 망실된 대지미술의 한 모델과 시민권 운동의 슬로건 그리고/또는 당대의 전설적인 록 콘서트를 녹음한 소리를 병치하는 펑크 풍 설치. 혹은, 원래 상태가 좀 더 남아 있는 구역을 살펴보자면, 두 세계 대전 사이에 영국 켄트 주 해안에 세워졌으나 곧 시대에 뒤떨어진 군사 기술품이 되어 폐기된 거대한 청각 수신기를 다룬 짧은 영화적 명상. 스위스인 토마스 허쉬혼(1957-), 미국인 샘 듀란트(Sam Durant, 1961-), 영국여성 타시타 딘(Tacita Dean, 1965-)이 만든 이 작업들은 주제, 외양, 감흥에서 아주 다르지만, 그럼에도 공유하는 생각이 하나 있다. 예술적 실천이란 현대의 예술, 철학, 역사에 속하는 특정한 인물, 대상, 사건 들을 파고드는 특이한 탐색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예들은 몇 배나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다른 현업 작가들을 꼽자면, 스코틀랜드인 더글라스 고든 Douglas Gordon(1966-), 영국인 리암 길릭 Liam Gillick(1964-), 아일랜드인 제러드 번 Gerard Byrne(1969-), 캐나다인 스탠 더글라스 Stan Douglas(1960-), 프랑스인 피에르 위그 Pierre Huyghe(1962-)와 필립 파레노 Philippe Parreno(1964-), 미국인 마크 디온 Mark Dion(1961-)과 르네 그린 Renée Green(1959-)…으로 목록을 시작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에서 국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아카이브의 충동을 가리키는 것은 이 세 사람뿐이다. 이 일반적인 충동을 새로운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예술의 원천이 정치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 모두에서 확장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에도 다양하게 작용했으며(가령, 알렉산더 로드첸코의 포토파일과 존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에는 더욱 다양하게 작용했는데, 특히 차용된 이미지와 수열적 포맷이 관용구(가령, 인디펜던트 그룹의 게시판 미학, 로버트 라우센버그로부터 리처드 프린스에 이르기까지 재현을 재매개한 작업, 그리고 개념미술, 제도 비판, 페미니즘 미술의 정보제공 구조)가 되면서 그랬다. 그런데도 제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가진 아카이브 충동이 다시 널리 퍼졌다 – 그 자체 고유한 경향으로 고려될 만큼 널리 퍼진 것인데, 이만큼까지는 환영할 일이다.[note title=”1″back] 최소한 내 생각에는 그렇다. 지금은 정치적인 면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도 거의 아무거나 다 되고 거의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는 시대니 말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를 보러간대도, 국외에서 자행된 잔인무도한 전쟁과 국내에서 일어난 정치의 붕괴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이렇게 상대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어쩌면 현재와 연결하는 특유의 모드일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정치 문화와 어울리는 ‘아무려나’ 미술 문화.[/note]

 

우선 아카이브 미술가들은 주로 상실된 혹은 추방된 역사적 정보를 물리적으로 현존하게끔 만들고자 한다. 이 목적을 위해 그들은 발견된 이미지, 오브제, 텍스트를 낱낱이 파고들며, 설치 형식을 선호하는데, 실제 작업도 그렇게 한다. (그들은 설치의 비위계적인 공간성을 자주 이용한다 – 동시대 미술에서는 오히려 드문 점이다.) 더글라스 고든 같은 몇몇 작가들은 ‘시간 레디메이드’에 끌린다. 이미지 프로젝션으로 샘플링한 시각적 서사에 끌린다는 말인데, 이는 알프레드 히치콕, 마틴 스콜세지 등이 만든 영화를 극단화시킨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다.[note title=”2″back] Hans Ulrich Obrist, Interviews, vol. 1 (Milan: Charta, 2003). p. 322.[/note] 이런 원천들은 대중문화의 아카이브로부터 가져온 것이라 친숙해서 가독성을 보장하지만, 이 가독성은 차후에 교란 또는 방향전환(detourn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원천들은 또한 아리송할 수도 있는데, 대안적 지식 혹은 대항-기억의 표시로 회수되는 탓이다. 이런 작업이 내가 여기서 주목하려는 초점이다.

 

때로 아카이브 샘플링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복잡한 쟁점으로 만든 독창성과 작가성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의 〈영혼 없이 껍질뿐인 No Ghost Just a Shell〉(1999-2002) 같은 협업 프로젝트를 생각해보자. 어떤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가 망가 캐릭터 가운데 일부 단역을 판다고 내놓자, 위그와 파레노는 그 중 한 캐릭터-기호인 ‘안리(AnnLee)’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사서 이 상형문자를 다양한 작품에서 윤색했는데, 그러면서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같은 작업을 청했다. 여기서 이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들이 이어지는 “연쇄”, 즉 “구조가 생산하는 형식들이 다시 구조의 일부가 되는 역동적인 구조”로 변한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 안에” – 하나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아카이브가 형성되는 가운데 – “존재하는 한 공동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note title=”3″back] Philippe Parreno in Obrist, Interviews, p. 701. 이 책에 실린, 이 프로젝트에 대한 톰 맥도너(Tom McDonough)의 논의, 그리고 조지 베이커(George Baker)가 위그를 인터뷰한 글을 참고.[/note] 프랑스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1965-)는 이 같은 미술을 ‘포스트프로덕션’이라는 제하에 옹호했는데, 이는 흔히 그 미술을 구성하는 2차 조작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용어는 또한 디지털 정보 시대에 달라진 예술작품의 지위를 내비치기도 하는데, 이 시대는 산업생산과 대량소비에서 이루어지는 2차 조작을 추종한다고 한다.[note title=”4″back] Nicolas Bourriaud, Postproduction: Culture as Screenplay: How Art Reprograms the World, trans. Jeanine Herman (New York: Lukas & Sternberg, 2002) 참고.[/note] 이 같은 새로운 시대가 그처럼 존재한다는 생각은 이데올로기적 가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는 흔히 가상세계의 레디메이드로, 즉 재가공되어 전송되는 수많은 데이터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고, 많은 예술가들이 ‘목록 작성’, ‘샘플 추출’, ‘공유’를 작업 방식으로 택하는 것도 분명하다.

 

이 마지막 지점은 아카이브 미술의 이상적인 매체가 인터넷이라는 메가-아카이브임을 암시할 법하고, 그래서 지난 10여 년간 ‘플랫폼’과 ‘정거장’처럼 전자 네트워크를 상기시키는 용어들이 미술 용어로 등장했는데, ‘상호작용’이라는 인터넷 수사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카이브 미술에서 이 ‘관계적인’ 목적을 위해 실제로 응용된 수단은 여느 웹 인터페이스보다 훨씬 더 촉각적이고 대면적이다.[note title=”5″back] 현저한 사례를 두 가지 들면 이렇다.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감독을 맡은 2002년 도쿠멘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토론의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구상되었다(카셀에서 열린 전시회는 그런 플랫폼의 마지막 형태였을 뿐이다). 또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가 감독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유토피아 정거장’ 같은 부문들을 선보였는데, 아주 최근의 미술에서 나타나는 아카이브적 담론성을 예시한 것이었다. ‘상호작용’은 니콜라 부리오가 1998년의 텍스트 관계 미학에서 제안한 ‘관계 미학’의 목표다. 나의 “Arty Party,” London Review of Books, December 4, 2003과 이 호에 함께 수록된 Claire Bishop, “Antagonism and Relational Aesthetics”를 참고.[/note] 여기서 쟁점으로 삼는 아카이브들은 이런 의미에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이 아카이브들은 못 말리게 물질적이고, 대체 가능하다기보다 파편적이어서, 그 자체가 기계의 재가공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을 요청한다.[note title=”6″back] 데이터베이스와 내러티브 사이의 긴장에 대해서는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가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ass.: MIT Press, 2001), pp. 233-36에서 논의한다.[/note] 이런 아카이브 미술에 등장하는 항목들을 무차별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여느 아카이브의 항목들과 같이 비결정의 상태로 남아 있으며, 또 그런 식으로 – 차후의 자세한 작업을 보증하는 약속어음이나 미래의 시나리오를 위한 수수께끼 같은 신호처럼 – 제시되는 때가 많다.[note title=”7″back] 약속어음이라는 개념은 말콤 불(Malcolm Bull)에게서 빌린 것이다. 리암 길릭은 자신의 작업이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시와 서술(narration) 사이의 틈새”에 위치하므로, 이 작업 또한 아카이브적이라고 불릴 수 있을 법하다. Gillick, The Woodway (London: Whitechapel Gallery, 2002) 참고.[/note] 이렇게 보면, 아카이브 미술은 포스트프로덕션인 만큼이나 프리프로덕션이기도 하다. 이 미술가들은 절대적인 기원보다 아리송한 자취에 관심이 있어(아마도 ‘반反아카이브의anarchival 충동’이 더 적절한 표현일 텐데) – 미술과 역사 모두에서 – 완수되지 못한 시작들 혹은 완결되지 못한 기획들에 끌릴 때가 많다. 즉 다시 한 번 출발점을 제공할지도 모를 그런 시작 혹은 기획들에 끌릴 때가 많은 것이다.

