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큐레이팅
번역 곽노원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 1928년, 5', 흑백필름, 출처: EYE 필름 뮤지엄(EYE Filminstituut Nederland), 저작권: 한스 리히터 재단(Hans Richter Estate).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필름 스터디 Film Study>, 1928년, 5분, 흑백필름, 출처: EYE 필름 뮤지엄(EYE Filminstituut Nederland), 저작권: 한스 리히터 재단(Hans Richter Estate).

 

우리는 이따금 그리고 연거푸 동시대 예술이 선택적이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적이고, 따라서 민주화되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전시 행위(exhibition practice)와 관객의 기대, 취향 간에는 일종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 격차의 원인은 간단하다. 동시대 전시의 관객들은 대개 지역적인데 반해 전시되는 예술은 대개 국제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대 예술이 한정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로 포괄적이고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바로 이 점이 지역 관객들을 거슬리게(irritate) 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유럽에서 이주 문제들이 유발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거슬림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이주자들이 엘리트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관객들에게 포괄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태도가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경험된다는 점이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커버 아트. 데이비드 피어슨(David Pearson)이 디자인한 펭귄북스 위대한 사상 시리즈(Penguin’s Great Ideas series) 3권(2008).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시대적인 전시란 국제적 맥락에서의 지역적 예술에 대한 전시가 아니라, 지역적 맥락에서의 국제적 예술에 대한 전시다. 지역적 맥락은 지역 관객들에게는 이미 주어진 것이자 친숙한 것으로서 명백하게 파악될 수 있지만, 반면 국제적인 전시의 맥락은 반드시 큐레이터에 의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전시는 하나의 몽타주이기에 예술이 기능하고 있는 실제 지역적 맥락은 전혀 그려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전시란 언제나 인공적(artificial)인 것이다. 이러한 인공성이 어떻게 거슬림을 유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시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한 대상의 드러남(exhibition)을 그 대상의 복제(reproduction)와 등치시키며, 예술작품의 “전시가치”를 그것의 복제가능성(reproducibility)의 효과(effect)로 정의하고 있다.[note title=”1″back]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its Technological Reproducibility,” in Illuminations (New York: Schoken Books, 1969), 257.[/note] 복제나 전시는 모두 예술작품을 그것의 역사적 장소 – 그것의 “지금 여기” – 로부터 탈락시키고 예술작품을 전 지구적 순환의 경로로 전송하는 작동들(operations)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작동들의 결과로서 예술작품이 원래의 “제의가치(cult value)”를, 전통과 의례(ritual) 속에서의 예술작품의 위치를, 그것의 아우라를 상실한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아우라란 예술작품이 근본적으로 속해있는 원위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것이 기입된 바(inscription)이며 반면 아우라의 상실이란 경험 세계로부터 탈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복제본은 원본을 참조할 뿐 그것을 실제로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시된 예술작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된 예술작품은 그것의 근본적 맥락을 참조하지만, 실제로는 관객이 근본적 맥락을 경험하는 것을 막는다. 근본적 환경으로부터 고립되고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예술작품은 물질적으로 자기동일적인 상태로 남아있지만 동시에 그것의 역사적 위치를 상실하며, 따라서 그것의 실제(truth)를 상실하게 된다.

 

