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번역 양지윤

Richard Wentworth installation for “The Kitchen Show.”, 1991
‘키친’을 위한 리처드 웬트워스(Richard Wentworth)의 설치작품, 1991

 

크로이츨링겐과 장크트갈렌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예술을 보고, 예술가를 만나고, 그들의 스튜디오와 갤러리,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유럽을 돌아다녔다. 내가 되고 싶은 미래 직업이 이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예술 시스템에서 내가 어떻게 예술가들에게 유용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본 모든 혁신적인 대형 미술관 전시와 거기에 얽힌 모든 네트워크, 즉 전체 유럽식 싱크 벨트를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가를 고민했다. 내가 가졌던 한 가지 신념은, 1987년 충돌 이후 1980년대 미술계의 거대주의는 지속 불가능해 보였고, 더 작은 일을 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의존은 시장 호황 주기의 마무리가 항상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비현실적이다. 나는 장크트갈렌 경제 생태 연구소장이었던 H. C. 빈스방거(H.C. Binswanger) 교수와 함께 정치 경제학을 공부했다. 빈스방거는 경제학과 연금술의 역사적 관계를 연구했는데, 이것은 처음에는 이국적으로 들릴 만큼 흥미로웠다. 그의 목표는 미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조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훗날 그가 출판한 『돈과 마술』이라는 책에 담겨 있다. 현대 경제의 핵심은 현대 경제가 무한하고 영원히 성장한다는 것이라고 빈스방거는 믿었다. 그는 이 과감한 개념이 어떻게 연금술의 중세적 담론, 즉 납을 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어린 시절 빈스방거는 파우스트 전설에 매료되었다. 그의 연구를 하는 동안 그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파우스트』에서 등장하는 지폐의 발명이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존 로(John Law)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존 로는 1716년 지폐를 발행하는 프랑스 은행을 최초로 설립했던 사람이다. 보다 분명하게, 로의 혁신 이후 올리언스 공작은 연금술사를 모두 해고했는데, 이는 납을 금으로 바꾸려는 모든 시도보다 지폐의 가용성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공작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돈과 마술』에서 빈스방거는 화폐, 연금술 그리고 현대 경제학의 기초가 되는 영원한 성장의 개념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추적한다.

 

빈스방거는 경제와 예술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했다. 예술은 상상력에 바탕을 두며 경제의 일부라고 지적한다. 은행이 돈을 만드는 과정은 상상력과 연결되어 있는데,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등가(等價)로 돈이 인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폐의 발명은 상상력, 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이끌어 내는 미래의 감각에 기초한다. 회사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상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 상품이 팔리면 초기에 만들어진 ‘상상’의 돈은 실제 상품에 대해 등가를 갖는다. 고전 경제학 이론에서, 이 과정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빈스방거는 이 끝없는 성장이 마법적 매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빈스방거는 그의 저서에서 성장의 절제가 세계적으로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연한 자본주의 성장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제시했다. 빈스방거는 나에게 경제학의 주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물 경제와 어떻게 다른지를 인지하라고 부추겼다. 그의 연구에서 엿보이는 지혜는 끝없는 성장이 인간적인 측면과 전 지구적인 측면 모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진작부터 인식했다는 것이지만, 시장 전체를 거부하는 대신 그 요구를 완화할 방법을 제안한다. 시장은 사라지거나 교체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 복종하기보다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조작되어야 할 도구로 이해할 수 있다.

 

빈스방거의 생각을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물질적인 재화와 자원의 부족이었고, 그래서 생산 방법에 있어 우리는 더욱 효율성을 추구하고, 문화에서 물질의 중요성을 기리는 의식을 만들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인간은 탐욕적인 산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재화의 부족보다는 과잉이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세상에서 산다. 그러나 경제의 성장은 매년 더 많은 것을 생산하도록 자극한다. 결국 우리는 과잉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문화 실천들을 필요로 하게 되며, 우리의 의식은 다시 물질적인 것보다는 비물질적인 것, 양보다는 질을 향하게 된다. 아마도 이는 물건을 생산하는 것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선택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게 된 이유일 것이다.

