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미술
번역 김송요

고맙습니다, 페데리코 (페라리). 브레라 아카데미, 스털린 파운데이션과 프랑스문화원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절 초대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그리고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강의 시리즈를 기획해 주어 고맙습니다. 자리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페데리코가 방금 말한 것처럼, 저는 이제부터 미리 적어둔 글을 바탕으로 강연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겐 그저 몇 가지 메모가 전부입니다. 즉석에서 만들어가는 토크의 장점-토크가 끝난 이후 대화나 토론의 문을 열어놓기가 용이하다는 점을 살리고 싶어요. 또다른 장점으론 동시통역이 보다 쉬워져 통역을 들으시는 분들께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있겠네요. 만약 제 말이 너무 빠르다면 통역사가 신호를 주도록 합시다. 그럼 제가 모든 분이 따라오기 쉽도록 속도를 늦추겠습니다.

 

저는 이번 세션에 ‘오늘날의 미술’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똑 떨어지게 ‘당대미술’이라고 하지 않은 까닭은 당대미술이란 말이 미술사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의 시대였고,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나 초현실주의 같은 동시대 미술을 구성할 (또는 해체할) 움직임 역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경계가 계속해서 바뀐다는 점에서 당대미술은 역사적으로 별난 범주이기도 합니다. 이 경계는 일반적으로 20-3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동하고 있지요. 이 범주를 적용하면,  오늘날 세상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예술 작품 몇몇은 당대미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요즘 어떤 회화 작가가 고전적인 방식으로 구상 회화를 그린다면, 그건 (소위) 당대미술이 아니게 되겠지요. 거기엔 우리가 ‘당대’라고 부르는 특징적 기준이 되는 인장이 결여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럼 즉시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이 따라붙게 됩니다: 어떻게 미술사에선 한때 그랬듯 극사실주의, 큐비즘, 심지어는 ‘바디 아트’나 ‘대지미술’ 등의 묘사적 이름으로 특정 미적 양식을 지칭하는 대신에 단순히 ‘당대’를 이름으로 쓰는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바꿔 말하면, 이 분류는 실질적으로 당대미술사와 미술이라는 단서를 단 범주, 또는 적어도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수행되는 일정 숫자의 예술적 관행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이 표현이 음악 그리고 영화와 어느 정도, 최소한 실험영화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 알지만, 그럼에도 이 표현이 특히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쓰이고 있음은 여전합니다.) 이 의문은 이것만 얘기해도 일면 실마리를 잡습니다. 만약 제가 동시대 미술을 ‘조형예술’로 지칭한다면, 저는 이미 스스로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게 된단 겁니다. 원칙적으로 조형예술은 페인팅, 드로잉, 조각, 판화, 도예를 일컫지만, 일반적 상식으론 설치나 과거 ‘해프닝’으로 불렸던, 이젠 ‘퍼포먼스’나 이벤트의 형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작업 역시도 반드시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대’란 어떻게 보면, ‘조형예술’ 처럼 구체적인 미적 또는 학문적 특질을 표방하는 범주를 (적어도) 위배하(려고 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의 미술’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이처럼 여러 이유의 결합에서 비롯됩니다.

 