거의 동시대적이게도,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예술 작품의 근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어떤 진열장에 넣거나 혹은 작품이 전시에 놓일 때 우리는 이를 ‘세운다(set up)’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 세우기(setting up)란 건물을 건립하거나(erect) 조각상을 세우거나(raise) 성축일 무대에 비극을 상연할(present) 때의 세우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note title=”2″back] Martin Heidegger, “The Origin of the Work of Art,” in Basic Writings (New York: HarperCollins, 2008), 169. 국내 번역본인 『예술 작품의 근원』의 해당 부분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흔히 작품이 수집관 속에 보관되어 있거나 전시장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작품이 진열되어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진열해서 세우는 것은 예컨대 건축 작품을 세우거나 입상을 세우거나 축제에 비극을 내세워 상연한다는 의미의 내세움(Aufstellung)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마르틴 하이데거, 오병남 민형원 역, 『예술 작품의 근원』(예전사, 1996), 9.(역자 주)[/note]” 여기에서 다시 한 번 하이데거 역시 한 예술작품이 특정한 역사적이고/거나 제의적 시공간에 기입되는 것과 그것이 단지 특정한 장소에 전시되어 탈착 가능하게 됨에 따라 맥락이 결여되는 것, 이 둘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후기 저술에서 하이데거는 세계 내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의 기술적이고 인공적인 속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주체는 세계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외재적인 위치를 보장받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위치란 근대 기술에 의해 인공적으로 구축된 것이다. 기술은 단일한 주체로서의 위치를 허락하고 세계를 하나의 객체로서, 하나의 이미지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틀짓기(framing) 혹은 게슈틸 (Gestell, 장치 apparatus)을 만들어낸다.[note title=”3″back]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its Technological Reproducibility,” in Illuminations (New York: Schoken Books, 1969), 257.[/note] 이 틀짓기는 우리의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며, 환경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유도한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기술하고 있듯 이 장치는 세계를 향한 우리의 시선을 친숙한, ‘자연적인’ 것으로 열어놓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숨겨진 채 남게 되는 것이다. 

 

스크린으로 유발되는 눈의 피로를 완화시키기 위한 안구 요가 설명서.
스크린으로 유발되는 눈의 피로를 완화시키기 위한 안구 요가 설명서.

 

