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격차: 동시대 미술과 뉴미디어
번역 김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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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 데 부르, 〈아티카 Attica〉, 2008, 16 mm, 흑백, 9′ 55”. 설치전경, 룬드미술관, 룬드, 스웨덴, 2009.

 

디지털 예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처음으로 이메일 계정을 가졌던 1990년대 후반을 떠올려보자. 시각 예술도 이제 막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면서 디지털화될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웬일인지 이 모험은 실제로 견인력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디지털 미디어가 현대미술에 스며드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예술은 생산, 배포, 소비의 단계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다. 다채널 비디오 설치, 포토샵 된 이미지, 디지털 프린트, 잘라-붙여진 파일.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시계 The Clock(2010)는 가장 좋은 예다. 이러한 예술은 유비쿼터스 형태인데, 이 편재성은 디지털 카메라와 편집 소프트웨어의 접근성과 구입 적정성에 의해 가능해졌다. 세컨드 라이프(카오 페이 Cao Fei), 컴퓨터 게임 그래픽(밀토스 마네타스 Miltos Manetas), 유튜브 클립(코리 아칸젤 Cory Arcangel), 아이폰 앱(아미 실만 Amy Sillman) 등을 사용한 예술의 사례는 매우 많다.[note title=”1″back] 심지어 회화와 같은 예술의 전통적 형식들도 디지털 장치의 지원을 받는다. 언론이나 수집가에게 발송되는 PDF, 갤러리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JPEG 등이 있다.[/note]

 

그렇다면 나는 왜 동시대 미술의 외양(appearance)과 내용이 디지털 혁명에 의해 시작된 우리의 노동과 여가에서의 총체적 격변에도 이상하게 반응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많은 예술가들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디지털을 통한 정서(affect) 안에서 생각하고, 보고, 여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당면하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이것을 주제로 삼고, 또는 우리가 실존의 디지털화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이 디지털화에 의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찰하고 있을까? 나는 이러한 과업을 맡는 듯 보이는 예술 작품을 손에 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프란시스 스타크(Frances Stark)의 비디오 〈나의 가장 좋은 것 My Best Thing(2011)에서 그녀와 다양한 이탈리아인 사이버러버들 사이의 유혹(flirtation). 때때로 확대하고, 줌인하고, 넘기면서 터치스크린 상에 산산 조각난 신체의 섬뜩한 이미지를 손가락이 한가로이 스크롤하는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의 비디오(〈현실 만지기 Touching Reality, 2012). 라이언 트레카틴(Ryan Trecartin)의 비디오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혼란스러운 스크립트(〈K-Corea INC.K [Section A], 2009). 각각의 작품은 끝없이 버려지고 빠르게 변하는 가상 시대의 이페메라(ephemera)[note title=”2″back] 이페메라(ephemera)는 한시적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자료를 일컫는 단어로, 우리말로 ‘단명자료’로 옮길 수 있고 봉투, 스티커, 영수증, 항공권, 브로셔, 포스터 등이 포함된다. 이페메라는 단순히 쓰고 버리는 자료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특정 인물, 시대, 주제의 도큐먼트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한 예로, 초기 소비에트 유니온과 1987년~99년 러시아의 정치적 사건, 운동, 인물 및 정당과 관련된 이페메라를 모은 ‘러시안 이페메라 컬렉션’이 있다.(역자 주)[/note]와 그것이 우리의 관계, 이미지, 의사소통과 관련한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시사한다. 각각은 우리의 새로운 기술 체제를 특징짓는 친밀함과 거리감 사이의 곤란한 진동에 대해 표현하며, 우리의 끈질긴 생리적 삶과 우리가 들러붙어 있는 스크린 사이의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을 제시한다.