 

아카이브 미술이 데이터베이스 미술과 다르다면, 그것은 또한 미술관에 중점을 두는 미술과도 다르다. 분명 아카이브 제작자로서의 미술가라는 인물은 큐레이터로서의 미술가라는 인물을 따르며, 일부 아카이브 미술가는 수집의 범주를 지속적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재현적 총체성과 제도적 통합성을 비판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미술관이 공론장에서 응집성 있는 체계로 존속하지 못하고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당연시되며, 그래서 승리에 찬 선언도 혹은 우울증에 빠진 사념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미술가 중 몇몇은 다른 종류의 질서를 – 미술관 내부와 외부에서 – 제안한다. 이런 측면에서 아카이브 미술이 취하는 방향은 “해체적”이기보다 “제도적”이고, “위반적”이기보다 “입법적”인 때가 많다.[note title=”8″back] 첫 번째 용어 쌍은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trans. Eric Prenowitz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에서 자크 데리다가 아카이브 개념에서 작용하는 상반된 욕동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고, 두 번째 용어 쌍은 Jeff Wall (London: Phaidon Press, 1996)에서 제프 월이 아방가르드의 역사에서 작용하고 있는 상반된 명령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다. 아카이브의 충동과 “아카이브 열병”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어쩌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처럼 모든 아카이브는 설립 토대가 재앙(또는 재앙의 위협)이고, 그것이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폐허에 맞서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리다가 보는 아카이브 열병은 더 심오한 것으로, 반복-강박과 죽음 욕동에 묶여 있는 열병이다. 그래서 때로는 파괴의 이 역설적인 에너지가 이 글이 쟁점으로 삼는 작업에서도 감지될 수 있는 것이다.[/note]

 

마지막으로, 문제의 작업이 아카이브적인 것은 그것이 비공식 아카이브들에 의지할 뿐만 아니라 그런 아카이브들을 생산하기도 하기 때문이고, 그것도 모든 아카이브의 자료들이 본성상 발견된 것이지만 또 구축된 것이고, 사실적이지만 또 허구적이며, 공적이지만 또 사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작업은 자료들을 유사-아카이브의 논리, 즉 인용과 병치의 매트릭스를 따라 배열하고, 그 자료들을 유사-아카이브의 구조, 즉 텍스트와 오브제의 복합체(또다시, 플랫폼, 정류장, 가판대…)로 제시한다. 따라서 딘은 그녀의 방법을 “수집(collection)”이라 하고, 듀란트는 그의 방법을 “조합(combination)”이라 하며, 허쉬혼은 “가지 뻗기(ramification)”라고 하는데, 많은 아카이브 미술이 실제로 잡초나 “리좀”(다른 이들도 채택한 들뢰즈의 비유)처럼 가지를 뻗는 모습이다.[note title=”9″back] “수집”을 논하는 딘은 Tacita Dean (Barcelona: Museu d’Art Contemporani de Barcelona, 2001)에서 볼 수 있고, “나쁜 조합(bad combination)”은 듀란트가 1995년에 발표한 한 작업의 제목이다. “리좀”에 대한 텍스트의 고전은 물론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A Thousand Plateaus, trans. Brian Massumi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7)다. 여기서 두 사람이 강조하는 것은 리좀의 “연결과 이질성이라는 원리들”이다. “리좀에서는 어떤 점이든 다른 점과 연결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는 나무나 뿌리와 아주 다른 점이다. 나무나 뿌리는 한 점에 안주하고 하나의 질서를 고정시킨다”(p. 7).[/note] 어쩌면 모든 아카이브가 이런 식으로, 즉 연결과 단절에 의한 돌연변이(mutation)를 통해서 발전할 것인데, 아카이브 미술은 또한 이 과정을 들춰내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허쉬혼은 “실험실, 창고, 스튜디오 공간, 그렇다, 나는 이런 형식들을 내 작업에서 사용하고 싶다. 생각이 끝없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note title=”10″back] Thomas Hirschhorn, “Interview with Okwui Enwezor,” in James Rondeau and Suzanne Ghez, eds., Jumbo Spoons and Big Cake (Chicago: Art Institute of Chicago, 2000), p. 32. 다른 많은 미술가들도 여기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며, 아카이브적인 것이란 내가 여기서 거론하는 작업의 오직 한 면일 뿐임을 다시 한 번 말해둔다.[/note] 이런 것이 아카이브의 장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실천이다.

 

 

아카이브, 자본주의의 쓰레기통

 

아카이브 미술의 결과는 때로 껄끄럽지만 의도가 냉소적인 경우는 드물다(환영할 만한 또 하나의 변화다). 반대로, 이 미술가들의 목표는 정신이 산만해진 관람자들을 열심히 참여하는 토론자들로 만들려는 것일 때가 많다(여기서 ‘아카이브의’라는 단어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note title=”11″back] 아카이브 미술은 원천들을 활발하게 살려내는데, 실로 이런 동기부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많은 혼성모방에서 보이는 병적인 인용의 성격과 대조된다. Mario Perniola, Enigmas: The Egyptian Moment in Society and Art, trans. Christopher Woodall (London: Verso, 1995) 참고. [/note] 이런 관점에서 한때 공산주의 그래픽 디자이너 집단에서 일했던 허쉬혼은 그가 미술가, 작가, 철학자에게 헌정한 가건물 –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1948)의 강박적인 심리와 행동의 산물인 〈메르츠바우 Merzbau〉 그리고 구스타브 클루치스(Gustav Klucis, 1895-1938)의 선동용 시설물을 똑같이 취하는 – 을 일종의 열정적인 교육학으로 보는데, 이 교육학에서 제공되는 가르침은 지식만큼이나 사랑에도 관심을 둔다.[note title=”12″back] “나는 그들과 그들이 한 작업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허쉬혼이 그가 기린 인물들에 대해서 한 말이다(Jumbo Spoons and Big Cake, p. 30). 벤저민 부클로는 허쉬혼의 작업 계보를 “Cargo and Cult: The Displays of Thomas Hirschhorn,” Artforum (November 2001)에서 예리하게 보여준다. Bice Curinger, Short Guide: Into the Work of Thomas Hirschhorn (New York: Barbara Gladstone Gallery, 2002)도 유용하다.[/note] 허쉬혼은 “아이디어를 배포하고,” “활동을 해방시키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을 한꺼번에 추구한다. 그는 상이한 청중들을 공공문화의 대안적 아카이브에 노출시키고자 하며, 이 관계를 감흥으로 충전하고자 한다.[note title=”13″back]Hirschhorn in Obrist, Interviews, pp. 396-99.[/note] 이런 식이니, 그의 작업은 관습을 세우려는 것일 뿐 아니라 리비도적이기도 하다. 동시에 선진 자본주의의 주객 관계는 오늘날 리비도라고 간주되는 모든 것을 변형시켰는데, 허쉬혼은 이 변형을 기록하는 작업 또한 하고, 가능한 경우에는 이 주객 관계를 다시 상상하는 작업도 한다.

 

허쉬혼은 ‘공적 공간’에 개입하는 작업들을 하면서 어떻게 이 범주가 오늘날 여전히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한다. 대부분 그의 기획은 주변적 물물교환과 우발적 교환이라는 토착적인 형식을 이용한다. 가두 진열대, 시장 가판대, 정보 부스 – 사제 공물, 개조된 상품, 즉흥 제작된 팸플릿 등이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배열이다 – 같은 것들이다.[note title=”14″back] 물론 허쉬혼만 유일하게 이런 포맷들로 작업하는 미술가인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해먼즈, 지미 더럼, 가브리엘 오로츠코,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도 등도 이런 작업을 한다.[/note]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자신의 실제 작업 대부분을 네 범주로 나눈다 – ‘직접 조각(direct sculptures)’, ‘제단(altars)’, ‘가판대(kiosks)’, ‘기념비(monuments)’인데, 이 범주들은 모두 [그의 작업이] 아카이브 자료들과 맺고 있는 유별나면서도 대중적인 관계를 명시한다.

 

직접 조각은 실내에, 흔히 전시장에 모델로 놓이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 작품은 파리에서 다이애나 왕자비가 사망한 지점에 자발적으로 생겨난 제단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녀를 애도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자유의 여신상에 다른 약호를 부여했는데, 그러면서 공식적 구조물을 ‘정당한 기념비’로 변형시켰다. 이는 허쉬혼에 따르면, 바로 그 기념비가 “아래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직접 조각은 이와 관련이 있는 효과를 내고자 한다. “실제 지지물의 원래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메시지”를 위해 디자인된 이 직접 조각들은 “공동체의 서명이 담긴”(이것이 여기서 ‘직접’이 뜻하는 한 의미다) 재기입 행위를 위한 방향전환의 임시 매체들로서 제공된다.[note title=”15″back] Hirschhorn in Jumbo Spoons and Big Cake, p. 31.[/note]

 

허쉬혼(Hirschhorn), 〈오토 프룬디치 제단 Otto Freundlich altar〉, 《베를린 비엔날레》, 1998. ©바바라 글래드스톤 갤러리, 뉴욕.
허쉬혼, 〈오토 프룬디치 제단 Otto Freundlich altar〉, 《베를린 비엔날레》, 1998.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사진 제공.

 

제단은 직접 조각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잡다하게 늘어놓은 제단들은 수수한 동시에 기이한데, 허쉬혼이 특별하게 중요시하는 문화적 인물들을 기리는 전시물이다. 그는 이런 작품을 네 개 헌정했다 – 미술가 오토 프룬디치(Otto Freundlich, 1878-1943)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그리고 작가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1926-73)과 레이몬드 카버(Raymond Carver, 1938-88), 네 사람에게 바친 것이다. 종종 키치 기념품, 봉헌용 초, 그리고 팬의 감정을 가리키는 다른 표시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제단은 “[기림을 받는 인물]이 사고로 혹은 우연히 죽었을 수도 있는 장소, 즉 보도, 도로, 길모퉁이”에 놓인다.[note title=”16″back] Ibid., p. 30.[/note] 행인들은 또 다른 의미로 우발적일 때가 많은데, [제단에] 이끌려 이 소박하지만 진심어린 기념 행위를 목격한다 – 그리고 그 행위에 감동한다(아닐 수도 있지만).