나는 전시가 지역적 맥락을 낯선 것으로 만들고 이 맥락들의 게슈틸, 즉 그들의 틀짓기가 작동하는 방법을 드러낸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시는 단순히 순수한 보여주기의 한 행위가 아니라, 보여주기의 보여주기, 틀짓기 그 자체의 전략에 대한 폭로로서 이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바꿔 말해 전시는 우리의 시선에 특정한 이미지를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의 기술을, 틀짓기의 구조와 그 장치 그리고 이 기술에 의해 조작되고 지향되고 결정되는 우리 시선의 방식(mode)을 시연한다. 우리가 한 전시를 방문할 때, 우리는 단순히 전시된 이미지들과 대상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관계를, 위계나 큐레이토리얼 선택 그리고 해당 전시를 생산한 전략 등등을 성찰하게 된다. 전시는 어떠한 대상을 전시하기에 앞서 전시 그 자체를 전시한다. 전시는 전시를 구성하는 기술과 스스로의 이데올로기를 전시한다. 사실 틀짓기란 기술과 이데올로기의 융합(amalgamation) 그 자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시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대면적 시선(the frontal gaze)과 내부적 시선(the gaze from within)이라 부르는 각기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시선에 대해 말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이미지를 볼 때, 그 이미지가 그려진 것이든 컴퓨터 스크린의 이미지이든 혹은 책 안의 한 페이지든 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대상의 모든 측면을 면밀히 살필 수 있게 해주는 대면적 시선을 사용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대상에 대한 관조(contemplation)[note title=”4″back] Contemplation은 사전 상의 의미로는 사색, 명상, 숙고, 응시 등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해당 부분에서 대상에 대한 혹은 그 내부로부터의 관찰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기반으로 서술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본문의 후반부에 재등장하는 해당 단어의 개념과의 연관성을 살펴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혹은 ‘미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일’을 동시에 지칭하는 ‘관조’로 번역하였다.(역자 주) [/note]의 과정을 잠시 중단한다면, 대면적 시선은 우리가 관조를 중지한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대면적 시선의 시각적 안정성과 정확성은 우리의 시각적 경험의 맥락을 무시함으로써만 성취된다. 우리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관조 속에 갇히고 흡수되어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된, 자기 망각적 상태에 놓이게 되는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새로운 장소를, 예컨대 새로운 도시나 나라를 방문할 때, 우리는 그저 특정한 대상이나 대상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주위를 둘러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특정한 위치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장소의 이미지가 우리 앞에 놓인다기 보다 오히려 우리가 그 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장소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장소의 미묘한 차이들을 모두 그러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내부적 시선은 언제나 하나의 파편적인 시선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이든 우리 앞에 놓인 것만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파노라마적(panoramic)이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특정 공간의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되지만, 이 지식을 전체적인 측면에서 시각화해낼 수는 없다. 나아가 그 시선은 시간적으로도 안정될 수 없기에 파편적이다. 만약 우리가 같은 장소를 나중에 다시 방문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우리 시선의 똑같은 궤적, 같은 역사를 복제해낼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장소를 방문할 때뿐만 아니라 친숙한 장소에서도 동일하다. 친숙한 장소 역시 언제나 내부에서 바라봐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시적이고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시각화할 수 있거나 복제 가능하지 않다. 전시 역시 언제나 내부로부터 바라봐지기에 동일하게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있어, 세계에 대한 우리 시각의 기술적 틀짓기, 즉 게슈틸에 대해 생각해보면 전시를 떠올리기보다는 인터넷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터넷 유저의 시선은 완전한 대면적 시선으로, 스크린에 집중되어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인터넷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즉 그것의 게슈틸은, 유저들에게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다. 인터넷은 유저들에게 세계를 틀지어 보여주지만 그 자체의 틀짓기는 드러내지 않는 셈이다. 이는 인터넷을 순환하는 전시와,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데이터가 가질 수 있는 한 가지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러한 전시의 한 형식은 인터넷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주제화(thematize)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터넷의 유포(distribution)와 제시(presentation) 방식의 숨겨진 메커니즘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선별(selection)의 규칙들을 드러내는 것은 이들을 노출시킴과 동시에 그것들이 의심받고 도전받게 만든다. 바꿔 말해 인터넷은 단순히 ‘비물질적’ 내용들(contents)의 총합이 아닌, 미디엄이자 물질적 형식으로서 살펴지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예술가들이 소위 콘텐츠 제공자(content providers)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서구 미술사에 있어서 하나의 상당한 변화라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서구 미술사 맥락에서 예술가에게 허락되었던 콘텐츠(내용이)란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그리스도교의 성인들과 여기에 더해 고대 그리스 신들,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때 콘텐츠 제공자란 교회이자 그것의 역사적 서사들이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목표는 특정한 내용 생산에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내용에 형태와 형식을 부여하고 이러한 보다 큰 내용-제공 행위들에 환영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이 인터넷에 제공하는 콘텐츠란 과연 무엇인가? 부분적으로 그것은 예술작품의 디지털적 재현이며, 이 예술작품이란 이미 예술시장 내를 순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예술가들이 인터넷에 특화된 예술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데에 그 가능성을 사용할 때이다. 이러한 경우 예술가들은 주류 미디어에 의해 포섭되지 않은 내용들을 기록한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 특이하거나 혹은 그와는 정반대로 너무 사소해서 표준적 저널리즘에 의해 기록되지 않는 것들이거나, 잊혀진 혹은 공공적으로 억압된 역사적 사건들의 도큐멘테이션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예술가 자신들에 의해 생산된 것들 – 행동, 퍼포먼스, 그들이 수행하고 기록해온 과정들 – 일 수 있으며 혹은 아예 허구일 수도 있는데, 다만 이 허구를 창조해내는 과정이 기록된 것이다. 이러한 전략들의 누적 효과는, 예술가들이 개인화된 내용과 주관적인 해석을 재현의 관습적인 접근방법에 결합해냈던 19세기 리얼리즘 전략들의 누적효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페인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Elias Garcia Martinez)의  (1930)가 엉터리로 복원된 것을 조롱하는 밈(meme).
스페인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Elias Garcia Martinez)의 <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1930)가 엉터리로 복원된 것을 조롱하는 밈(meme).