 

캐롤 보브 Carol Bove, , 2008, 혼합매체. 설치전경, 키메리히, 뒤셀도르프
캐롤 보브(Carol Bove), 〈어려운 횡단 La traversée difficile (The Difficult Crossing〉, 2008, 혼합매체. 설치전경, 킴머라이히(Kimmerich) 갤러리, 뒤셀도르프. 사진: 이보 파버(Ivo Farber)

 

그렇지만 이러한 예외의 경우들은 원칙을 강조할 뿐이다. 물론 ‘뉴미디어’ 예술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영역이 있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특화된 분야이다. 그것은 주류 예술계(상업 갤러리, 터너상, 베니스 국가관)와 좀처럼 겹치지 않는다. 이러한 분열(split)은 그 자체로 의심할 바 없이 징후적이긴 하지만, 이 글의 초점은 주류 예술계와 디지털에 대한 주류 예술계의  반응에 있다. 또한 당신이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한 1989년 이후의 동시대 미술을 살펴볼 때, 뉴미디어의 형식과 언어가 지각, 역사, 언어,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킨 방식을 거의 다루고 있은 듯 보이기 때문에 굉장히 놀라울 것이다.

 

사실, 90년대 이후의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일반적인 경향은 디지털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을 명확히 회피한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듯하다. 퍼포먼스 아트, 사회적 실천, 아상블라주 기법의 조각, 캔버스에 그린 회화, ‘아카이브 충동’, 아날로그 필름, 모더니스트의 디자인과 건축에의 매혹. 얼핏 보면 이러한 형식들은 어떤 것도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 없어 보이며, 이러한 형식들이 논해질 때, 디지털 미디어는 전형적으로 20세기에 걸친 이전의 예술적 실천들과 관련된다.[note title=”3″back] 나는 회화는 잠시 제쳐두려고 한다. 최근 회화의 주창자들은 (적어도 미국에서) 의식적으로 디지털 참조물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웨이드 가이튼(Wade Guyton)과 켈리 워커(Kelley Walker)는 혼종적 아날로그­-디지털 회화를 생산한다. 워커는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다운로드받는 대신, 도서관에 있는 책에서 찾는다. 그 책들은 유일품인 회화가 되려고 캔버스에 옮겨지기 전에 스캔돼서 그의 컴퓨터로 옮겨진다. 그렇지만 다시, 이러한 작업들은 디지털의 시각성 그 자체를 고찰하기보다는 기술을 (오히려  장식적으로) 사용한다. 다음을 보라. “The Painting Factory: A Roundtable Discussion,” The Painting Factory (전시도록), Los Angel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New York: Rizzoli, 2012), 11–12.[/note]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동시대 미술의 지배적인 형식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형식의 작동 논리와 관람 시스템이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 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이러한 예술 전략이 정보 사회에 대한 의식적 반응(또는 내포된 비난)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디지털이 깊은 차원에서, 특정 형식과 매체를 사용하는 작업에 있어서 예술적 결정을 규정하는 조건을 형성한다고 – 심지어 역설을 구조화한다고 – 제안하고자 한다. 디지털 기저의 현존은 1960년대 예술의 배경으로서 텔레비전의 등장과 비교해볼만하다. 이 역동적 상황 – 존재하지만 부정되고, 끊임없이 활동하지만 분명히 묻혀있는 사로잡힘(preoccupation) – 을 묘사할만한 하나의 단어는 부인(disavowal)이다. 나도 아는데, 그래도…[note title=”4″back] 위 문장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옥타브 마노니의 페티시즘에 관한 유명한 정식(formula)으로, 원문(“Je sais bien, mais quand même…,”)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Octave Mannoni, Clés pour l’Imagtnaire, ou l’Autre Scène (Paris: Points, Editions du Seuil, 1969), 9-33.(역자 주)[/note]

 