 

이름에 걸맞게, 가판대는 봉헌보다 정보에 치중한다. 여기서 허쉬혼은 취리히 대학의 의뢰를 받아 8개의 작업을 4년에 걸쳐 세웠는데, 각 가판대는 뇌 연구와 분자 생물학 연구소 안에 6개월씩 설치되었다. 이번에도 또 가판대는 그 연구소의 활동과 사뭇 동떨어진 미술가 및 작가들과 관련이 있었다. 미술가들은 프룬디치(한 번 더),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 메레 오펜하임(Meret Oppenheim, 1913-85), 류보프 포포바(Lyubov Popova, 1889-1924)였고, 작가들은 바흐만(한 번 더), 엠마누엘 보브(Emmanuel Bove, 1898-1945),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8-1956)였다. 가판대는 직접 조각과 제단보다 “계획된 파손 행위”에 덜 열려 있기도 했고 외견상 더 아카이브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note title=”17″back] Buchloh, “Cargo and Cult,” p. 114.[/note] 합판과 판지를 못과 테이프로 이어 붙인 이 구조물들은 가구와 여타 일상용품뿐만 아니라 이미지, 텍스트, 카세트, 텔레비전을 포함하는 것이 전형이다 – 세미나실과 클럽하우스를 뒤섞어 담론성과 사교성 모두를 간구하는 하이브리드인 것이다.

 

허쉬혼(Hirschhorn), 〈잉게보르크 바하만 가판대 Ingeborg Bachmann kiosk〉, 취리히 대학, 1999, ©바바라 글래드스톤 갤러리, 뉴욕.
허쉬혼, 〈잉게보르크 바하만 가판대 Ingeborg Bachmann kiosk〉, 취리히 대학, 1999.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사진 제공.

 

마지막으로, 기념비는 허쉬혼이 열렬히 받아들인 철학자들에게 헌정되었는데, 제단의 봉헌적 측면과 가판대의 정보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결합한다. 지금까지 세 개의 기념비가 스피노자, 바타유, 들뢰즈를 위해 세워졌고, 그람시를 위한 네 번째 기념비가 계획되어 있다. 바타유를 제외하면 각 기념비는 철학자들의 고국에 세워졌지만 위치는 ‘공식적’ 장소와는 동떨어진 곳이다. 따라서 스피노자 기념비는 암스테르담에 세워졌지만 거기는 홍등가였고, 들뢰즈 기념비는 아비뇽에 세워졌지만 거기는 거의 북아프리카 계 주민들이 사는 지역이었으며, 바타유 기념비는 카셀에 (《도큐멘타 11》 동안) 세워졌지만 거기는 터키인이 대부분인 동네였다. 이렇게 (동떨어진) 배치는 안성맞춤이다. 손님 철학자의 급진적 지위가 주인 공동체의 소수자적(minor) 지위와 대응하며, 이들의 맞닥뜨림은 기념비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즉, 기념비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이고 경제적으로) 적대적인 입장들을 덮어버리는 단일한 목소리의 구조로부터 그러한 차이들을 명확히 밝히는 데 사용될 수 있을 대항-헤게모니적 아카이브로 기능이 일시 재구성되는 것이다.[note title=”18″back] 내가 쓴 ‘소수자적’이라는 용어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Kafka: Toward a Minor Lilerature, trans. Dana Polan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에 나오는 의미다. 소수자는 언어 또는 형식을 집중적으로, 흔히 지방적으로 사용해서 그 언어 또는 형식의 공식적 또는 제도적 기능들을 교란한다. 소수자는 다수자(the major)와 대립하지만 주변부(the marginal)에는 만족하지 않아 ‘발화의 집단적인 배열들’을 끌어들인다.[/note]

 

허쉬혼, 〈들뢰즈 기념비 Deleuze Monument〉, 2000.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사진제공.
허쉬혼, 〈들뢰즈 기념비 Deleuze Monument〉, 2000.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사진 제공.

 

이런 미술가, 작가, 철학자 들의 일관성은 명백하지 않다. 대부분은 현대 유럽인이지만, 무명인부터 정전의 반열에 오른 인물까지, 비밀스런 은둔자부터 적극적인 참여자까지 다양하다. 제단의 미술가들 중에서는, 몬드리안의 성찰적 추상과 프룬디치의 정서적 재현이 거의 대척점을 이루는 반면, 가판대로 대변되는 입장들은 공산주의자였던 프랑스의 퓨리즘(Purism) 미술가(레제)로부터 나치당원이었던 독일의 표현주의 미술가(놀데)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인물들은 정치로 가지를 뻗은 미학적 모델들을 제안하며, 이는 헤게모니(그람시)와 위반(바타유)처럼 이질적인 개념들을 포괄하는 기념비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주체들의 일관성은 그들이 전념한 변형의 다양성, 바로 거기에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전망을 지닌, 즉 아무리 모순적일지라도 변화를 내다본 인물들로서, 허쉬혼이 각 주체에게 느끼는 ‘애착’에 의해 연결되는 – 실로 특별한 감정의 집중이 이루어지는 – 것이다. 이 애착은 허쉬혼의 동기이자 방법이다.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미술가로서 내가 하는 작업의 요체다.”[note title=”19″back] Hirschhorn in Jumbo Spoon and Big Cake, p. 32와 in Obrist, Interviews, p. 399. 그가 선택한 작가들 – 스위스인 발저, 프랑스인 보브, 오스트리아인 바흐만, 미국인 카버 – 도 광범위하고 다양하지만, 미술가들만큼 그렇지는 않다. 이 작가들은 각각 “더러운 리얼리즘”과 절박한 환상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때 이른 죽음을 맞이했거나 (발저의 경우에는) 광기에 빠졌다. 여기서도 다시 완성되지 않은 프로젝트, 완수되지 않은 시작을 볼 수 있다.[/note]

 

허쉬혼은 정보와 봉헌을 뒤섞은 그 특유의 혼합을 ‘가판대’와 ‘제단’의 형식으로 선언한다. 여기서도 다시 그의 목표는 클루치스 식의 선전 홍보와 슈비터스 식의 아상블라주에 대한 열정을 모두 배치하는 것이다.[note title=”20″back] 모든 선례들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 슈비터스의 〈에로틱하고 비참한 성당 the Cathedral of Erotic Misery〉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당 또한 공적인 잔해들과 사적인 물신들을 모아놓은(그래서 둘 사이의 구분 자체가 흐려진) 일종의 아카이브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슈비터스가 (리어 디커먼 Leah Dickerman이 미발간 논문에서 시사한 대로) 이 기념비를 내재화했다면, 허쉬혼은 기념비를 외재화하며, 그래서 다시 한 번 변형을 가한다. 또 다른 영역에서는 인디펜던트 그룹이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1956) 같은 전시회를 위해 만든 가건물들, 즉 자본주의의 또 다른 시점에 행해진 또 다른 아카이브 작업도 떠올릴 수 있을 법하다.[/note] 그의 목적은 과거 아방가르드의 대립을 학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기보다 실용적인 것이다. 허쉬혼은 이 혼합 수단을 응용해서 그의 관중들이 미술, 문학, 철학의 급진적 실천들에 (다시) 마음을 쏟도록 – 공식적 취향이나 전위적 문학이나 비판적 옳음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애정-가치가 부추기는 정치적 사용-가치에 토대를 둔 문화적 에너지 집중(cathexis)을 생산하도록 – 북돋는다.[note title=”21″back] 부클로는 “새로운 유형의 문화적 가치”를 암시한다. “Cult and Cargo,” p. 110.[/note] 어떤 점에서 허쉬혼의 기획은 페터 바이스(Peter Weiss, 1916-82)가 『저항의 미학 Die Aesthetik des Widerstands』(1975-78)에서 상상했던 변형에 전념하는 헌신을 상기시킨다. 1937년의 베를린이 배경인 이 소설은 일군의 열성적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들은 유럽 미술사를 회의적인 관점에서 서로에게 가르친다. 한 예에서 그들은 알테스 박물관에 있는 페르가몬 제단의 고전적 수사학을 해체하는데, “돌조각들을. . . 한데 모은 다음 그들 자신의 환경에서 재조립한 것이다.”[note title=”22″back] 이것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모더니티-미완의 기획」에서 이 이야기에 대해 풀어놓은 내용이다. “Modernity-An Incomplete Project,” in Hal Foster, ed., The Anti-Aesthetic (Seattle: Bay Press, 1983), p. 13.[/note] 물론 허쉬혼의 관심사는 망각의 위협에 처해 있는 어떤 아방가르드적 과거지, 나치가 악용한 고전적 전통이 아니고, 그의 협업자는 어떤 정치 운동에 뛰어든 열혈 가담자가 아니라, 오히려 국제적인 예술 전문가로부터 지역상인, 축구 팬, 아이들에까지 이르는 각양각색의 관람자들이다. 그래도 만일 ‘저항의 미학’이 문화 산업과 스포츠 스펙터클에 의해 지배되는 망각의 사회와 관련을 맺을 수 있으려면, 주소를 이렇게 이동시키는 것은 필수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작업, 즉 폐기된 구조물, 키치 물품, 뒤죽박죽인 참조물, 팬 인증물 등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이 우리가 푹 빠져 사는 상품-미디어-엔터테인먼트 환경의 그로테스크한 성격을 내비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한 요소들과 에너지는 작업을 다시 하고 흐름을 다시 조정하기 위해서 존재한다.[note title=”23″back] 허쉬혼은 의사소통적 이성을 매개할 어떤 분명한 매체가 오늘날 존재한다고 가장하는 대신, 대중문화 언어들의 엉겨 붙은 성격을 활용하며 작업한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시카고에서 전시된 〈점보 스푼과 커다란 케잌 Jumbo Spoons and Big Cake〉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시카고 불스에게 똑같이 경의를 표한다.) 실제로, 허쉬혼은 선진 자본주의의 ‘셀럽-산업 복합체’를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가령, 다이애나 비 자리에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아메리칸 아이돌 대신 류보프 포포바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재상연해서 이 복합체에 방향전환을 가하는 작업을 한다. 허쉬혼의 작업은 마르크스를 따른 다다의 전략, 즉 모방적 악화 전략의 동시대 버전이다. “화석화되어 있는 사회 조건들에는 그것들 고유의 노래를 불러줌으로써 그 조건들이 다시 춤을 출 수 있게 되어야 한다”(Early Writings, ed. T. B. Bottomore [New York: McGraw-Hill, 1964], p. 47; 영역은 저자의 수정). 이 전략에 대해서는, 나의 “Dada Mime,” October 105 (Summer 2003) 참고.[/note]