오늘날 미술은 어디에 서 있나요? 오늘날 미술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우선 ‘당대미술’이라는 분류를 봅시다. 이 범주는 고안되어 쓰이고는 있습니다만, 즉각 일련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미술이란 언제나 만들어진 당대의 것이니까요. 미켈란젤로도 당대였고, 프락시탈레스도 당대였고, 라스코 벽화를 그린 사람도 동시대인들에겐 당대였지요. 어떻게 작가가 당대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만약 어떤 작가가 특정 양식으로만 작업한다면 가능한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푸생이나 르누아르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 작가는 동시대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르누아르든 들라크루아든지와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며, 아무와도 동시대에 놓이지 않은 채로 형식의 답보 가운데 어중간히 위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술이란 당대의 공간이자 현실공간에서 만들어진 양식의 창작물이기에 언제나 동시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미술은, 느끼게 합니다. 무엇을요? 동시대 세계의 특정한 구조, 형태, 세계 속에서의 특정한 자기 인식을요. 라스코 벽화를 그린 사람은 자기를 스스로에게 보여주었고, 동시대인에게는 그들 세계의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지오토는 자신을 표현하고 동시대인들에게 세계의 형태를 보여주었지요. 이때 ‘세계’란 무슨 뜻일까요? ‘세계’는 의미, 의미의 순환이 갖는 어떠한 가능성을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암묵적으로 하이데거의 정의를 참조하고 있는데요, 하이데거는 세계를 의미의 가능성, 이미 정해진 의미가 아니라 내재된 의미의 가능성이 모인 총합으로서 ‘유의의성(significability)[note title=”1″back]하이데거의 bedeutsamkeit의 번역어로서 사용되었다.(역자 주) [/note]’의 총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오토, 푸생, 들라크루아, 피카소, 워홀은 뜻을 (기실 그것의 본질이 아닌언어적 중요 의미에 도달하게 하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의미와 의의의 일종의 순환 가능성에 형식을 제시하고 부여한 것입니다. (때론 철학이, 그보다는 자주 이데올로기가 ‘세계의 의미는 이런 것’이라고 할 때, 세계의 의미가 인간성에 헌사하는 이야기이거나 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가는 것, 혹은 아예 의미란 없음을 뜻하는 것처럼요.) 제가 말하는 의미란 예술이 형성하는 의미, 인식과 식별, 감정의 순환을 가능케 하지만 최종적 의의를 두고 그것들을 수정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미술은 완전히 종교에 경도되었을 때일지라도 결코 우리에게 ‘세계의 의미, 삶의 의미가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술이 쉴 새 없이 십자가에 못박힘, 그리스도의 매장, 부활과 성탄을 그려낼 때, 미술은 기독교적 진리 외의 것에 형체를 부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미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기독교미술이 단순 기독교만이 아닌 무언가에 형상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형태의 기독교는 교리를 암송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교리엔 일반적으로  이미지라거나 미술 전반이 필요하지 않고요. 오늘 아침 페데리코가 저를 데리고 <론다니니의 피에타 Pietà Rondanini>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전 이 피에타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게 됐지요. 기독교의 메시지를 소재로 사용하는 건 확실합니다만, 이 작품이 건네는 얘기는 무엇이지요? 완전히 다른 무언가입니다. 이 조각은 제가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금 상태를 놓고 보자면 미켈란젤로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욕망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10년이 넘게 이 피에타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딪혔을 어려움 때문인 건지, 이 작품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습니다. 실상 말하는 상태 자체가 아니예요. 그건 그 자리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개입시키는, 하나의 형식을 불러냅니다. 이때 그 무언가란 고통, 고난, 인간의 육체와 예술가 본인의 제스처를 아우르는 의미화의 어떠한 가능성일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 1552-1564, 대리석, 스포르체스코 성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론다니니의 피에타>, 1552-1564, 대리석, 스포르체스코 성

 