아날로그 미디어에 대한 매혹은 디지털에 대한 동시대 미술의 억압된 관계를 검토하는 명확한 출발점이다. 마논 드 보어(Manon de Boer), 매튜 버킹엄(Matthew Buckingham), 타시타 딘(Tacita Dean), 로드니 그레이엄(Rodney Graham), 로잘린 나사시비(Rosalind Nashashibi), 그리고 피오나 탄(Fiona Tan)은 디지털 이전 필름과 사진의 질료성(materiality)에 매료된 긴 예술가의 목록에서 나온 몇 개의 이름이다. 오늘날 조용하게 철컥거리는 슬라이드 프로젝터의 회전식 컨베이어 벨트나 8mm 또는 16mm 필름 릴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같은, 부피가 크고 한물간 기술적 형태 없이는 어떤 전시도 완성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동시대 작가들에게 있어서 ‘올드 미디어’에 대한 갑작스러운 이끌림은 특히, 1997년 DVD의 도입 등 ‘뉴 미디어’의 부상과 일치한다. 갑자기 VHS가 한물가고, 그것의 미적 특질과 영사 장비가 노스텔지어적으로 재사용되는 한편, 셀룰로이드 필름과 같이 더 낡은 기술은 여전히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필름의 부드러운 온기가 주는 친밀함은 (인간의 눈이 필요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부적인 것을 포함하는) 시각 정보가 넘쳐나는 차갑고 매끈한 디지털 이미지와 비교된다.[note title=”5″back] 아날로그 매혹은 동시대 미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예를 언급하자면, 어번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의 웹사이트는 카메라와 관련된 60개 이상의 상품을 제공하는데, 대체로 35mm 필름이거나 로모그래피에 기초한 것들이다.[/note] 반면 수많은 앱과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현상과 인화라는 잡다한 일 없이, 손쉽게 아날로그를 흉내 낸다. 슈퍼 에이트(spuer 8)[note title=”6″back] ‘슈퍼에이트’는 소형필름의 한 종류로, 1965년 코닥사에서 개발한 영화카메라용 8mm 필름의 이름이다. 이 필름은 기존 16mm 필름을 반으로 나눠 8mm로 사용하던 필름보다 화질과 소리가 양호해서 보급되던 1970년대부터 VHS 비디오캠코더가 상용화된 80년대까지 일상 및 실험영화, 아마추어 영화 촬영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역자 주)[/note]의 비애의 정서로 가득 채워진 영화들은 이제 당신의 휴대폰에서 촬영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진짜’ 아날로그 장비로 작업을 계속 해야 할까? 올드 미디어의 탁월한 대변인인 딘(Dean)과 같은 예술가는 그의 셀룰로이드에 대한 애착을 역사, 수공(craft), 편집 과정의 물질성(physicality)에 대한 충실함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필름의 소멸은 애도되어야 할 상실이다. 지표적(indexical) 미디어의 화려한 질감은 의심의 여지없이 마음을 끄는데, 그러한 호감도는 또한 드물고, 희귀하고, 소중하다는 인상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필름은 16mm 필름이 아니기 때문에 빠르고, 싸며, 무한으로 복사될 수 있다.[note title=”4″back] 물론 디지털 파일은 크기 조정과 압축을 통해서 성능이 저하되기 쉽다. 이러한 과정의 상품은 손실로 일컬어진다.[/note]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는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와 제임스 콜맨(James Colemans)의 작업에서 아날로그 미디어의 사용을 설명하기 위해 발터 벤야민을 언급했는데, 미디어의 유토피아적 잠재성은 그 미디어가 노후화되는 바로 그 순간에 촉발될지 모른다는 벤야민의 믿음을 인용하면서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주장은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긴밀히 엮여있는 벤야민 논증을 사용해  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적용하면 대게 노스텔지어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아날로그 필름이 방향을 거스르기보다는 유행을 따르는 것 같을 때 더욱 그렇다.(이러한 논의가 비디오가 셀룰로이드를 대체하기 시작한 수 십 년 전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또한 놀랍다.) 주류 예술계의 아날로그 필름 릴과 영사된 슬라이드의 지속적인 성행은 혁명적 미학 보다는 상업적 존립가능성에 대해 더 이야기되는 듯하다.