 

이는 다시 말해, 인터넷 상의 예술가들이 인터넷에 의해 미리 규정(prescribed)된 생산 유포 수단들을 정보를 퍼뜨리는 데에 일반적으로 이용되었던 프로토콜과 호환시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과 같은 20세기 형식주의 미학자들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예술적 전용이 정보의 유예 혹은 심지어 그 폐지까지를 상정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예술의 맥락에서 내용이 형식에 의해 완전히 흡수됨을 뜻한다. 하지만 인터넷 안에서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형식이 동일하게 남는다. 그러므로 내용은 이러한 흡수에 대해 면역력을 가질 수 있다. 기술적 차원에서 인터넷은 19세기에 우세했던 내용 제시의 관습들을 재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아방가드르 아티스트들은 이러한 관습들이 독단적이자 문화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데 저항하고자 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맥락 내에서 이러한 관습들에 대항하여 전복을 일으키려는 시도는 어떠한 의미도 없는데, 그것은 이러한 관습들이 인터넷의 기술 자체에 이미 기입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데이터가 오프라인 전시장에 옮겨지는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온라인에서 예술가들은 하나의 메타 서사를 구축하는 그림, 사진, 영상, 사운드 시퀀스와 텍스트들을 조합하는 것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전시공간에서 이들은 설치라는 형식으로 제시된다. 이미 개념주의 작가들은 언어 내에서 문장이 사용되는 것과 유사하게 설치 공간을 특정한 의미가 전달되는 것으로서 체계화한 바 있다. 형식주의가 우세했던 시기가 지난 이후, 1960년대 말 무렵 개념주의 예술은 예술적 행위를 다시 한 번 의미론적이고 커뮤니케이션적으로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예술은 이론적 주장을 제시하고 실증적 경험과 이론적인 지식을 소통하며, 윤리적이고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면서 이야기들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개념주의 예술의 출현과 발전에 있어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가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비트겐슈타인이나 프랑스 구조주의와 같은 개념들의 영향이 매우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의미와 커뮤니케이션을 향한 이러한 새로운 경향이 예술을 다소 비물질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그 물질성의 중요도를 떨어뜨리지 않았고, 미디엄이 메시지 속으로 용해된 것 또한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예술작품은 물질이며, 오직 물질만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예술 내에서 개념, 프로젝트, 아이디어와 정치적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어적 전회’를 말한 철학자들에 의해 열렸는데, 이는 정확히 말해 그들이 사유 자체의 물질적 성격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사유를 언어의 사용으로 이해했으며, 언어는 시각 기호와 음성 기호의 조합이므로 따라서 완전히 물질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등가성이 혹은 적어도 어떤 유사성이 말과 이미지 사이에, 말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 사이에, 언어의 문법과 시각 공간의 문법 사이에서 목격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인터넷 상에서의 예술을 보여주는 방식이 표준화된다면, 대신 전시장 내에서의 보여주는 방식은 비표준화 될 것이다. 이러한 비표준화의 이유는 명백하다. 전시의 공간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웹페이지나 웹사이트가 그러한 것과는 반대로 정형화되어(preformatted)있지 않다. 오늘날 화이트큐브는 모더니스트 작가들에게 공백의 페이지가 수행했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에게 공백의 캔버스가 수행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비어있는 화이트큐브는 전시 행위의 영점(zero point)이며, 따라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끊임없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는 큐레이터가 디지털적이거나 정보적 물질을 보여줄 전시장의 특정한 형태나 설치, 설정을 규정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서 형식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중심으로 떠오른다. 형식-부여(form-giving)의 결정권은 개별적 작품에서 그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의 구성으로 넘어간다. 바꿔 말해 형식-부여의 권한은 개별적 작품을 내용으로 사용하는 큐레이터들에게 이양되는데, 다만 이는 큐레이터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 내로만 한정되는 것이다.

 

물론 작가들은 형식-부여라는 그들의 전통적 기능을 되찾아올 수 있지만, 이는 이들이 본인 작업의 큐레이터로서 기능할 때에만 해당된다. 실제로 우리가 동시대 전시를 방문했을 때, 우리 기억 속에 남게 되는 유일한 것은 사실 전시장의 구성이며, 특히 그 구성이 독창적이고 특이하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개별 작품들이 재생산될 수 있다면, 전시 역시 쉽게 기록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리고 만약 전시에 대한 기록이 인터넷에 올라간다면, 그 순간 그 전시는 콘텐츠가 되고, 미술관 내의 형식-부여 작동에 대한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장과 인터넷 사이의 교환은 내용과 형식 사이의 교환이 된다. 전시는 인터넷 예술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이를 주제화시키고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 상의 예술을 큐레이팅 한 전시는 인터넷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유포를 규정하는 선별의 은폐된 매커니즘을 드러내기도 한다.