그러니까 만약 예술의 기로가 세계의 가능성을 창안하는 형식을 기르는 데 놓였다면 말입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세계가 기성에 국한한 동어반복, 이를테면 아주 기초적 의미(생활하고, 생존하고, 생계를 꾸리고, 죽음에 가까워짐으로써 조금씩 생을 소실하고, 이것저것을 만들고, 생산하고, 교환하고, 출산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잊어버리는 등등..)를 되풀이하는 데서 머물거나, 아니면 반대로 의미의 부재로 향한다면, 예술은 어느 경우에, 무엇을 향해 세계를 여는 걸까요? 복수(複數)의 세계가 가진 복수의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기존에 만들어진 의미가 이미 닫혀버린 반면 예술은 세계를 열 때마다, 스스로를 향해, 세계를 향한 제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향해 세계를 개방할 때마다 거기 존재하며 그리하여 의미를 열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각각의 예술가가 고유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심지어는 각각의 예술가 개개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라고까지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미켈란젤로, 피카소, 세잔, 브랑쿠시,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 이를테면 베토벤이나 베르디, 프루스트에 대해서도요. 이들 각자는 하나의 세계이며( ‘유의의성’과 맞닿은 맥락에서) 의미의 가능성입니다. 어떻게 보면 안을 향해서는 닫혀 있지만 바깥을 향해선 열려 있는, 특히 사람들의 마음을 엶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그전까지 몰랐던 형태의 새로운 가능성에 우리의 감수성을 노출시킴으로써 감수성을 열어주는 존재들입니다. 프루스트가 말하듯 작가는 작품에 착수할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로지 작품의 영향 하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독자/관객’이라는 존재를 형성합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출간했을 때,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카라바지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그랬듯이요. 종종은 그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기도 합니다. (카라바지오와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나는) 푸생이 카라바지오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회화를 파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오늘날의 미술이라는 질문, 그리고 동시대로 돌아가보고자 합니다. 당대미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당대미술이 싹틔운 형식과 그 형성과정으로는 어떤 것이 있지요? 이탈리아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더 많이 체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 역시 당대미술이 미술에 관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익히 아실 것입니다. 이른바 당대미술이 낳은 의미의 공간은 모순과 언쟁, 때때로는 폭력의 공간이 됩니다. 그 가운데엔 언제나 미술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당대미술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기다렸다는 듯 ‘그건 미술이 아니야’라고 말할 사람들이 수없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미 여러분도 떠올리셨을 몇 작품들을 굳이 수고롭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더군다나, 아주 신선한 화두는 아닙니다만 여전히 특기할 만한 점을 얘기하자면, 당대미술은 형식의 개방으로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 형식이란 무엇보다도 질문, 질문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의 질문만으로 세상이 이렇게 직조된 건 아닐 것입니다. 그저 의문형이며 염려스러운, 때로는 번민에 찬 의미의 순환이 이뤄지는 세상으로요. 참 어렵고, 연약하며, 불안한 세상이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현상을 이해하려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저는, 당대미술의 중심에는 바로 예술에 대한 질문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날의 미술이란 무엇보다도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미술, 결과적으로 세계에 어떻게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할지, 바람직할지를 묻는 미술입니다. 몇몇, 아니 분명 상당수의 작업들, 당대미술의 산물들이 구체적으로 예술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 새로울 게 아니라 꽤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일이지요. 이는 보통 받아들여지기론, 저도 동의하는데, 뒤샹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두 뒤샹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평범한 소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뉴욕에서 전시한 날, 그가 당시 알려진 그 어떤 예술 형식의 창조와도 무관한 대상을 두고 ‘이것이 미술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아주 결정적이면서도 복잡스러운 일을 저질렀음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뒤샹은 예술을 종종 ‘만남(rendezvous)’으로 정의합니다. 이 만남은 만남이되 만남이 아닌,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과 그가 어느 시점에 선택하여 형식으로서 읽어낼 무언가의 조우입니다. (뒤샹에겐) 언젠간 소변기였고 다른 언젠간 자전거 바퀴, 또 기타등등과의 만남이었을 테죠. 예술에 대한 질문은 명백하게, 선행하는 형식이 주어지지 않은 어떤 형식의 구성에 대한 질문으로 제기됩니다. 칸트가 제창한 유용한 용어와 개념을 빌려와 얘기해 보자면, 예비된 도식이 없는 형식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칸트가 감성적/지각적 이미지의 가능성을 앞서는 선험적 이미지를 ‘도식’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아시지요). 아마도 오늘날 예술의 과제는 어떠한 도식이나 도식화 없이도 지속해나가는 것이겠지요. 어디서 미리 나눔받거나, 미리 도열해놓은 형식의 가능성 같은 것은 없어요 – 여기서 저는 원래의 용례에서 벗어나, ‘형식’이라는 어휘를 시각적인 형식뿐만이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형식, 언어적 형식을 아우르는 아주, 아주 전반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피카소, , 1937, 캔버스에 유화, 국립 소피아 박물관 소장
피카소, <게르니카 Guernica>, 1937, 캔버스에 유화,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소장

 