 

때로 허쉬혼은 그의 외향적 아카이브를 종종 은박지로 둘러싼 과열 성장물처럼 만든다. 인간도 자연도 아닌 모습의 이 형태들은 유기적 생물과 비유기적 물질, 생산물과 폐기물, 심지어는 욕망과 죽음 사이의 오래된 구분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세계 – 정보의 흐름과 생산품의 과잉으로 우글우글한 동시에 꼼짝달싹 못하는 세계 – 를 (다시 한 번 그로테스크한 지대에서) 가리킨다. 허쉬혼은 이런 쓰레기장의 감각중추를 “자본주의의 쓰레기통”[note title=”24″back] Rem Koolhaas, “Junkspace,” October 100 (Spring 2002) 참고. 〈자본주의의 쓰레기통 Der kapitalistische Abfallkübel〉은 허쉬혼이 2000년에 한 작업의 제목으로, 이 작업은 번지르르한 잡지들로 가득 찬 거대한 쓰레기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Kübel’ 또한 감옥 방에 있는 변기를 가리키는 단어다(이렇게 적절한 점을 알려준 마이클 제닝스에게 감사한다). 금융-유동과 정보-자본의 세계에서, 물화는 액화의 반대이기가 힘들다. “오늘날 세계가 표명하는 병증은 1920년대에 표명되었던 병증과 다르다”고 앙드레 브르통은 50년도 더 전에 이미 언급했다. “그 당시 정신을 위협했던 것이 경직(figement)이었다면, 오늘날은 분해가 정신을 위협한다”(Entretiens [Paris, 1952]. p. 218). 허쉬혼은 그의 광적인 전시물들에서 이렇게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지속되는 역설적인 상태를 환기한다.[/not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가 역설하는 것은 심지어는 이런 감옥 같은 들통 속에서도, 급진적인 인물들은 회복될 수 있고 리비도는 재충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 “선진적 물화의 현상학”도 여전히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을 것이며, 또는 아무리 손상되고 왜곡되었을지라도 최소한, 체계적 변형을 바라는 욕망은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note title=”25″back] Buchloh, “Cargo and Cult,” p. 109. “대중문화 속의 물화와 유토피아” 사이의 변증법에 대해서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이 제목으로 쓴 고전적 텍스트(Social Text 1 [Winter 1979])를 참고. 이 주제를 회고한 제임슨의 최근 글로는, “Politics of Utopia,” New Left Review (January/February 2004) 참고. 널리 알려진 진술 속에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모더니즘과 대중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둘 다 자본주의의 낙인이 찍혀 있고, 둘 다 변화의 요소들을 품고 있다. . . 이 둘은 하나의 통합적 자유에서 찢어져 나온 반쪽들이지만, 둘을 합친다고 해서 그런 자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 .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는 건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 .” (벤야민에게 보낸 편지, 1936년 3월 18일자. in Aesthetics and Politics [London: New Left Books, 1977], p. 123). 허쉬혼이 내놓은 것은 이렇게 망가진 반쪽들이 오늘날 보이는 모습의 한 버전이다.[/note] 문화적 잔여물에 에너지를 (재)집중하는 이 시도에는 분명 고유한 위험이 따른다. 이런 시도는 반동적으로, 심지어는 원초적으로 배치될 가능성도 있는데, 가장 파국적인 것이 나치의 경우다. 사실, 바이스가 환기한 나치 시대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우파가 재시도한 그 같은 동기부여에 맞서 경고했다. 동시에 그는 좌파가 문화정치학의 리비도 영역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고도 주장했다.[note title=”26″back] Ernst Bloch, Heritage of Our Times, trans. Neville Plaice and Stephen Plaic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참고. 블로흐는 비동시적인 것과 유토피아적인 것이라는 개념들을 제시했는데, 이런 개념들 때문에 여기서 유익한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note] 허쉬혼이 내비치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아카이브, 실패한 미래주의적 전망

 

아카이브 작업에서 허쉬혼이 급진적 인물들을 회복시킨다면, 타시타 딘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상기시키는데, 이를 다양한 매체 – 사진, 칠판 드로잉, 녹음, 서사적 ‘방백’이 흔히 동반하는 짧은 영화와 비디오 – 로 제시한다. 딘은 좌초된, 한물간, 그렇지 않으면 열외로 밀려난 사람, 사물, 장소에 끌릴 때가 많아서 그런 사례를 추적하는데, 그러면 그 사례는 마치 우발적으로 제풀에 그리 되는 것처럼 하나의 아카이브로 가지를 뻗어나간다. 〈소녀 밀항자 Girl Stowaway〉(1994)를 생각해보자. 한 서사적 방백과 함께 컬러와 흑백 둘 다로 촬영된 8분짜리 16mm 영화다. 이 예에서 딘은 세실리 공작부인(Herzogin Cecilie)이라는 이름의 영국행 배를 타고 1928년 밀항한 어느 오스트레일리아 소녀, 이름이 진 지니(Jean Jeinnie)인 소녀의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 배는 이후 콘월 해안의 스테어홀 만에서 난파한다. 〈소녀 밀항자〉의 아카이브는 이 한 점의 기록에서 출발하여 우연의 일치들로 짜인 허술한 조직으로 형성된다. 우선, 딘은 히스로 공항에서 그녀의 가방이 잘못 처리되는 바람에 그 사진을 잃어버린다(가방은 나중에 더블린에서 나타난다). 다음엔, 진 지니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딘은 모든 곳에서 – ‘장 주네(Jean Genet)’에 관한 대화에서, 팝송 〈진 지니 Jean Genie〉에서 등 – 그녀 이름의 메아리를 듣는다. 끝으로, 딘은 그 난파선에 대해 알아보려고 스테어홀 만으로 가는데, 그때 한 소녀가 항만의 절벽에서 밤에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나며, 바로 그날 밤 딘도 그곳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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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시타 딘, 〈소녀 밀항자〉, 1994. (1936년 5월, 스테어홀 만에 난파된 세실리 공작부인 호를 보여주는 엽서.) 타시타 딘, 프리스 스트리스 갤러리(런던), 마리안 굿맨 갤러리(뉴욕/파리) 사진 제공.

 

과학 실험의 불확실성 원리와 동등한 예술적 원리로 이루어진 〈소녀 밀항자〉는 아카이브 제작자로서의 미술가를 그 안에 연루시키는 아카이브다. “그녀의 여정은 포트 링컨에서 팰머스까지 가는 것이었다”고 딘은 쓴다.

 

“소녀의 여정은 시작과 끝이 있었으며,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 여정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의 여행은 그 같은 선적인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여행은 내가 사진을 발견한 순간에 시작됐지만 이후로는 줄곧 미지의 영역에 대한 조사를 통해 두서없이 진행되었고 명확한 종착점도 전혀 없었다. 그것은 사실과 허구를 가르는 선을 따라 역사로 들어가는 통로가 됐으며,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장소보다 우연한 개입과 서사시적 마주침이 일어나는 지하 세계를 통과하는 여행 같았다. 내 이야기는 우연의 일치에 대한 것이며, 초대받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관한 것이다.”[note title=”27″back] Tacita Dean, p. 12.[/note]

 

어떤 의미에서 딘의 아카이브 작업은 아카이브 작업에 대한 알레고리다 – 때로 우울하고, 종종 아찔하고, 항상 불완전하다. 마찬가지로, 딘의 작업은 또한 그녀를 시험하는 수수께끼 같은 기호들로 가득 찬 ‘지하 세계’에서 길을 잃은 주체를 왕왕 등장시키는 문학 장르에서 쓰이는 엄밀한 의미의 알레고리를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 주체는 오직 우연의 일치를 안내자로 청했을 뿐이다. 신도 베르길리우스도, 계시된 역사도 안정된 문화도 청하지 않았다. 그녀의 독해 관습조차도 그녀가 움직여감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및-텍스트 작품에서 딘은 잃어버렸다가-되찾은 이야기를 또 하나 들려주며, 거기에도 주인공과 아카이브 제작자 모두에게 ‘미지인 영역에 대한 조사’가 들어 있다. 도널드 크로허스트(Donald Crowhurst)는 관광객 유치에 갈급한 해안도시 테인마우스(Teignmouth)의 실패한 사업가다. 1968년 그는 단독으로 논스톱 세계 일주를 완주하는 첫 번째 항해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끌려 골든 글로브 경주에 참여했다. 그러나 항해자도, 테인마우스 일렉트론이라고 명명된 삼동선 요트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크로허스트는 금세 동요에 빠졌다. 그는 항해일지의 항목들을 (경주 관리자가 그를 선두에 위치시키는 동안) 위조하고, 그 다음에는 무선연락을 중지했다. 곧 그는 “‘시간-착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의 두서없는 항해일지 항목들은 “신과 우주에 대한 사적 담론”에 이르렀다. 결국, 크로허스트는 “영국 해안으로부터 단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그의 경도 측정용 시계와 함께 배 밖으로 뛰어내렸다”[note title=”28″back] Ibid., p. 39.[/note]고 딘은 추측한다.