 

 

트위터 계정 @woreitbetter의 스크린샷. 블로그로 시작되었던 해당 트위터 계정은 형식적으로 유사한 작품들을 비교해놓고 있다.
트위터 계정 @woreitbetter의 스크린샷. 블로그로 시작되었던 해당 트위터 계정은 형식적으로 유사한 작품들을 비교해놓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인터넷에서의 정보 유포는, 그 선별을 조정하는 어떤 규칙도 없이, 규제받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누구든 카메라를 이용해 이미지를 생산하고 여기에 답변을 달고, 최소한의 검열이나 선별을 거쳐 이러한 결과물들을 유포할 수 있다. 따라서 혹자는 전통적인 예술 기관들과 그들의 선별 및 제시의 의례가 구시대적인 것이 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극단적으로 파편화되었다는 점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인터넷을 전 지구적(global)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 상의 모든 데이터가 전 지구적으로 접속 가능할지라도, 실제로 인터넷은 하나의 보편적인 공공 공간을 발현시킨다기보다는 공공성의 부족화(tribalization)를 이끈다. 그 원인은 매우 간단하다. 인터넷은 유저의 요청, 즉 유저의 클릭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유저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만을 찾을 뿐이다.

 

인터넷은 특정한 흥미와 요구에 대한 거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의 매체다. 그것은 우리가 보지 않고자 하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에서 대부분 우리는 흥미와 태도를,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미적인 것이든 간에, 공감하고 공유하는 이들과만 소통한다. 따라서 인터넷의 비결정적 성격이란 환상에 불과한 셈이다. 인터넷의 실제 작동 방식은 유저가 이미 알고 있거나 친숙한 것들만을 선택한다는 잘 보이지 않는 선멸의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몇몇 서치 엔진들이 인터넷 전체를 훑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것들은 언제나 특정한 목표를 가지며 개인 유저들이 아닌 거대 기업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쉽게 말해 인터넷은 우리가 그다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조차 지속적으로 보게 만드는, 도시 공간과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도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원하지 않는 이미지와 표현들은 무시하려고 애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은 종종 우리의 흥미를 유발하며, 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경험의 장을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큐레이토리얼 선별이 일종의 반-선별(anti-selection), 심지어는 비선별(transgressive selection)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큐레이토리얼 선별이라는 행위는 인터넷을,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 문화를 파편화하는 경계선들을 건널 때에만 유의미해진다. 그것은 모더니즘과 동시대 예술의 보편주의적인(universalist) 프로젝트들을 복권시킨다. 이러한 선별의 작업은 공공 공간을 파편화한다기보다는, 인터넷의 제각기 다른 파편들이 균질하게 재현되는, 재현의 보편화된(unified) 공간을 만듦으로써 오히려 파편화에 저항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공간의 창조는 모더니즘 예술 체계의 전통적인 역할이었다.

 

근대 전시의 역사는 19세기 무렵, 1851년 런던 수정궁에서 열렸던 만국 박람회를 필두로 시작되었다. 예술 맥락에서 파리의 루브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혹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같은 거대한 뮤지엄들과, 카셀 도큐멘타나 수많은 비엔날레 같은 전시들은 그들이 세계의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여전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각각의 물품들(items)은 원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인공적 맥락 내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원래대로라면 서로 마주할 일이 없었던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역사적으로 혹은 ‘실제 삶 속에서(in real life)’ 만나게 된다. 예컨데 이집트의 신들과 멕시코, 잉카의 신들은 각기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놓이고, 더 나아가 이들은 아방가르드의 실현화되지 못했던 유토피아적 이상과도 한데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의 제거와 새로운 배치는 우리 세계를 규제하는 교역과 법 그리고 질서의 형식들을, 또 그러한 질서들이 행사되는 불화, 전쟁, 혁명과 범죄들을 시연함으로써 – 경제적인 폭력 혹은 직접적인 군사적 제제와 같은 – 폭력의 사용을 불러들인다.