이전에 미술의 도식화라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기독교미술 얘기로 돌아간다면 아주 간단할 겁니다 – 기독교 그 자체가 도식이었던 거죠. 기독교, 그러니까 종교는 형태창조를 가능하게 끔한 도식을 제공했고사람들은 종교의 모든 불가사의를 숙지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재림, 성모와 아기예수 같은 장면을 그립니다. 고대 신화 역시 대대적으로 소환되었고, 이어서 역사의 위대한 장면과 사건들이 정치, 도시와 왕가의 광영을 배경으로 두고 펼쳐졌으며, 인간의 형상 그 자체가 뒤를 따랐습니다. 중요한 형상으로서, 영웅적이고 열정적인 존재로서의 사람, 심지어는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볼 수 있듯 비극의 언저리에 선 존재로서의 사람까지도요. 게르니카는 과거 역사화로 분류되던 작품 가운데서도 최후의 명작 중 하나로, 아주 또렷한 의미를 갖는 그림입니다.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정확한 시기를 규정할 순 없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명백히 <게르니카>이후로 상정될 어느 시점에, 가능한 양식의 모든 집합체, 인간 그 자체며 인간과 인류의 서로 다른 군상에 적용되던 도식마저도 사라지게 되었음을 말입니다. 도식과 형상의 소멸, 형식을 창조할 가능성을 보태 주었던 것들의 소멸. 이 소멸이 바로 현재 세계를 특징짓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세계의 손실, 의미의 손실, 일대 도식과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따라서 미학적이기도 하든간에) 정립된 사고의 부재 상태에 놓였다고 할 수 있을 세계, 그렇기에 ‘당대미술은 자기 이야기, 불명확한 상태에 놓인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는 세계에 있게 합니다.

 

이건 동시대 작가들이 종종 스스로를, 어떨 때는 예술가 대신에, 목격자로 캐릭터화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술가’라는 단어는 사회-경제-정치적인 이유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창작’이라는 단어는 미심쩍게 여겨지는 동시에 되어왔습니다. 요즘 프랑스에선 위협이나 곤경에 처한 예술학교나, 예술가의 작업에 공적 지원이나 경제적 후원 가능성을 어느 정도 답보하는 몇 기관들의 복잡한 방어가 이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중요한 얘깃거리입니다만 지금 여기서 이 주제에 말을 더하지는 않겠습니다. 원하신다면 토론 시간에 다시 얘기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예술가도 창작자도 아니다, 나는 증인이다’. 증인이길 자처하는 사람에게 양식을 선보이거나 의미를 창조할 가능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진술하고 입증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니까 그가 보여주는 의미란 기성의, 아주 명료한, 의문점이라곤 없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스스로가 유럽과 미주 일부에서 절대다수 기득권에 속함을 간주함에도, 저는 상당히 자주 당대미술 작업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단순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 수준이 아니라, 되려  ‘심히 잘 이해하지’라고 해야 마땅할 때도 많아요. 저는 제게 ‘자 여기, 이게 바로 전쟁이야’라고 외치는, 저를 향해 아주 커다란 의미 덩어리를 발사하는 작업들을 보곤 합니다.

 

실비 블로셔, 1993, 설치, 빌뢰르반현대미술관 소장
실비 블로셔(Sylvie Blocher), <여름93 ÉTÉ93>, 1993, 설치, 빌뢰르반현대미술관 소장

 