 

아날로그에 담긴 또 다른 동시대의 방식은 사회적 실천이다.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 미학에 관한 초기의 글이 인터넷에서의 탈신체화에 맞서 직접 대면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바람을 정리했다는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것은 가상적이고 재현적인 것을 겨냥했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 참여 예술은 스펙터클에 의해 파편화된 사회적 결속 강화를 목표로, 상호주관적인 교환과 소박한 활동(요리, 가드닝, 대화)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관계는 (기 드보르 이론의 중심인) 단선적 방향의 미디어 이미지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스크린을 통해서 매개되며, ‘유용한 예술(useful art)’과 실제-세계의 협업이 제공하는 해결책은 2002년에 소개된 웹 2.0 프로토콜과 매끄럽게 들어맞는다. 이 양자는 플랫폼의 언어, 협업, 활성화된 관객성, 그리고 (관객을 위해 고안된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공동 생산하는 ‘프로슈머(prosumers)’를 활용한다.[note title=”7″back] 퍼포먼스 아트처럼, 사회적 실천은 점점 더 이메일과 디지털 사진의 생산과 기록에 의존한다.[/note] 최근 제7회 베를린 비엔날레 – 큐레이터이자 예술가인 아투르 지미옙스키(Artur Żmijewski)가 점거 활동가들을 전시기간동안 KW(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로 초청했다 – 등 우리가 지난 십년 동안 여러 차례 봐 온 것처럼, 그러한 공동제작의 결과는 전통적 전시 형식에 담기 어렵다. 2001년에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영화나 책의 일방향의 흐름과 반대되는) 양방향 의사소통을 근본적인 문화 활동으로 전망하면서, 인터넷이 우리에게 미적 대상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내다보았다. 사용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미적인 것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note title=”8″back] Lev Manovich,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A: MIT Press, 2001), 163–64. 활동가이자 법학자인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에 따르면, 우리는 더 이상 ‘읽기만(Read Only)’이 아니라 ‘읽고 쓰는(Read/Write)’ 문화에 살고 있다.[/note] 이러한 사회적 실천에 대한 질문의 핵심은 명확하다. 실제 세계의 영향을 추구하는 대화형 프로슈머 모델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재현하거나, 오브제 형식을 가정할 필요가 있을까?

 

마노비치의 질문은 또한 더욱 전통적인 조각의 실천에 서려있다. 최근에 오브제 제작에서 만연한 아상블라주와 ‘비기념비성(unmonumentality)’은 할 포스터(Hal Foster)에 의해 (이사 겐즈켄 Isa Genzken과 다른 이들의 작업에서) ‘불안정한(precarious)’ 조각이라고 생산적으로 묘사된다. 비록 그러한 경향이 최근 휘트니 비엔날레의 손이 많이 가는 콜라주와 태피스트리에서 본 것처럼, 레트로-수공예성(retro-craftiness)으로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긴 하지만 말이다. 아상블라주와 ‘비기념비성’, 이 양자의 반복은 기술과 의사소통에 관한 현재의 체제를 오브제에 두려는 압력의 일종으로 제시된다. 이는 주관성(subjectivity)과 촉각성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듯이 더욱이 부러지기 쉽고 임시적인 것이 되며, 봉인된 철옹성 같은 스크린의 표면과 대비된다. 더욱이 겐즈켄의 작업이 이전의 브리콜라주 모델의 전형적인 사례라면, 여기서 발견된 요소들은 부수적 역사를 지닌 원 재료로서 다뤄진다. 1990년대 이후에 더 보편화된 전략은 재사용된 산물(artifact)의 역사, 내포된 의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지속시키기 위해 그것의 문화적 온전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책, 퍼포먼스, 필름, 모더니즘 디자인 오브제는 새로운 예술 작업에 포함되고, 재목적화된다. 캐롤 보브(Carol Bove) 또는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조심스럽게 배열된 소품(knickknack) 선반이나, 폴란드 예술가 조피아 스트리엔스카(Zofia Stryjeńska, 1891–1976)의 회화를 파올리나 올로스카(Paulina Ołowska)가 모사한 작품들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경향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를 쓴) 엘리베이터 수리 서비스의 8시간짜리 연극 〈개츠 Gatz부터 롭 피터맨(Rob Fitterman)의 시(익명의 트윗과 옐프 Yelp의 리뷰를 재활용), 리차드 무브(Richard Move)의 모더니스트 안무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재공연까지 시, 연극, 무용은 시각 예술과 궤를 같이하는 재목적의 형식을 모두 재연해 나갔다.