 

빈스방거의 강의를 듣는 동안, 내가 만들 수 있는 전시의 종류를 생각했다. 스위스의 전시 두 개가 내 머리에 떠올랐다. 1974년,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베른의 아파트에서 미용사였던 할아버지에 대한 작은 전시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1986년 벨기에에서 큐레이터 얀 호엣(Jan Hoet)이 매우 사적이고 비제도적 환경에서 주최한 〈친구들의 방〉이라 부르는 전시였다. 그는 50명 이상의 예술가들에게 각자 헨트 주변에 있는 개인 아파트와 집을 위한 작업을 제작하도록 의뢰했다. 그것은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자, 관람객들이 도시를 투어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피슐리와 바이스(Fischli and Weiss)나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 모두 내가 너무 어렵게 접근하는 것 같다며, 해결책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이야기 「도둑맞은 편지」와 함께 내 아파트에 있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리는 함께 생각했고, 해답이 떠올랐다. 내 키친.

 

그것은 현실적인 해답이었다. 나에게 갤러리나 미술관 전시 공간으로의 접근권은 물론 없었으니까. 대신 나는 장크트갈렌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빌렸다. 나는 절대 요리를 하지 않는다. 늘 밖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차나 커피조차 만들지 않았다. 키친은 내가 책과 종이를 쌓아 두는 또 다른 공간일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피슐리와 바이스, 크리스티앙 볼탄스키가 간파한 특징이었다. 내 키친의 비활용성은 예술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거기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예술과 삶이 잘 섞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생각은 매우 빠르게 구체화되었다. 전시의 콘셉트가 간결하고 나와 맞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즉각 반응했다. 피슐리와 바이스는 내 비(非) 키친을 기능적인 키친으로 개조하면 좋겠다고 하며, 전시가 실제 현실이 될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한편, 볼탄스키는 부엌에 숨겨진 전시라는 콘셉트를 마음에 들어 했다. 1980년대 후반은 예술의 가시적 특성이 대두되던 시기였지만, 그는 좀 더 내밀한 것에 끌렸다.

 

나는 두 가지 아이디어 모두를 받아들였다. 볼탄스키는 숨어 있는 전시를 만들었다. 그는 싱크대 아래 캐비닛 문 사이의 수직 균열을 통해서만 보이는 촛불의 프로젝션을 설치했다. 초는 보통 쓰레기나 청소 용품을 찾을 수 있는 공간에 놓인 작은 기적과도 같았다. 싱크대 위에는 커다란 찬장이 놓여 있었고, 여기에 피슐리와 바이스는 식당 공급품 가게에서 파는 지나치게 크고 상업적으로 포장된 음식, 즉 5킬로그램짜리 국수 한 봉지, 케첩 5리터, 통조림 야채, 거대한 소스 병과 조미료 병 등을 사용하여 일상의 제단을 설치했다. 모든 것이 거대했다. 설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느낌이었다. 어른에게 아이의 시각을 부여하여 미스터리를 자아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지나치게 거대한 설치물을 들고 있는 자신을 갑작스레 발견하게 되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열어 본 유일한 물건은 초콜릿 푸딩이었다. 나머지 조각들은 레디메이드로서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에게 되돌아갔는데, 그들은 이를 자신의 지하실에 썩을 때까지 보관해 두었다. 

 

한스페터 펠트만(Hans-Peter Feldmann)은 나의 냉장고에서 전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는 냉장고 문에 있는 계란 선반에 놓아둔 어두운 대리석 달걀 6개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그 위에 작은 깃털이 달린 판자를 올리고, 가장 활용도가 낮은 냉장고 속으로 어떻게든 놓이게 된 몇 개의 항아리와 깡통 사이에 매력적인 시각적 운율을 만들었다. 프레데리크 브륄리 부아브레(Frédéric Bruly Bouabré)는 장미, 커피 한 잔 그리고 생선 한 조각이 있는 키친 드로잉을 그렸다. 리처드 웬트워스는 음식 통조림 위에 네모난 거울 접시를 놓았다. 아무도 화려한 개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키친의 기능을 보존하면서, 미묘하게 덧칠을 해 나갔다.

 

키친의 많은 특징은 오늘날까지 큐레이터로서의 내 작업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은 내 전시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공유했다. 리처드 웬트워스는 이 키친 전시에 〈월드 수프〉라고 이름을 붙인 반면, 피슐리와 바이스는 전시 사진을 찍었다. 둘째로, 나는 사람들의 집에서 전시를 계속 큐레이팅했는데, 이는 다른 관점과 특별한 친밀감을 가져다준다. 다른 예를 들자면, 나는 1999년 신고전주의 건축가인 존 소온 경(Sir John Soane)의 집에서 전시를 만들었다.