떠오르는 일례로 프랑스 작가 실비 블로셔의 작업이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 블로셔는 공수부대원의 위장용 전투복 위에다 여성의 머리카락을 고정하여 전시했습니다. 제목이 보스니아에서의 강간이었는지 아니면 무제였던지 확실치는 않지만, (작품이었는지 캡션이었는지) 어딘가에 보스니아에서의 강간이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뭐랄까, 강간이라는 발상이 놓인 곳에 자리한 인종청소의 이미지인 것이지요. 저는 이 작품이 완전히 형식의 구애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공수부대원의 군복이 갖는 남성적인, 전투원의, 군인의 그것이라는 모호한 형식일지언정 말예요. 그러나 이 작품이 의미가 우선하는 수백만 작업의 예시 중 하나임은 틀림없고, 저는 많은 분들이 그렇듯 ‘강간이란 수치스러운 행각이다, 민족청소로서의 강간이란 더욱더 수치스러운 만행이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전쟁 중 자행된 강간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이’라는 완전하고 꽉 찬 의미를 작품에다 이미 가중하여 부과하는 작업 앞에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 연강의 첫번째 시간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장례식장에서의 애도 장면을 예로 들어 예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 걸 알고 있습니다. 그의 논지에서 사진 작가들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형식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만, 여기엔 실제 상황, 강간이라는 잔혹하고 악랄한 상황에 대한 질문이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엔 형식이 있지만, 메시지가 형식에 앞서며 형식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이 특정한 예술적 제스처 앞에서 당혹스러워하거나 심지어는 아주 못마땅해하기도 한단 걸 깨닫곤 합니다. 이 제스처들은 거의 전적으로 의미를 제스처화한 것이며, 주로 정치적 의도를 담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예술이 곧바로 정치적일 수 있단 생각은 실상 완전히 이 시대의 발상이며, 이는 작가의 현실참여와는 별개의 얘기란 걸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겁니다. 이를테면 피카소가 공산주의자들의 편에서 활동한 작가였다는 점과 <게르니카>는 완전 별개입니다. <게르니카>는 ‘공산주의 회화’가 아니니까요. 한편 우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측면에서 그려진 그림들이 게르니카와는 완전히 다르며, 순도 백 퍼센트의 지시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엄밀히는 미술이라고 할 수 없단 걸 알고 있지요. 그러니 만약 제가 거기 불쾌감을 느낀다면, 제가 실제로 꽤 자주 증언, 세계가 처한 상태를 입증하는 증언뿐만이 아니라 예술적 가능성의 대단한 빈곤에 대한 증언을 목도했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 그 가난이란 아르테 포베라에서 말하는 가난은 아닙니다. 물론 아르테 포베라라는 용어, ‘가난한 미술’이라는 개념은 그 당시 당대미술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아주 많은 걸 시사합니다만, 지금으로선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나 다름없게 되었으니까요-만일 제가 언짢음을 느끼고, 당대미술을 전쟁터로 만들 만한 이유가 많다고 본다면 말이죠, (개인적으론 이탈리아가 프랑스보다는 덜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줄었다지만 근 10년간 프랑스에서는 당대미술을 둘러싼 전투가 신문에서, 잡지에서, 책에서 쉴 틈 없이 벌어졌거든요. 그건 정말이지 결론이 나지 않는 주관식이나 다름없어요. 거센 야유와 그를 능가하는 큰소리가 난무하지요. 그리고 이 전투 내지는 언쟁은 미학적 논쟁과는 아예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아까 떠올렸던, 카라바지오에 대한 푸생의 평가처럼 여태까지 미술사상 일어난 미학적 논쟁뿐만이 아니라 낭만주의, 인상주의, 입체파 작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얘기일 거예요.) 만약 제가 그것들을 이해하고 우리 모두가 ‘맞아, 사실이야, 그게 당대미술이 처한 상황이지’라고 망설임 없이 말해야 마땅하다고 본다면, 누구도 ‘그래, 하지만 그건 정치적인 예술이자 증언으로서의 예술이야’라고 말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망각하고 예술을 일종의 의미 제작 같은 것으로 탈바꿈시키게 될 테니까요.