 

이러한 재목적의 형식은, 예술가들이 관심을 끌면서 저자성과 독창성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이미지를 미술사(셰리 레빈 Sherrie Levine)나 광고(리차드 프린스 Richard Prince)에서 끌어오던 1980년대 전유 예술과는 다르며, 또한 기계 복제 시대의 이미지의 곤경과도 다르다. 디지털 시대에는 다른 관심사가 우세하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기존 파일을 조정하는 일처럼, 재목적 행위는 포맷전환과 코딩변환 절차와 일치한다. 인터넷의 무한한 자료에 직면해 선택(selection)은 주요한 작동 원리로 떠올랐다. 우리는 맨 처음부터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성요소로부터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낸다. 선택한 오브제를 디스플레이의 중심으로 삼는 보브, 존슨과 같은 예술가나 이전의 예술을 재사용한 경우들인, 스트리엔스카의 작품을 가지고 작업한 올로스카,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을 가지고 작업한 시몬 스탈링(Simon Starling), 몬드리안(Mondrian)의 작품을 가지고 작업한 라이언 갠더(Ryan Gander)와 같은 예술가들은 결과물이 명백하게 아날로그라고 할지라도, 선별 전략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이제 더 이상 원본성과 저자성에 대한 질문이 핵심이 아니다. 대신에 중요한 점은 기존 산물의 의미 있는 재맥락화이다.

 

이러한 모으고, 재구성하고, 병치하고, 디스플레이하는 욕망(drive)에 대한 모든 관심은 포스터의 ‘아카이브 충동’이라는 영향력 있는 이론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포스터에게 이 용어는 “개별적인 인물, 대상, 그리고 현대예술(modern art)·철학·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특유한(idiosyncratic) 조사”[note title=”9″back] Hal Foster, “An Archival Impulse,” October 110 (Autumn 2004), 3.[/note]의 역할을 맡는 예술을 의미한다. 포스터는 예술가의 아카이브가 파편적이고 물질적이라고 서술하면서 “기계적 재과정”이라기보다는 “인간적 해석”이라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명백하게 주관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사이에 선을 긋는다.[note title=”10″back]  위의 책, 5.[/note] 예술가들은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고자 하는 편집증적 의지를 보이면서, 아카이브를 자원으로 삼기도 하고, 그것을 생산해내기도 한다.[note title=”11″back] 위의 책, 21.[/note] 포스터는 딘, 샘 듀란트(Sam Durant), 허쉬혼을 예로 드는데, 우리는 카더 아티아(Kader Attia), 조 레오나르드(Zoe Leonard)나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도 동일하게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대게 자신의 작업에 대한 체계적 조직화의 원리로서 이미 세워진 분류체계를 반박하는 이러한 예술가들은 주관적인 근거나 임의의 체계를 수용한다. 조심스럽게 놓인 소장품으로 보이는 그들의 설치는, 오늘날 개인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수천 개의 문서, 이미지, 음악 파일을 저장하고 보관하면서, 사실상 아키비스트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나는 내 아이튠즈 보관함을 유지하는 행위 – 새로 구입한 것을 다운로드하고, 그것들을 분류하며, 원하지 않는 트랙을 삭제하는 – 만큼 자주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종종 느낀다.) 이러한 버내큘러한 집합적 형식을 예술가의 이페메라와 오브제의 물리적 배열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지표적인 것의 희박한 아우라, 그리고 수요와 공급에 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수잔 힐러(Susan Hiller), , 1972–76, 305개 엽서, 차트, 지도, 책, 서류, 부착된 14개의 패널, 각 26 x 41 4분의 1.
수잔 힐러(Susan Hiller), 〈무명의 예술가들에게 헌정함 Dedicated to the Unknown Artists〉(부분), 1972-76. 305개의 엽서, 도표, 지도, 책과 서류, 14개의 패널 위에 마운트, 각각은 26×41 1/4 inch.