 

보통의 미술관이나 기념관은 오직 한 예술가, 건축가 또는 작가의 사후에 헌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이 원래 작업하거나 생활하던 상황을 보존하거나 인위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예술가 생전에 미술관을 종합 예술로서 구상하고 보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존 소온 경의 박물관이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온이 죽기 4년 전인 1833년, 그는 그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고 그의 사후에 그 보존을 보장하기 위해 의회 제정법을 협상했다. 그 집은 복도, 창문, 옷걸이, 대좌, 거울 그리고 무수한 물건들이 복잡하게 부착되어 있고, 모든 코너마다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소온의 소유물은 네 가지 주요한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골동품 조각, 카날레토(Antonio Canaletto)에서 호가스(William Hogarth)와 터너(William Turner)까지 회화 작품들(피라네시 Giovanni Battista Piranesi의 것과 같은), 건축 도면, 그리고 건축 모형과 드로잉의 형태로 있는 소온 자신의 작품.

 

예술가인 세리스 윈 에번스(Cerith Wyn Evans)는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관계들, 존 소온 경의 박물관에 있는 작은 틈, 다양한 내러티브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화들, 다양한 물건들과 우연히 마주하는 비범한 상황들로부터 나는 항상 큰 자극과 영감을 받았고,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곳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자극적인 곳이며, 방문할 때마다 다른 자극을 받았다.” 이후 전시에 대한 생각이 구체화되었고, 그로부터 2년 간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마거릿 리처드슨(Margaret Richardson)과의 대화를 통해 확정되었다.

 

존 소온 경의 박물관은 정기적인 개관 시간이 있고 연간 약 9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는데, 주로 입소문으로 그 명성을 얻었다. 세리스 윈 에번스는 소온 박물관이 철통 같은 경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를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공공연한 비밀의 장소라는 역설에 끌렸다. 그는 계단에서 보이지 않는 개입을 했다. 종소리를 미묘하게 바꾼 작업은 기존의 문맥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갔다. 스티브 맥퀸(Steve McQuee)은 두 번째 볼 때에만 작업을 발견할 수 있는 사운드 몽타주를 만들었다.

 

전시의 다양한 요소들을 전체로 통합하기 위해, 각각의 예술가들은 더 큰 그림을 만들어 갔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은 포스터를 디자인했고, 각 예술가들은 박물관에서 판매되는 엽서를 만들었다. 전시에 소개된 작업들에는 소온이 컬렉션을 전시하는 방식에 따라 라벨이 아닌 번호를 붙였다. 방문객들은 세리스 윈 에번스가 고안한, 크리스토퍼 H. 우드워드(Christopher H. Woodward)의 계획이 담긴 접이식 리플릿을 받았다. 교육용 패널이나 사운드 가이드는 없었고, 방문객들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예술 작업과 마주하면서 가고자 하는 곳으로 방을 통해 이동했다. 세드릭 프라이스(Cedric Price)는 이 전시를 위한 상징을 만들고, 〈시간과 음식〉이라고 이름 붙은 오래된 키친에서 강연을 했으며,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은 이 전시의 제목을 〈당신의 단계를 되짚어 보라. 내일을 기억하라〉로 지었다. 〈월드 수프〉의 작업처럼, 〈당신의 단계를 되짚어라〉의 작업은 유머 감각을 지녔고, 두 전시는 모두 자기 조직적이었다. 마스터 콘셉트나 계획으로 시작하는 대신, 전시는 유기적으로 성장했다. 전시는 기존의 개념에 맞게 작업을 정리하기보다는 큐레이터와 예술가 사이의 대화처럼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존 소온 경 박물관에서 세리스 윈 에번스와의 경험은 하우스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시리즈들로 이어졌다. 다음은 멕시코시티의 건축가 루이 바라건(Luis Barragán)의 집인 카사 바라간에서 페드로 레예스(Pedro Reyes)와 함께했다. 그 후 이사벨라 모라(Isabela Mora)가 만든 그라나다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의 집에서 전시를 연 다음, 이사벨라 모라가 만든 브라질 상파울루의 리나 보바디(Lina Bo Bardi) 집에서 또 다른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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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에서 출판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터 되기』의 한 챕터이며, 출판사와 번역자의 동의를 받아 재게재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