 

타시타 딘(Tacita Dean), 〈테인마우스 일렉트론 Teighmouth Electron〉, 1999, ©타시타 딘, 프리스 스트리스 갤러리(런던), 마리안 굿맨 갤러리(뉴욕/파리).
타시타 딘, 〈테인마우스 일렉트론〉, 1999. 타시타 딘, 프리스 스트리스 갤러리(런던), 마리안 굿맨 갤러리(뉴욕/파리) 사진 제공.

 

딘은 크로허스트 아카이브를 세 편의 단편 영화에서 아리송하게 다룬다. 처음 두 편은 〈바다에서 일어난 실종 1과 2 Disappearance at Sea I and II〉(1996, 1997)로, 베릭(Berwick)과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에 있는 서로 다른 등대에서 촬영되었다. 첫 번째 영화에서는 눈이 멀 정도로 빛이 작렬하는 이미지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 장면과 번갈아 나온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등대 장치와 함께 회전해서 바다를 연속적인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첫 번째 영화에서는 어둠이 천천히 깔린다. 두 번째 영화에는 시작부터 오로지 허공뿐이다. 세 번째 영화 〈테인마우스 일렉트론 Teignmouth Electron〉(2000)에서는 딘이 카리브 해의 케이먼 브락(Cayman Brac)으로 가서 삼동선의 잔해를 기록한다. 그것은 “탱크 같기도 하고 또는 동물의 시체, 또는 지금은 멸종한 악질 생물의 외골격 같은 모습”이라고 그녀는 쓴다. “어떻게 보이든 간에 그것은 제 기능과 충돌하고, 제 세대에 의해 망각되었으며, 제 시대에 의해 버려졌다.”[note title=”29″back] Ibid., p. 50.[/note] 그 다음에는 명상이 이렇게 확장되면서 ‘크로허스트’라는 단어가 야심에 불타는 마을, 형편없는 경주, 형이상학적인 뱃멀미, 수수께끼 같은 잔해를 가리키는 한 아카이브로 타인들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딘은 흔적들로 이루어진 이 텍스트가 더 가지를 뻗어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케이먼 브락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주민들이 ‘버블 하우스(Bubble House)’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폐구조물을 우연히 발견하고, 테인마우스 일렉트론의 ‘완벽한 짝’인 이 구조물을 또 한 편의 단편 필름-텍스트로 기록한다(1999). 횡령죄로 투옥된 한 프랑스인이 디자인한 버블 하우스는 “허리케인이 와도 끄떡없는 완벽한 주택을 꿈꾸었던 구조물로, 달걀 모양으로 바람을 이기며, 바다를 내다보는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창문이 달려 각별하고 대담하다.”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오래 버려져 있던 버블 하우스는 현재 “다른 시대에서 온 성명서”처럼 폐허 속에 놓여 있다.[note title=”30″back] Ibid., p. 52. 딘의 아카이브는 푸코가 「악명 높은 사람들의 삶 The Life of Infamous Men」(1977)이라는 제하에 파헤친 아카이브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1660-1760년 사이에 그저 “권력과 맞닥뜨렸다”는 이유로 악명을 떨치게 된 무명의 주체들에 관한 “구금, 경찰, 왕에게 올린 탄원서, 독방 감금을 명하는 왕의 문서들로 이루어진 아카이브들”을 모은 것이었다. 푸코의 서술은 여기서 시사하는 점이 있다. “이것은 실존들의 모음집이다. 고작 몇 줄, 몇 쪽에 담긴 인생들, 무수한 불운들과 모험들이 한줌의 단어에 집약되었다. 서적과 기록물에서 우연히 발견된 외마디 인생들이다. 본보기지만 – 현자들이 읽어나가다가 수집한 것들과는 반대로 – 이는 숙고할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외마디 효과, 즉 거의 순식간에 힘이 사그라져버리는 효과밖에 없는 사례들이다. 이 사례들을 명명하는 데는 ‘단신(nouvelle)’이라는 용어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할 텐데, 이 말은 이중의 지시대상, 즉 이야기의 속도 그리고 관련 사건들의 현실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텍스트들이 말해주는 것들은 하도 줄여져 있어, 그것들을 가로지르는 강도가 단어들의 생생함 탓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우격다짐을 하는 사실들의 폭력 탓인지를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유일한 인생들이 기묘한 시로 변하는데, 이는 내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일종의 식물표본실에 모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Meaghan Morris and Paul Patton, eds., Michel Foucault: Power, Truth, Strategy [Sydney: Feral Publications, 1979], pp. 76-91).[/note]

 

딘이 아카이브를 통해 복구한 ‘실패한 미래주의적 전망’의 마지막 예로, 1928년에서 1930년 사이에 켄트의 던지니스(Dungeness) 근처 덴지(Denge)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거대한 ‘소리 거울(sound mirrors)’을 생각해보자. 이 소리 수신기는 유럽 대륙으로부터 날아올 공습에 대비하는 경고 체계로 착상되었지만, 시작부터 망조가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소리를 충분히 분간하지 못했고, 그래서 “곧 레이더가 총애를 받는 가운데 버려졌다.” 세계 대전들과 기술적 모드들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이 거울들은 썩어들면서 진흙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것들의 소멸은 이제 불가피하다.”[note title=”31″back] Ibid., p. 54.[/note] (어떤 사진들을 보면 이 헐크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오래된 대지미술 작품들을 닮았고, 좌초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 또한 딘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녀는 로버트 스밋슨(Robert Smithson)의 〈일부가 파묻힌 헛간 Partially Buried Woodshed〉(1970)과 〈나선형 방파제 Spiral Jetty〉(1970) 작업에 기초해서 두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 스밋슨에 대한 매혹은 듀란트 등도 공유한다.)[note title=”32″back] 르네 그린(Renée Green) 역시 〈일부가 파묻힌 헛간〉에 대한 비디오 작업을 했다. “Partially Buried,” October 80 (Spring 1997) 참고. 허쉬혼이 기리는 인물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처럼, 스밋슨도 이 미술가들에게는 완수되지 못한 또 하나의 시작을 대변한다. “그의 작업은 나에게 어떤 개념적 공간, 내가 그 안에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한다”고 딘은 평한다. “그것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흥분과 매력 같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다른 이의 생각 및 에너지와 나누는 개인적 대화인 것이다”(ibid., p. 61). 딘은 이와 동일한 일반적 아카이브 작업을 한 다른 미술가들도 언급했다.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 바스 얀 아데르(Bas Jan Ader), 마리오 메르츠(Mario Merz) 같은 이들이다.[/note] “나는 이런 비장소(no-place)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것들이 좋다.” 딘이 소리 거울에 대해 쓴 말인데, ‘비장소’가 ‘유토피아’의 문자적 의미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녀가 보기에 ‘비시간(no time)’ 속에 존재하기도 한다 – 하지만 여기서 ‘비장소’와 ‘비시간’은 또한 양자의 다수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던지니스 주변의 대지는 나에게 언제나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현대적이지 않다(unmodern)’는 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다. . . 나에게 그것은 1970년대와 디킨스의 시대, 선사시대와 엘리자베스 시대, 제2차 세계대전과 미래주의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다만 현재 안에서 기능을 하지 않을 뿐이다.”[note title=”33″back]Ibid., p. 54.[/note]

 

위: 타시타 딘, 〈버블 하우스〉, 1999.  아래: 타시타 딘, 〈로젤 포인트,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 유타 Rozel Point, Great Salt Lake, Utah〉, 1997. (슬라이드 프로젝션)
위: 타시타 딘, 〈버블 하우스〉, 1999.
아래: 타시타 딘, 〈로젤 포인트,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 유타 Rozel Point, Great Salt Lake, Utah〉, 1997. (슬라이드 프로젝션)

 