 

예술가는 개별 작업의 생산 뿐만 아니라 그들이 큐레이팅한 전시에서도 선별하고 종합한다. 1990년대에 이러한 실천은 반성적으로 제도적 맥락(프레드 윌슨 Fred Wilson, 마크 디온 Mark Dion)에 맞춰졌지만, 지난 10년 사이에는 작업들 사이의 가독성 있고 교훈적인 연계보다는 개인의 감수성에서 긴요한 것을 중요시하면서 더욱 오토마티즘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고,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의 전시 《러시아인 선심 The Russian Linesman》(2009), 비크 무니스(Vik Muniz)의 《그림조합 Rebus》(2009), 또는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의 매우 인기 있는 《무명 장인의 무덤 The Tomb of the Unknown Craftsman》 (2011)을 예로 들 수 있다. 그중 타시타 딘의 《방백 An Aside》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런던의 캠든아트센터(Camden Arts Centre)에서 개최된 2005년 전시의 도록에서 그녀가 상세하게 언급한 대로, (다른 작가들 중에) 로타 바움가르텐(Lothar Baumgarten), 폴 내쉬(Paul Nash),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작품은 우연, 일화, 일치를 바탕으로 선정되었다. 20세기 관점에서 이것은 표류(dérive)의 논리이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서핑의 행위다. 즉흥을 추구하고, 웹을 돌아다니는 임의적이고 자유로운 연계를 통한 주관의 연결. 1960년대에 이러한 흐름의 일종은 전후 도시 계획에 부여된 논리로부터의 이탈로 이해되었고,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지배적 사회 현장의 논리이기도 하다.

 

정보 시대의 중요한 부작용 하나는 리서치가 이전보다 쉬워졌다는 것이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한때 구글은 하루 3천권의 책을 아카이브했다), 리서치 기반 예술(research-driven art) 현상도 나란히 급증했다. 그들의 현재적 순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는 이전의 예술가-연구자 세대들 – 댄 그래이엄(Dan Graham), 한스 하케(Hans Haacke), 마사 로즐러(Martha Rosler) – 과 다르게, 안드레아 게이어(Andrea Geyer), 아시어 멘디자발(Asier Mendizabal), 헨릭 올센(Henrik Olesen) 등을 예로 들 수 있는 동시대 리서치 기반의 예술은 변방의 역사에 다시 접근하고 간과된 사상가를 다룸으로써 눈에 띄게 과거에 대한 집착을 전시한다. 심지어 몇몇의 예술가들은 고된, 구글을 배제하는(non-Google) 방법론을 사용한다. 에밀리 자시르(Emily Jacir)가 1970년대에 이스라엘 요원이 암살한 최초의 팔레스타인 예술가이자 지식인, 시인 와엘 주에이터(Wael Zuaiter)의 일생을 조사한 〈영화를 위한 재료 Material for a Film(2004-2007)를 생각해보자. 그 작업은 주에이터가 소유했거나 그에게 중요했던 오브제(책, 엽서, 필름, 레코드)를 모으며, 주에이터의 일생에 대하여 가능한 많은 정보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하고, 이러한 오브제들을 위치 지으려는 자시르의 노력이 일기처럼 벽면 텍스트로 서술된다. 리서치 기반의 예술과 아카이브 설치의 구현은 보통 신중하게 선별한 물리적 오브제에 아우라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더군다나 이러한 오브제는 사용자에 의해서 조정되기보다는 고정되고 정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그러한 작업은 동시대 미술이 뉴미디어를 직면할 때 동시대 미술에 의해 발생한 역설적인 타협을 재차 확인시킨다. 디지털 이미지의 끝없는 가변성과 조정은 ‘한정’판과 (세피아 색의 프린트, 전시된 캐비닛과 이페메라 파일함 등) 귀중한 유일품(one-off)의 미학을 설정함으로써 허위임이 드러난다.