 

이러한 질서들은 ‘보이지’ 않지만, 전시의 구성과 그 구성이 작품을 틀 짓는 방식을 통해 보여지고 드러날 수 있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틀 바깥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있다. 전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 전시하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전시는 하나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사건(event)이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이 그것의 원본적, 지역적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고 해서 상실된다기보다는, 오히려 한 전시라는 사건 속에서, 그리고 그러므로 전시들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지금 여기’를 부여받고 재맥락화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전시는 복제될 수 없다. 물론 관찰하는 주체 앞에 위치해 있는 하나의 이미지나 대상을 복제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전시는 오히려 재연(reenacted)되거나 재상연(restaged)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시는 극적인(theatrical) 미장센과 더 유사하다. 하지만 물론 전시와 이 미장센 사이에는 하나의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전시의 관객들은 무대의 앞에 남아있는 게 아니라, 사건에 참여하기 위해 무대로 입장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국민 국가라는 체계 내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국가의 문화 안에는 보편주의적이고 초국가적인 프로젝트들을 체화하고 있는 기관들이 존재한다. 대학이나 대형 뮤지엄들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유럽의 뮤지엄들은 특정 국가의 미술사보다는, 보편주의적 미술사를 재현하려는 보편주의적 기관에 자신들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보편주의적 프로젝트가 19세기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이는 어느 지점까지는 엄연한 사실이다. 사용되기 보다는 오직 관찰되는 대상이라는, 교회와 귀족 계급이 예술작품에 적용하던 대상물에 대한 프랑스 혁명기의 변환에, 유럽의 미술관은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프랑스 혁명은, 삶의 최상위 목표로서의 신에 대한 관상(contemplation)[note title=”5″back] 해당 문장에서 Contemplation을 ‘관상’ 또는 ‘관조’로 번역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참고하였다. “관상의 개념은 그리스어 테오리아(θεωρία)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의 테오리아는 먼저 학문 차원에서 ‘봄’ 내지는 ‘살펴봄’ 등의 의미를 가지고 종교적 맥락에서 신적인 것에 대한 ‘관조’와 ‘묵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라틴어 문화관에 contemplatio(관상)으로 번역되어 수용된다 (…) 관상이란 바라봄을 통해 신을 아는 것(visio Dei)이다. (…) 관상은 ”신적인 것의 동시적인 지각, 신 외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확신, 신앙적인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김태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상이론”, 『중세철학』(중세철학회, 2015), 21권, 37-38.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중세기에서부터 근대기 이전까지의 미학적 관점의 추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임영방, 『중세미술과 도상』(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601-630.(역자 주)[/note]을 폐지하고 이 행위를 물질적 대상들 속의 ‘미’에 대한 세속적 관조라는 행위로 대체했다. 바꿔 말해,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혁명적인 폭력으로부터 만들어졌으며 근대적 형태의 우상파괴주의(iconoclasm)에서 시작되었다. 즉 이는 유럽의 미술관들이 비유럽권의 문화적 전통을 미학화 하고 펼쳐 보이기 이전에, 유럽의 전통을 미학적으로 확장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몽주의의 목표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세계 질서를 창조하는 데에, 즉 모든 특정 문화가 인식될 수 있는 보편적 국가를 창조하는 데에 있었다. 우리가 이러한 목표에 닿기란 여전히 요원하다. 우리 시대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 간의 불균형, 공공기관과 상업 행위들 간의 불균형으로 특징지워진다. 우리의 경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지만, 반면 정치는 지역적 차원에서 작동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 체계는 보편적이고 전 지구적인 예술과, 유토피아적 전 지구적인 국가의 문화를 제시한다고 주장하는 비엔날레와 도큐멘타, 그리고 다른 여러 전시들의 조직을 통해, 그러한 보편적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 상황에서, 하나의 전시는 유토피아적이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보편주의적 맥락을 구축함으로써만 유의미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