어떤 의미에서, 아카이브 같은 이 모든 사물들 – 테인마우스 일렉트론 호, 버블 하우스, 소리 거울(그리고 더 있다) – 은 잃어버린 순간들을 담은 채 발견된 방주 구실을 하는데, 이 방주 속에서 작품의 지금-여기는 완결되지 않은 과거와 다시 열린 미래 사이를 이을 수 있는 입구로 기능한다.[note title=”34″back] 어쩌면 이것들은 영화제작자 안드레이 소쿠로프(Andrei Sokurov)의 〈러시아 방주 The Russian Ark〉(2002)와 유사한 방주일 것이다. 그런데 소쿠로프는 그의 에르미타시 방주에서 러시아 역사를 총체화하지만 딘은 그녀가 다루는 역사들을 소쿠로프처럼 총체화하지 않는다 – 사뭇 정반대다. 시사점이 많은 한 글에서 마이클 뉴먼(Michael Newman)은 딘의 작업을 다양한 매체들과 동반 감각들의 아카이브라고 논한다. 뉴먼의 “Medium and Event in the Work of Tacita Dean,” in Tacita Dean (London: Tate Britain, 2001) 참고. Tacita Dean: Seven Books (Paris: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2003)에 실린 글들도 유익하다. “실패한 미래주의적 전망”은 허쉬혼에게도 연결/단절(dis/connection)의 원리를 제공한다. “나는 그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출입구를 열었다.” 허쉬혼이 〈점보 스푼과 커다란 케잌〉에서 기린 상이한 주체들에 대해 한 말이다. “연결고리는 실패, 유토피아의 실패다. . . . [어떤 것이든] 유토피아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유토피아가 작동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다” (Jumbo Spoons and Big Cake, p. 35).[/note] 쓸려가 버린 시간들 속에 정확히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발터 벤야민도 사로잡았지만, 딘에게는 벤야민이 암시했던 메시아적 구원의 기미가 없다. 딘이 다루는 한물간 사물들도 역사적 변화에 대해 모종의 “세속적 계시(profane illumination)”를 줄 수는 있지만, 그 사물들은 벤야민이 한물간 것들에서 찾기를 희망했던 “혁명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note title=”35″back] Walter Benjamin,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1940)과 “Surrealism: The Last Snapshot of the European lntelligentsia”(1928), in Hannah Arendt, ed., Illuminations (New York: Schocken Books, 1969) 그리고 Peter Demetz, ed., Reflections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8) 참고. “부르주아 계급의 잔해에 대해 이야기한 최초의 작가는 발자크”라고 벤야민은 「파리 – 19세기의 수도 Paris-the Capital of the Nineteenth Century」(1935년 개요)에서 썼다. “그러나 그 잔해를 시야에 낱낱이 드러낸 것은 오직 초현실주의뿐이었다. 생산력의 발달은 지난 세기의 소망이 담긴 상징들을 대변하는 기념비들이 붕괴하기도 전에 그 상징들을 산산조각 내버렸다”(Reflections, p. 161). 여기서 문제의 “소망 상징들”이란 19세기의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감의 정점에서 만들어낸 자본주의의 놀라운 산물들, 가령 “아케이드와 실내장식, 박람회장과 파노라마” 같은 것이다. 이런 구조물들은 근 한 세기나 뒤에 초현실주의자들을 매혹했다 – 자본주의가 더 발전해서 그 구조물들을 “꿈의 세계가 남긴 찌꺼기”로, 혹은 다시 벤야민을 빌면, “지난 세기의 소망이 담긴 상징들을 대변하는 기념비들이 붕괴하기도 전에 산산 조각난 상징들의 부스러기”로 변질시켰던 때다. 벤야민에 따르면, 초현실주의자들이 이런 한물간 공간들에 개입한 것은 거기 갇혀 있는 “혁명적 에너지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늘날의 아카이브 미술가들은 한물간 것이 이와 똑같은 힘을 보유한다고 보지 않는다. 사실, 이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발굴하는 과거들과 대립하는 이들(가령, 듀란트)도 일부 있다. 한물간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은 미약한 비판일 테지만, 오늘날 최고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자본주의 문화의 총체주의적 가정들에 대해 최소한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것은 또한 이 문화에 그것이 스스로 키운 소망 상징들, 스스로 박탈당한 꿈들을 상기시킬 수도 있다.[/note] 이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발터 벤야민보다 W. G. 제발트(Sebald)와 밀접한데, 딘은 제발트에 관해 예리한 글을 썼다.[note title=”36″back] Tacita Dean, “W. G. Sebald,” October 106 (Fall 2003).[/note] 제발트는 현대 세계, 즉 역사에 의해 황폐화되어 ‘자연 이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세계를 개관한다.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자를 포함하여) “반복의 유령”인데, 이들은 “완전한 자유와 지독한 침울”에 동시에 빠져 있는 것 같다.[note title=”37″back] W. G. Sebald, The Rings of Saturn, trans. Michael Hulse (New York: New Directions, 1998), pp. 237, 187, 234. 딘은 이 책에 담긴 제발트와 가장 가까운 것 같다.[/note] 이 잔재들은 수수께끼 같지만, 구원은 고사하고 해답도 없는 수수께끼들이다. 제발트는 기억의 복원력에 대한 휴머니즘의 흔해빠진 생각을 의문시하기도 했다. 『이민자들 The Emigrants』의 1절에 붙은 표제는 이렇다. “그리고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깡그리 파괴한다.”[note title=”38″back] W. G. Sebald, The Emigrants, trans. Michael Hulse (New York: New Directions, 1996), p. 1. 이 점에 관해서는, Mark M. Anderson, “The Edge of Darkness: On W. G. Sebald,” October 106 (Fall 2003) 참고.[/note] 딘 또한 황량한 세계를 살펴보지만(그녀의 영화, 비디오, 사진 속에서 그야말로 살펴보기만 할 때가 많다), 대부분 그녀는 우울증적 고착에 빠지지는 않는데, 이 고착은 제발트가 구원의 환영을 거부하는 용기를 위해 지불하는 대가다. 그녀의 작업에 담긴 위험은 다른 것이다 “인간이 거듭하는 실패”[note title=”39″back] Tacita Dean: Location (Basel: Museum für Gegenwartskunst, 2000), p. 25. 그녀가 다루는 실패한 인물들과 자신 같은 미술가라는 인물을 부분적으로 겹치게 하는 대목의 함의 또한 낭만주의적이다.[/note]에 매혹되는 일말의 낭만주의적 사고가 위험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카이브를 통해 복원하는 ‘실패한 미래주의적 전망’ 안에는 유토피아적인 것에 대한 암시 또한 있다 – 그런데 딘의 유토피아적인 것은 (허쉬혼처럼) 물화의 타자가 아니라, 과거를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며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제시하는 그녀의 아카이브와 공존하는 것이다.[note title=”40″back] 최소한 그녀가 아카이브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른 플롯으로 구성된 어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의 가능성을 유지한다. 딘은 2001년의 구 동베를린 TV타워에 관한 ‘방백’의 자막에서 그녀의 작업이 지닌 시간성의 한 측면을 “뒤로 돌아가 미래로(Backwards into the Future)”라는 말로 내비친다. 이 동작은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가 2002년에 ‘게걸음으로’라는 제목으로, 끈덕지게 되풀이되는 나치 과거의 징후를 다룬 소설에서 펼친 게걸음을 암시한다. “마치 뒷걸음질 치며 옆으로 비켜 가는 것 같지만 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전진하는 게걸음처럼 시간을 비스듬하게 가로질러가야 할까?”[/note]

 

 

아카이브, 일부가 파묻힌 헛간

 

듀란트도 딘처럼 매우 다양한 수단 – 드로잉, 사진, 제록스 콜라주, 조각, 설치, 소리, 비디오 – 을 사용한다. 그러나 딘이 그녀의 매체들에 정확한 태도로 임한다면, 듀란트는 그가 쓰는 형식들 사이의 ‘연극적’ 공간을 활용한다. 나아가, 딘이 작업의 원천을 꼼꼼히 수집한다면, 듀란트는 “로큰롤의 역사, 미니멀리즘/포스트미니멀리즘 미술, 1960년대 사회적 행동주의, 모던 댄스, 일본식 정원 디자인, 20세기 중엽의 현대 디자인, 자기계발서, DIY 주택 개조”의 샘플을 절충적으로 뽑아낸다.[note title=”41″back] Michael Darling, “Sam Durant’s Riddling Zones,” in Darling. ed., Sam Durant (Los Angel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02), p. 11. 달링의 언급에 따르면, 듀란트의 이런 우주는 마이크 켈리(Mike Kelley)와 존 밀러(John Miller)가 탐색한 하위문화 세계의 인근에 있다.[/note]

 