 

인정되든 그렇지 않든,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연구의 가능성은 동시대 미술의 다른 측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수잔 힐러는 그녀가 영국의 해변 마을에서 발견한 305장의 엽서 시리즈 〈무명의 예술가들에게 헌정됨〉을 수집했다. 각각의 엽서에는 ‘거친 바다(ROUGH SEA)’라는 캡션이 붙어 있고, 음산하고 사나운 바다가 인간의 건축물을 잠식하는 모티프가 묘사돼 있다. 30년 후 조 레오나르드는 190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 자연의 경이로운 진화가 관광지로 개발된 것을 추석해서, 유형별로 묶은 4000장 이상의 나이아가라 폭포 엽서를 전시했다(《당신은 결국 여기 있는 나를 본다 You see I am here after all, 2008). 그 엽서는 대체로 이베이(eBay)에서 구한 것으로 인터넷 검색능력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관한 우리의 소비는 차례로 동시대 지각 방식의 패턴 변화를 반영한다. 4000장의 엽서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뉴스나 후기를 속사포로 훑는 것처럼, 우리의 눈은 단지 표면을 스캔할 뿐이다. 시인이자 우부 웹(Ubu Web)의 창시자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는 이런 종류의 작품에 해당하는 문학 작품을 ‘새로운 판독의 어려움’으로 언급한다. 정독하기보다는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해 읽는 뉴욕 타임즈의 한 날의 판본을 다시 타이핑한 그의 『하루 Day』(2003)와 같은 책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우리 눈앞에 지나가는 모든 정보를 이해하려고 글을 읽기보다는, 글을 분석  언어를 정렬하는 2진법 과정 – 한다.”[note title=”12″back] Kenneth Goldsmith, Uncreative Writing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 158. 그의 정식은 스캐닝과 단속적 비전(saccadic vision)에 관한 최근 이론에서 출발한다. 이 작업의 선례는 모두 문학적이면서 예술적이다.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The Making of Americans〉(1925) 그리고 온 카와라(On Kawara)의 〈One Million Years〉(1969).[/note] 오늘날 (예술가보다는 큐레이터에 의해 생산되는) 많은 전시는 관람 조건으로 이러한 새로운 판독의 어려움을 모델로 한다. 《도큐멘타11》(2002)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전시였는데, 특히 관객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작품을 포함하는 경향 – 이 경우 600시간의 필름과 비디오 – 의 시초가 된 전시였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전시가 얼마나 컸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길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아주 작은 갤러리에도 며칠 동안의 예술이 담길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거르고, 스치고, 훑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 2012, 복합매체, 설치전경, 프리데리치아눔, 카셀 도큐멘타 13.
카더 아티아(Kader Attia), 〈서양으로부터 서양 밖 문화까지의 보수 The Repair from Occident to Extra-Occidental Cultures〉, 2012, 혼합 매체, 설지 전경, 《도큐멘타 13》 프리데리치아눔, 카셀 사진: 로만 매어츠(Roman März)

 