 

한편 동시에, 저는 진정 이러한 가난과 모순을 통해, 매번은 아니지만 때론 예술 작품이나 프로젝트가 부딪치는 난관을 통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할 거리란 정확히 이런 질문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당대미술의 개개 징후가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이유가 된다는 데 동의하기만 해도, 그것으로 우리는 이미 기존의 배치를 살짝 바꾸는 셈입니다. 즉 우리는 모든 당대미술에 찬반을 표하지 않을 것이고, 작품 선정을 관장하는 참된 식별법이란 무엇인지, 무차별의 원칙이란 건 존재하는지 (양식도 주어진 기준도 없을 경우, 납득 가능할 원칙 말입니다) 도통 파악하기 어려운, 여느 비엔날레 – 베니스든 리옹이든 – 의 몇몇 행사에서 보이는  지배적 태도로부터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것입니다. 바로 언제나, 끊임없이, 당대미술은 예술에 대한 질문을 종결하길 허락하거나 의무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토크의 마지막 주제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질문입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미술, 너무 빤하거나 세상을 열어젖히지 못하는 의미를 과중적재하는 대신, 그저 닫힌 세상, 인접한 세상, 열린 데 없는 세상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예술적 행위란 무엇일까요? 적어도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가 남아 있지요. 첫째로 제스처가 남아 있고요. 둘째로, 적합한 단어가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스처의 말미에 따라붙는 신호, 의미화하지 않는 신호가 남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스처가 남았다는 건 모든 작품이 상징이 아닌 행위, 몸짓(gesture)를 시사함을 얘기합니다. 실비 블로셔는 벽에 낙하산 부대원의 제복을 매달 때 특정한 방식을 썼습니다. 표면에 머리카락을 붙인 것이지요.  물론 여기엔 제가 언급한 개념으로서의 의미 역시 넘칩니다만, 제스처, 작가로서 블로셔의 제스처 역시 존재합니다.

 