듀란트는 그의 아카이브를 공간적 무의식으로 상연하는데, 거기서는 억압된 내용들이 복귀하여 교란을 일삼고 상이한 실천들이 뒤섞여 엔트로피가 커진다. 물론 억압된 것의 복귀는 엔트로피 쪽으로 미끄러지는 측면과 쉽게 화해되지 않지만, 듀란트는 이 둘을 포괄하는 세 번째 모델을 암시한다. “하나의 장에 함께 [놓여] 상호관계를 맺은 요소들”[note title=”42″back] Durant in Rita Gersting, “Interview with Sam Durant,” in ibid., p. 62. Michel Foucault,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trans. A. M. Sheridan Smith (New York: Pan1heon Books, 1976), 특히, pp. 126-31 참고. 억압과 엔트로피의 모델들이나 마찬가지로, 듀란트는 여기서도 패러디에 근접한다. 어쨌거나 그의 아카이브들은 푸코가 논의한 아카이브들처럼 체계적인(또는 고급문화에 속하는) 경우는 드물다.[/note]을 가지고 어떤 역사적 시기를 거의 미셸 푸코 식 의미의 담론적 에피스테메라는 틀로 제시하는 모델이다. 듀란트는 특히 전후 미국 문화의 아카이브 속에서 두 계기에 끌린다. 1940년대와 50년대의 후기 모더니즘 디자인(찰스와 레이 임스 Charles and Ray Eames),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의 초기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버트 스밋슨)이 그 둘이다. 오늘날 첫 번째 계기는 까마득해 보이지만, 바로 그래서 그것은 다양한 재활용의 대상이 되었는데, 듀란트는 원본과 반복 양자를 모두 비판하는 관점을 내놓는다.[note title=”43″back] 예를 들어,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 식으로 레트로 디자인과 동시대 설치를 상냥하게 혼합하는 대신, 듀란트는 계급에 입각한 대결을 내비친다.[/note] 두 번째 계기는 도통 닫혀 있지 않다. 여기에는 “방금 전에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된 담론들”이 들어 있으며, 그래서 동시대의 실천에 내재한 “간극들”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 이 간극들은 시작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다시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일부 젊은 미술가들을 사로잡는 이런 문턱의 매력이다).[note title=”44″back] Foucault,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pp. 130-31. “내가 태어난 시대에 구상된 것들에 이끌릴 때가 나는 무척이나 많다”고 딘(1965년생)은 말한 적이 있다. 같은 세대에 속하는 듀란트 등도 자주 마찬가지다.[/note] 게다가 허쉬혼과 딘처럼, 듀란트도 그의 아카이브 재료들을 활성적이고, 심지어는 불안정한 것으로 제시한다 – 폭발을 일으키는 복귀와 엔트로피에 의한 붕괴, 양식적인 재포장과 비판적 개정이 가능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듀란트는 그의 첫 번째 계기를 남부 캘리포니아와 결부된(그는 LA에 산다) 20세기 중엽 디자인의 대표적인 견본을 통해 환기시키며, 그가 거기서 보는 억압적인 형식주의와 기능주의를 공격하는 대응을 펼쳐낸다.[note title=”45″back] 이런 식의 비난에는 선례들이 있지만(예컨대, 트리스탕 차라와 살바도르 달리), 그것의 정치적 가치는 문제적일 때가 많다. 여기서도 듀란트는 패러디에 근접한다.[/note] 한때 목수였던 듀란트는 (기업에서 생산되어 교외 주택지에서 소비되기에 이른 시점의) 후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세련미와 룸펜 노동자 계급의 분개(이 시대적 양식으로부터 노동자 계급을 배제하는 것이 그 양식의 전제조건 중 하나였다) 사이의 계급투쟁을 상연한다. 따라서 그가 만든 컬러사진들을 보면, 임스 디자인의 셸 의자 같은 소중한 물건들이 바닥에 엎어져 “굴욕을 당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상을 엎어버린 것이다.[note title=”46″back] Darling in Sam Durant, p. 14.[/note] 그는 또한 리처드 노이트라(Richard Neutra), 피에르 코에닉(Pierre Koenig), 크레이그 엘우드(Craig Ellwood) 등이 1945년부터 1966년 사이에 설계한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의 모형을 욕보이는 조각과 콜라주도 선보였다. 조각은 폼 코어, 판지, 합판, 플렉시글라스로 거칠게 만든 그 주택의 모형들인데, 불태워지고, 도려내지고, 낙서로 뒤덮인다(더한 분노를 드러내려고, 일부 조각은 저질 드라마와 토크 쇼가 나오는 미니어쳐 텔레비전과 연결되어 있다).[note title=”47″back] 듀란트: “내 모형은 형편없이 만들어지고 노략질을 당하며 엉망진창이 된다. 이는 건축을 점유해버림으로써 건축에 손상을 가하는 것의 알레고리로 의도된 것이다”(ibid., p. 57).[/note] 콜라주도 계급적 악의가 고약하게 분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이미지를 보면, 코에닉 하우스를 찍은 줄리어스 슐만(Julius Shulman)의 고전적인 사진에 맥주나 퍼마시는 두 술주정뱅이가 등장해서, 그 집이 대변하는 좋은 취미의 초월적 효과를 망쳐버리는 식이다. 다른 이미지에서는 한 접대부가 계급뿐만 아니라 성별도 넘어서 있는 승화된 세계의 모든 가장을 걷어치우는 방식으로 노출되어 있다.[note title=”48″back] 이 콜라주들은 〈집안에 들어온 전쟁 Bringing the War Home〉(1967-72)이라는 제목으로 마사 로즐러(Martha Rosler)가 초창기에 만든 포토몽타주들을 상기시킨다.[/note] 또 다른 작품들에서 듀란트는 미니어처 화장실과 배관 도면을 임스 디자인의 의자, 이케아의 선반, 미니멀리즘의 상자 들과 병치했다. 여기서도 거의 말 그대로, 그는 ‘좋은 디자인’을 파헤치며, 즉 그 디자인의 깔끔한 아바타를 통제되지 않는 신체와 다시 연결하며, 마치 그 디자인이 막고 있는 문화적 봉쇄의 플러그를 뽑아버리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의 수정은 공격적인데, 바로 이 공격을 통해 무의식적 욕동들은 신식이든 구식이든 우리의 거주용 기계(machines-for-living)로 복귀한다.[note title=”49″back] 이는 이바 헤세부터 코넬리아 파커까지의 페미니즘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디자인 그리고 스밋슨과 마타-클락의 모델에서 나타난 미니멀리즘의 논리를 모두 애먹인 문제다. 억압에 이렇게 맞서는 대항 수법은 “지하에 묻힌 것은 반드시 풀려나야 한다(What’s Underneath Must Be Released)” 그리고 “이해를 받기 위해 검사를 받는(Examined to Be Understood)”(1998) 같은 제목들에서 계획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또한 켈리의 작업에 힘입은 것이다.[/note]

 

샘 듀란트(Sam Durant), 왼쪽: 〈의자#4 Chair #4〉, 1995. 오른쪽, 〈버려진 집 #3 Abandoned House #3〉, 1995, ©샘 듀란트, 블럼 앤 포, 에미 폰타나 갤러리.
왼쪽: 샘 듀란트, 〈의자 #4 Chair #4〉, 1995.
오른쪽: 샘 듀란트, 〈버려진 집 #3 Abandoned House #3〉, 1995. 샘 듀란트, 블럼 앤 포, 에미 폰타나 갤러리 사진 제공.

 

그의 두 번째 아카이브 작업의 계기는 첫 번째 계기보다 더 광범위해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선진 미술, 락 문화, 그리고 시민권 투쟁들을 포괄하며, 그 기호들을 듀란트는 다른 작업들과 결합한다. 이 아카이브적 탐사에서 스밋슨은 특권을 쥔 암호가 된다. 딘처럼 듀란트도 스밋슨을 아카이브 제작자로서의 미술가의 이른 사례이자, 이 특정한 아카이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름이라고 본다. 몇몇 작업에서 듀란트는 〈일부가 파묻힌 헛간〉을 인용하는데, 스밋슨에 의해 1970년 1월에 켄트 주립대학교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급진적 미술작품의 모델은 압제적인 경찰력에 대한 기억 – 같은 캠퍼스에서 바로 몇 달 후 주 방위군 병사들에 의해 4명의 학생이 살해된 사건 – 과 혼합된다. 락 문화에서 일어난 ‘유토피아적’ 사건들과 ‘디스토피아적’ 사건들을 암시하는 내용들도 우드스탁과 알타몬트(Altamont) 공연에서 녹음한 소리들이 흙무더기에 묻혀 있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면서 또한 충돌한다.[note title=”50″back] James Meyer, “Impure Thoughts: The Art of Sam Durant,” Artforum (April 2000) 참고. 이와 유사한 작품들에서는 듀란트가 롤링스톤스, 닐 영, 너바나를 등장시킨다.[/note] 이렇게 상충하는 기호들은 이 아카이브 공간에서 함께 분출하지만, 그 공간에서 그 기호들은 또한 엔트로피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위 미술, 대항-문화적 음악, 국가 권력이 퇴색하는 가운데 상이한 용어들이 한 데 모이고 상반된 입장들이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듀란트는 베트남 시기의 문화적-정치적 아카이브를 스케치할 뿐 아니라 그 시기의 엔트로피가 기호들의 뒤범벅인 미디어의 신화로 미끄러지는 사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듀란트는 스밋슨을 통해 엔트로피에 이르렀는데, 뉴 저지, 퍼세이크의 기념비 탐방 A Tour of the Monuments of Passaic, New Jersey(1967)에서 스밋슨이 엔트로피의 기본 원리들을 설명한 유명한 구절은 이렇다.

 

“마음속으로 [한] 모래판을 그려보라. 모래판은 검은 모래와 하얀 모래가 반반으로 [나뉘어] 있다. 한 아이를 모래판으로 데려가 모래가 섞여 회색으로 변할 때까지 시계방향으로 수백 번 뛰어다니게 한다. 그 다음에는 아이를 반시계방향으로 뛰게 한다. 하지만 결과는 나뉘어 있던 원래 상태의 회복이 아니라, 회색이 더욱 강해지는 엔트로피의 증가일 것이다.”[note title=”51″back] Robert Smithson, The Writings of Robert Smithson, ed. Nancy Holt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79), pp. 56-57.[/note]

 

 여러 역할들 중에서도 엔트로피가 스밋슨에게서 한 역할은 예술의 형식주의적 구분들과 철학의 형이상학적 대립들을 논박하는 최종적 반증이었다. 이제 듀란트는 엔트로피의 잠식 작용을 스밋슨도 포함하는 문화 실천의 역사적 장으로 확대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밋슨에게 모래판이었던 것이 듀란트에게는 〈일부가 파묻힌 헛간〉이 된다. 그것은 엔트로피를 주제로 다룰 뿐만 아니라 예시하기도 하는데, 미시적인 차원 – 1970년에 일부가 파묻혔던 헛간이 1975년에는 일부가 불탔고 1984년에는 철거되었다 – 과 거시적인 차원 – 이 헛간은 정확히 “일부가 파묻힌” 최근의 미술과 정치의 알레고리적 아카이브가 된다 – 모두에서 그렇게 한다. “나는 그것을 묘지로 읽는다.” 〈일부가 파묻힌 헛간〉에 대해 듀란트가 한 말이지만, 그것은 그에게 비옥한 묘지다.[note title=”52″back] Durant in Sam Durant, p. 58. 스밋슨도 그의 모래판을 두고 무덤이라는 암시를 한다.[/note]

 

듀란트(Durant), 〈인간, 처럼, 나도 기다리는 데 지쳤다 Like, Man, I'm Tired of Waiting〉, 2002, ©샘 듀란트, 블럼 앤 포, 에미 폰타나 갤러리.
듀란트, 〈인간, 처럼, 나도 기다리는 데 지쳤다 Like, Man, I’m Tired of Waiting〉, 2002. 샘 듀란트, 블럼 앤 포, 에미 폰타나 갤러리 사진 제공.