나의 요점은 주류 동시대 미술이 디지털 혁명을 부인하는 동시에, 특히 뉴미디어 속에서 그리고 뉴미디어를 통해서 살고 있는 조건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기를 거부할 때조차 거기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왜 동시대 미술은 디지털화된 삶에서 우리의 경험에 대해 묘사하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어쨌든 사진과 영화는 1920년대에 빠르고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졌고,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는 비디오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은 이미지 기반이었으며, 시각예술과의 관련성과 이에 대한 도전은 자명했다. 대조적으로 디지털은 코드이며, 본질적으로 인간의 지각에 이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언어적(linguistic) 모델이다. jpg 파일을 txt 파일로 변환하면, 그 구성요소를 볼 수 있다. 이 구성요소에서 숫자와 알파벳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처리법은 일반적인 관객에게는 의미가 없다. 시각예술의 뉴미디어에 대한 부인에는 두려움이 기저를 이루고 있을까? 디지털 파일들의 무한한 다수성에 직면해, 예술 오브제의 고유성(uniqueness)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텀블러 등을 통해서 무한하고 통제되지 않은 채로 배포됨에도 불구하고 재인증될 필요가 있다. 당신이 갤러리에서 DVD를 대여하면, 대게 라벨에 ‘보기만 가능합니다(VIEWING COPY ONLY)’라고 분명하게 찍힌 하얀 종이가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수집가가 동일한 DVD의 한정판을 구입하면, 예술가가 서명하고 번호를 붙이고 정성들여 만든 용기에 담긴 DVD를 받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골드스미스가 그의 “창의적이지 않은 글쓰기” 이론을 내세울 때, 20세기 예술의 역사를 뒤샹부터 워홀, 레빈까지 도둑질하고 훔치는 연대기라고 말하면서 1980년대 동시대 미술을 시를 위한 하나의 모델로 언급한다. 사실상 시각예술은 독창성을 과도하게 공격했다. 이는 항상 지적 재산과 신중하게 부여된 저자성에 대한 존경으로 뒷받침되었다(워홀과 레빈은 익명이 아니었고, 그들의 시장 지위는 그들이 속한 갤러리의 치열한 보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note title=”13″back] 골드스미스와 그의 많은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잘라내서 붙이기 작업이 문학으로 넘겨질 때 문학의 경제는 훨씬 더 작고 약하고 ‘원본’이라고 말할 것이 없기 때문에 방점이 상당히 다르다.[/note] 자본의 흐름이 미미하고 작품이 웹상에서 자유롭고 가상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시의 세계와 다르게, 시각 예술의 지적 재산과 물질성에 대한 이중적 애착은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그 자체의 타당성을 위험하게 한다. 100년 안에 미술은 영화 시대의 연극과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인가?

 

골드스미스는 시각 예술에 기계적 재생산이 도달한 것이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 시대의 언어적 기반은 문학에 어쩌면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웹의 등장과 함께, 글쓰기는 자신의 사진(photography)을 만난다.”[note title=”14″back] Goldsmith, Uncreative Writing, 14.[/note] 앞서 내가 언급한 두 개의 작품, 트레카틴과 스타크가 언어를 그들 미학의 중심에 둔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학 특히, 시 – 골드 스미스가 『창의적이지 않은 글쓰기』에서 옹호하며 보여준 – 가 이제 아방가르드의 바통을 움켜쥐고, 우리의 새로운 기술적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경험을 전달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각 예술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혼성화된 해결책 – 외관상은 아날로그, 구조상으로는 디지털 – 은 항상 전자에 편향돼 있는 듯 보이고, 시장은 이를 선호한다. 디지털이 시각 예술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면, 이러한 방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며 예술의 가장 중요한 가정에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가장 유토피아적으로 디지털 혁명은 새롭게 비물질화되고, 저자에서 벗어나고, 상품화되지 않는(unmarketable) 집단 문화의 현실(reality)을 열어 놓는다. 최악의 측면에서 시각 예술 자체의 임박한 노후화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