제스처란 무엇인가요? 제스처는 움직임도 아니고 형식의 윤곽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길,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제스처는 의도를 수반하는 것이지만, 그 동작 자체는 의도와 이질적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제스처를 사용합니다. 지금 저도 그러고 있지요. 이탈리아인들은 말을 할 때 제스처를 많이 쓰는 걸로 유명합니다. 프랑스인은 비할 바도 못 되죠. 우리가 말을 하면서 쓰는 제스처는 때론 표현적이고 때론 그렇지 않습니다. 제스처와 그것이 뒷받침하는 단어의 뜻을 연결짓기란 불가능합니다. 제스처는 의미에 선행하거나, 그와 동행하거나, 그를 뒤따르는 지각적인(sensible) 역학이지만, 감성적인 감각(sens sensible)[note title=”2″back]낭시는 프랑스어 어휘로서 sensible을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서 sensible은 영어의 sensitive와 밀접함을 주지한다.(역자 주) [/note] 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러므로 제가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한다면 ‘안녕하세요’의 함의도 살짝 바꾸지만, 무엇보다도 그 감수성을 바꾸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게 바로 제스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분명 오늘날 확실히 실감하듯, 마치 미술의 최소 요건 같은 겁니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제스처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점차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타유의 표현, 그러니까 그의 책 제목[note title=”3″back]국내 번역본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워크룸프레스, 2017). 낭시 본인은 강연 중 제목을 ‘예술의 탄생’이라 언급하였다.(역자 주) [/note]에 따르면 우리에게 ‘예술의 탄생’이란 라스코, 아니면 그 외 어딘가(이제 우린 라스코보다 오래된 벽화도 알고 있으니까요)의 동굴 벽에 새겨진 제스처라는 거죠. 무슨 제스처라? 블랑쇼는 바타유의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에 관해 쓴 자신의 에세이에서 바로 이 제스처에 대한 아주 아름다운 사유를 보여줍니다. 블랑쇼는 단검이나 면도칼을 만드는 대신에 불꽃을 내기 위해 부싯돌을 치며 즐거움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순수한 쾌감의 제스처를 라스코 벽화를 그린 사람의 제스처와 비견하지요. (비록 무엇이 순수한 쾌감인지를 분석하기란 분명 쉽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건 목적성 너머의 무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사 그리고 예술에 대한 고찰의 역사 전반에서, 특히 이렇게 예술을 소고해온 이래-여러분도 잘 아시듯 – 예술이란 아주 최근 생겨난 현대적인 개념이지요. 칸트로 인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철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 이래니까요, 18세기 이전으론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 칸트부터 우리 시대까지, 헤겔, 니체, 키에르케고르, 아도르노, 하이데거, 그리고 이를테면 데리다 같은 동시대의 인물을 포함하여 모든 예술철학과 예술에 대한 숙고 사이에는 저마다 제시한 용어는 제각각이지만 통상 동의를 얻어온 생각이 있는데, 그것이 예술에는 제가 ‘제스처’라고 불리는 요소에 대한 질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미술이 처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미술을 위한 최소이자 필수인 요소, 제스처에 주위를 기울이게끔 용인 혹은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스처는 최후에도, 아니 사실상 제스처란 결말이 있는 게 아니기에 최후랄 게 없을지라도, 종결되지 않습니다. 마치 제가 잔을 드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처럼요. 제가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 제 제스처는 멈추지만, 저는 제스처를 예술의 한 모델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춤, 춤은 오로지 제스처에 대한 질문인 거죠… 그렇다면 제스처의 끝, 그 결말 없는 최후엔, 의미의 순수한 무無가 아니라, 신호(sign), 그러나 단순 지표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시하는 신호(signal)에 가까운, 어떤 것의 신호, 불어로는-아마 이탈리아어로도 그럴 것 같은데-번역할 수 없는 독일어 단어 wink 와 상통하는 신호가 있는 것입니다. wink는 아주 작은 신호와도 같은 제스처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가령 인사 같은 정보성 제스처, 눈을 깜박하는(윙크) 행위 같은 거죠. 하지만- 무엇을 가리키는 신호란 말인가요? 아마 이때 신호란 인식에 따르는 것이지 이미 존재하거나 정립된 의미를 따르는 건 아닐 겁니다. 제가 이 독일어 단어 wink[note title=”4″back]낭시는 자신의 저술 On a Divine Wink에서 하이데거를 언급하며, wink의 번역불가능성과 더불어 하이데거의 현상학에서 zeichen(신호/징표)로서, 대응하는 의미로 고착/귀결되기 이전 중간지점으로서의 wink, 유예성 그 자체로서의 wink를 설명한 바 있다.(역자 주) [/note] 를 생각한 까닭은 하이데거가 이 표현을 그 임무는 물론 존재 자체가 이 wink에 있는 궁극의 절대자를 설명하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wink에 대한 하이데거의 제언을 파고들진 않겠습니다. 그에겐 신이나 성스러운 존재와 관련된 문제겠지만, 제게 이는 틀림없이 예술과 예술적 제스처, 그리고 신성(도 포함할 테지만 이 어휘를 쓰는 게 마땅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에 대한 질문이 아마도 무한정 수렴하는 지점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일단 모든 걸 차치하고 간단히 말해 봅시다. 예술적 제스처를 만드는 wink라는 신호를… 무엇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짚고 가는 것이 중요하겠단 생각이 듭니다; 첫번째로, 이건 예술작품 그 너머를 향한 신호이지, 그 자체만으로 예술작품일 수는 없다는 것. 그와 상반되게 작품으로서 그 존재와 성격은 언제나 작품 바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예술을 위한 예술’은 예술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그릇된 생각입니다.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윤리적이든, ‘의미를 위한 예술’이라는 발상만큼요. 예술에 대한 양극단의 잘못된 생각 중 반대쪽이 바로 이거겠지요. 작품 자체를 넘어서는 신호, 바로 그것이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이겠지요. 기술의 산물은 그 자체로서 존재합니다. 그 안에 기능과 유용성을 갖고 있으며 목적성을 담고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여기 이 병은 누군가가 액체를 부을 수 있게 하는 용기로서 자기완결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뒤샹처럼 행동하고 ‘이것은 미술작품이다’라고 말한대도 제 행위는 어떤 목적의식에도 보탬이 되지 않고, 그 자체로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신호가 되는 것입니다. 당대의 신호란 바로 이걸 향한 신호입니다 :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세계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존재하고, 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세상을 열어 보입니다. 우리가 세계화(mondialisation)에 대해 얘기할 때 – 프랑스에선 세계화라고 말할 때 globalization대신 mondialisation이라는 단어를 쓰거든요[note title=”5″back]mondial이 ‘세계적인’, global이 ‘전체적인’이라는 뜻인 관계로 globalisation은 전체화 내지는 평준화라는 뜻으로 쓰인다.(역자 주)  [/note] – 전 거기에 세상의 아이디어와 가능성, 즉 감각의 순환이 있다고 생각하길 즐깁니다. 만약 우리가 세계화에 관여하고 있다면, 그건 우리가 반드시 세계의 형태를 발견하고 발명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요. 이때 세계의 형태란 다시 말해 가능한 감각의 순환의 형태입니다. 이러한, 요컨대 의미화되지 않는 감각은 누구나 포착할 수 있는 게 아닐 겁니다.