 

듀란트는 “작동을 안 하는 또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거짓 변증법을 세우는” 작업을 할 때가 많다.”[note title=”53″back] Ibid.[/note] 예를 들어, 한 작품에서 그는 로절린드 크라우스가 25년 여 전에 제안한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이라는 구조주의적 지도를 수정한다. ‘풍경’과 ‘건축’ 같은 크라우스의 학문적 범주들을 ‘노래 가사’와 ‘팝스타’ 같은 팝 문화의 표식들로 대체하는 것이다.[note title=”54″back] Rosalind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October 8 (Spring 1979).[/note] 이 패러디에는 요점이 있다. 특정 구조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공간이 점차 퇴화했다는 것이다. (그의 도해는 아마도 “내파된 장에서의 설치” 혹은 “문화 연구 시대의 실천”이라고 불릴 법하다.) 아마도 듀란트가 암시하는 것은, 이런 전성기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는 변증법 일반이 – 선진 미술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사 속에서도 – 계속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대주의의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일 듯하다(어쩌면 그는 이 곤경을 음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아카이브 미술에 담긴 함의가 오직 이것뿐인 것은 아니다. 그의 “나쁜 조합들”은 또한 “연합적인 해석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엔트로피에 의한 붕괴가 명백한 조건에서도, 새로운 연결들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note title=”55″back] 발간되지 않은 진술에서 듀란트가 1995년에 한 말, Sam Durant, p. 14에서 인용. 모든 “고고학”의 목적은 현재의 차이와 과거의 잠재성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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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려는” 아카이브 미술의 의지에 관하여 언급하려 한다.[note title=”56″back] 이 의지는 나의 글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룬 시험 사례들의 주제와 전략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허쉬혼과 듀란트는 아방가르드와 키치를 넘나드는 교차를 강조하지만, 딘은 이 영역들 바깥에 있는 인물들에 마음을 쏟는다. 허쉬혼과 듀란트에게서 연결은 편향적이지만, 딘의 연결은 잠정적인 등, 다양한 것이다.[/note]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총체화하려는 의지라기보다는 관계를 만들려는 의지다 – 잘못된 위치에 놓여 잊힌 과거를 탐색하고, 그 과거가 지닌 다른 기호들을 (때로는 실용적으로, 때로는 패러디처럼) 대조하며, 현재를 위해 남아있을 법한 것을 확인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연결하려는 의지만으로도 아카이브의 충동은 크레이그 오웬스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귀속시킨 알레고리의 충동과 너끈히 구분된다. 이 아카이브 미술가들은 알레고리적 파편화를 통한 전복이 고압적인 상징적 총체성(미적 자율성, 형식주의의 헤게모니, 모더니즘의 정전, 혹은 남성 중심의 지배 가운데 무엇과 결부되든 간에)에 대항하는 방편으로 더 이상 자신 있게 제기될 수 없다고 본다. 같은 이유에서 이 아카이브의 충동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업에서 부클로가 밝혀낸 식의 아노미 같지도 않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미술은 논리 없음 혹은 감흥 없음을 투사하지 않는다.[note title=”57″back] 각주 1번 참고.[/note] 반대로 아카이브 미술은 아노미적 파편화를 하나의 조건으로, 즉 재현해야 할 뿐 아니라 돌파도 해야 할 조건으로 여기며, 이 목적을 위해 아무리 부분적이고 잠정적일지라도 감흥어린 연상을 일으키는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는데, 그러다가 이 미술은 또한 난해함을, 때로는 부조리를 기록할 때마저 있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러한 작업은 편향적인 것처럼, 심지어는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까지 보이는 때가 많다. 실로 아카이브 작업에 내재한 연결의 의지는 편집증의 기미를 드러낼 수 있다 – 억지스런 연결과 나쁜 조합을 만드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나만의 사적인 아카이브, 즉 지하에서 캐낸 나만의 메모들을 편집증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note title=”58″back] 이런 작업은 분명히 정신분석학적인 투사를 일으킨다. 그것은 또한 광적으로 – 오늘날 대부분의 아카이브 픽션(가령,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David Foster Wallace, 데이브 에거스 Dave Eggers)과 다름없이 – 보일 수도 있고, 또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다. 때로 허쉬혼과 듀란트는 청소년을 ‘기능장애가 있는 어른’(이 용어는 마이크 켈리에게서 빌려온 것이다)의 모습으로 환기시키곤 하는데, 이 인물은 자본주의 문화에 의해 불구가 된 상태로 그 문화에 맞서 습격을 해나간다. 그들은 또한 유아적 제스처를 환대하기도 한다. 설치 미술은 공간성에 위계를 두지 않기 때문에 분변학의 우주를 제안할 때가 많고, 이따금은 그런 우주 자체를 주제로 삼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항문기가 상징적 미끄러짐이 일어나는 단계, 즉 창조적 정의와 엔트로피 식 무차별성이 서로 투쟁하는 단계라고 본다. 때로는 이 아카이브 미술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note] 한편으로 이 사적인 아카이브들은 공적인 아카이브들에 분명히 의문을 제기한다. 사적인 아카이브들은 삐딱한 질서로 보일 수 있는데, 이런 질서의 목적은 상징적 질서 일반을 교란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적인 아카이브들은 또한 이 사회 법칙의 일반적인 위기를 가리킬 수도 있다 – 혹은 사회 법칙의 작용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런고로 상징적 질서가 더 이상 명백한 총체성을 통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리킬 법도 하다. 프로이트는 동일성(the same)이 고갈된 불길한 세계에 편집증 환자가 의미를 투사한다고 본다(체계를 추구하는 철학자는 드러나지 않은 편집증 환자라는 암시를 프로이트는 즐겨 했다).[note title=”59″back] ‘아노미’는 ‘무법 상태’를 뜻하는 그리스어 ‘anomia’에서 유래한 말이라, 여기서도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가리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짧은 안내서 A Short Guide』에서 커링거(Curinger)는 허쉬혼이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으려고 광분한다”고 말하는데, 그는 실제로 미친 사람의 페르소나를 취한 적도 있었다(바바라 글래드스톤 화랑 Barbara Gladstone Gallery에서 열린 2002년도 전시회의 〈동굴에 사는 사람들 Cavemanman〉에서). 상징계와 대면한 편집증에 대해서는, Eric Santner, My Own Private Germany: Daniel Paul Schreber’s Secret History of Modernit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와 나의 Prosthetic Gods (Cambridge, Mass.: MIT Press, 2004) 참고.[/note] 아카이브 미술도 문화적 기억 안의 실패, 즉 생산적 전통들의 채무 불이행을 감지하는 유사한 인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애당초 만사가 그토록 경악스럽게 단절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연결에 그토록 열을 내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겠는가?[note title=”60″back] 두 가지 생각을 더 해볼 수 있다. 1. 심지어 아카이브 미술이 동시대 문화에 만연한 “기억 산업”(국가 장례, 추모비, 기념비. . .)과 분리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산업은 특유의 방식으로 기억을 잃게 한다는 점을 아카이브 미술은 내비치며(“그리고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깡그리 파괴한다”), 그래서 대항-기억의 실천을 요청한다. 2. 아카이브 미술은 “아카이브 이성” 일반과 애매하게, 심지어는 해체적으로 묶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에 한 행동들(의료 기록, 국경 횡단, 정치 관여. . .)이 아카이브에 저장되어, 우리의 현재 행동들이 치밀하게 감시될 수 있고 우리의 미래 행위가 예측될 수 있는 ‘통제 사회’와 아카이브 미술이 묶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네트워크에 입각한 이 세계는 단절과 연결의 모습을 둘 다 보인다 – 이 역설적인 모습을 아카이브 미술은 때로 흉내 내는 것 같은데(허쉬혼의 전시물은 정보가 담긴 모의 월드 와이드 웹과 유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권력 면에서 일관성이 없는 동시에 체계적이기도 한 것 같은 어떤 질서를 대면할 때의 편집증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아카이브 이성”의 상이한 단계들을 달리 설명한 글로는, Allan Sekula, “The Body as Archive,” October 39 (Winter 1986)와 Gilles Deleuze, “Postscript on the Societies of Control,” October 59 (Winter 1992)을 참고.[/note]

 

아마도 아카이브 미술의 편집증적 차원은 유토피아적 야심의 이면일 것이다 – 뒤늦음을 알맞음(becomingness)으로 변모시키는 것, 미술, 문학, 철학, 일상에서 실패한 전망을 대안적 종류의 사회적 관계가 가능한 시나리오로 만회하는 것, 아카이브의 비장소를 유토피아의 비장소로 변형시키는 것, 이런 것이 아카이브 미술의 욕망이다. 유토피아적 요구를 이렇게 부분적으로 회복하는 작업은 예기치 못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현대적(모더니즘적) 기획에서 가장 경멸받던 측면이었는데, 우파는 전체주의적 수용소라고 비난했고 좌파는 자본주의적 백지상태라고 비난했다. “발굴의 장소”를 “구축의 장소”로 변모시키려는 이 움직임은 다른 면에서도 환영할 시도다. 그것은 역사적인 것을 외상적인 것이나 거의 진배없다고 보는 우울증의 문화로부터 벗어나는 변화를 제시하기 때문이다.[note title=”61″back] Hirschhorn in Obrist, Interviews, p. 394. 또는, 더 나쁜 것은 외상을 토대 – 말하자면, 그라운드 제로(the Ground Zero) – 로 삼는 비유를 너무도 제국적인 승리주의에 구사하는 문화(9/11 이후의 미국에 초점을 맞추자면).[/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