 

클라우디오 파르미지아니(Claudio Parmiggiani), , 2003, 설치작업, 볼로냐 현대미술관
클라우디오 파르미지아니(Claudio Parmiggiani), <유리 미궁 Glass Labyrinth>, 2003, 설치작업, 볼로냐 현대미술관

 

동시대 작품 중 하나를 마지막 예시로 들며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이탈리아와 저의 친구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클라우디오 파르미지아니의 작업을 가져와 봤습니다. 두꺼운 유리판으로 만들어진 유리 미궁인데요, 그게 최초였을지 아니면 한 번 이상 설치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프랑스 프레누아에 한 번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완결짓기 위해 보호복을 입고 두툼한 유리벽 미로 속으로 돌아가 커다란 망치로 유리를 부수어 버립니다. 그러면 유리조각이 사방에 흩어져 있게 되지요. 작업은 폐쇄된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작품의 스펙타클, 그 사진 이미지는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더라도 아주 순수합니다. 왜냐면 투명성이 무한히 반복되는 와중 깨져버린 유리가 바닥을 덮고 미로를 통과할 수 없게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동요가 있으니까요. 저는 이 작품이 제스처의 존재를 실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에 제스처는 파괴적이고 그리하여 폭력적인 파멸의 제스처이자 투명성과 소통된 의미의 와해입니다. 동시에 작품 그리고 그 파괴의 너머엔 새로운 건설로는 이어지지 않는, 의의가 부재한 신호가 있습니다. 이건 사회적, 정치적이거나 윤리적인 성명이 아니니까요. 그건 하나의 제스처, 제스처 그 이상의 제스처입니다. 무언가에 관한 제스처를 넘어서는 동시에 바로 그 무언가, 즉 고전회화가 천착해온 가장 중대한 관심사였던 정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여기선 유리, 유리의 투명성, 그리고 유리의 투명성을 포착하는 예술에 관한 제스처이기도 하겠지요. 회화사 내내 수도 없이 그려지고 전승되어, 말하자면 모란디처럼, 맑고 투명하게 유리묘사를 하지 않는 작가로까지 이어지는 유리, 병, 수정 그림들을 생각해 보세요. 유리의, 병의, 그리고 창문의 모든 역사를 쓰라면 쓸 수도 있겠지요. 유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투명성과 광채, 뿐만 아니라 빛을 포착하고 만들어낼 가능성 또한 작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리에 빛이 어른거리게 함으로써 행위자는 정확히 유리를 통해 세계, 물질세계, 빛의 세계, 태양의 세계, 혹은 촛불의 세계, 기타 모든 광원의 세계에 형태를 부여하는 과정에 놓이게 됩니다. 그 과정은 그저 새로운 섬광 혹은 빛이 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한 ‘빛이 나게 하는 것’을 라틴어로 풀이했을 때, 이는 물질 위에 어리는 빛(lumen)으로부터 광채 그 자체로서의 빛, 표면에 감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밝게 비추는 빛(lux), ‘빛이 있으라’의 바로 그 빛, 그리하여 세계의 창조로 돌아가는 바로 그 빛으로 향한다는 뜻이 되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르미지아니가 우리와 천지창조를 곧장 연결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단순히 모든 예술적 제스처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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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2일 채록한 밀라노 브레라 아카데미의 녹취록을 옮겼음.
원어 불어(미출간), 샬롯 멘델(Charlotte Mandell)의 영문 번역본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