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미디어: 미디어 고고학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굴곡하는 회로
번역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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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가잘라, 〈인칸토 an Incantor〉, 변형된 혹은 “회로 굴곡된” 말하기 & 읽기, 2002, 1978년 처음 계발 됨. (© 리드 가잘라)

 

매년 미국에서는 대략 400만 개에 이르는 가전제품이 폐기된다. 구식 휴대 전화, 컴퓨터, 모니터, 텔레비전 등의 전자기기 폐기물은 미국 사회 폐기물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가장 유독한(toxic) 부분이다. 빠른 전문 기술적(technological)[note title=”1″back] Technical은 구체적인 기계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며 작동이 가능한 기술의 실체를, Technological은 전문화되고 복합적인, 비물질적 지식으로 시스템에 가까운 것을 가리킨다. 과학 외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두 단어를 모두 기술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문에서는 둘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technology는 ‘전문 기술’로, technical은 ‘기술’로 번역하였다. 예외적으로 ‘information technology’는 한 단어임을 고려하여 정보 전문 기술이 아니라 정보 기술로 번역하였다.(역자 주)[/note] 변화와 낮은 착수금, 그리고 계획적 쇠퇴(planned obsolescence)의 결과로, 미국에서는 매년 작동 가능한 250만 개가량의 컴퓨터, 텔레비전, VCR과 휴대 전화가 버려진다[note title=”2″back] 환경 보호 에이전시(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팩트 시트: 미국의 전기 제품 폐기 관리국(Management of Electronic Waste in the United States), 2008년 7월, EPA 530-F-08-014.[/note]. 연방환경보호국(The federal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은 가전제품 폐기물의 삼분의 이가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조나단 스테른(Jonathan Sterne)이 예민하게, 또 직설적으로 지적했듯 디지털 문화는 네트워크 와이어, 선, 라우터, 스위치처럼 “버려질” 물질적인 것들의 끝없는 더미(heap)에서 형성된다[note title=”3″back] Jonathan Sterne, “Out with the Trash: On the Future of New Media.” In: Residual Media, edited by Charles R. Aclan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7), 17.[/note]. 전문 기술 부품의 폐기와 쇠퇴는 사실상 동시대 미디어 전문 기술로의 통합에 필수적이며, 이는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 스테른의 주장처럼 뉴 미디어의 논리는 올드 미디어가 뉴 미디어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디지털 문화의 기획이 짧은 주기로 도래하는 쇠퇴라는 가정과 기대를 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평선에는 항상 더 좋은 노트북과 휴대 전화가 존재한다. 뉴 미디어는 항상 오래된 것이 되기 마련이다.

 

이 텍스트는 계획적 쇠퇴, 미디어 문화 그리고 미디어 객체(object)의 시간성을 연구한다. 우리는 미디어 고고학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이다. 미디어 고고학은 오래되고 죽은 미디어 장치(dead media devices)에 집중하는 미디어 이론의 한 갈래이다. 이 작업에서 우리는 미디어 고고학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확장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따라서 우리는 에리키 후타모(Erkki Huhtamo)[note title=”4″back] Erkki Huhtamo, “Thinkering with Media: On the Art of Paul DeMarinis,” in Paul DeMarinis/Buried in Noise, ed. Beirer, Himmelsbach and Seiffarth (Berlin: Kehrer, 2010), 33-46.[/note] 같은 이론가나 전문 기술로서의 미디어가 지닌 복잡한 물질성에 대한 생각을 추동하는 그 외의 이론가들을 따를 것이며, 여기에는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부터 볼프강 에른스트(Wolfgang Ernst), 션 큐빗(Sean Cubitt) 등이 포함된다. 미디어 고고학은 동시대 전문 기술적 오디오 비주얼 문화를 대안적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거의 억제되고 잊힌 미디어 전문 기술을 출토하는 혁신적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디어 고고학을 DIY 문화, 회로 굴곡(circuit bending), 하드웨어 해킹, 그리고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정치 경제와 관련된 다른 실천들과 가까운 예술적 방법으로 확장한다. 미디어는 미디어가 지닌 다양한 레이어 안에서 기억에 형태를 부여한다. 이 기억은 인간의 기억뿐 아니라 사물(thing), 오브제, 화학, 그리고 회로의 기억 또한 포함한다.

 

 

계획적 쇠퇴

계획적 쇠퇴라는 개념은 1932년 버나드 런던(Bernard London)이 대공황의 해결책으로 처음 제안하였다. 런던은 구입한 장치를 오랜 기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경기 침체를 연장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모든 생산품에 만기일이 표기되어야 하고 정해진 수명이 지난 생산품에 정부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의 토대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해당 사물이 생산될 때 결정된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도 오래된 옷, 자동차, 건물을 계속 소유하고 사용할 경우 법적으로 죽은 것을 사용하는 데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note title=”5″back] Bernard London, “Ending the Depression through Planned Obsolescence” (pamphlet), 1932. Reproduced by Adbusters magazine, “How Consumer Society Is Made to Break,” available online at www. adbusters.org/category/tags/obsolescence (last modified 20 October 2008)[/note].”

 

런던의 제안이 정부 계획으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쇠퇴를 계획하는 일은 상품 디자인이나 광고 산업에 적용되었다. 인위적으로 소비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 오래된 옷을 유행이 지난 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패션처럼 –  쇠퇴 속도를 증가시키고 구매 필요를 자극한다. 브룩스 스티븐스(Brooks Stevens) 같은 산업 디자이너들은 1954년에 “필요에 의한 것보다는 조금 더 새로운,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앞지르는 것(a little sooner)을 소유하려는 욕망[note title=”6″back] Brooks Stevens, lecture at Midland, Minneapolis, in 1954; audio recording available at www.mam.org/collection/archives/brooks/biography.asp[/note]”을 천천히 주입함으로써 계획적 쇠퇴의 역학을 대중화했다. 빅토르 르보우(Victor Levow) 같은 소매 전문가들은 1955년 다음과 같은 임무를 조금 더 명확하게 했다.

 

“이 상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반드시 제공되어야만 하며, 이것은 매우 긴급한 일이다. 우리는 ‘최대치(forced draft)’의 소비뿐 아니라 ‘비싼’ 소비 또한 요구한다. 우리는 가장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전소되고, 닳아 해지고, 대체되고, 버려진 것들이 필요하다[note title=”7″back] Victor Lebow, “Price Competition in 1955,” The New York University Journal of Retailing, Volume XXXI, Number 1, Spring 1955, p. 7.[/note].”

 

동시대 소비재에 있어 계획적 쇠퇴는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나 담론일 뿐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는 디자인의 미시정치적 단계에서 발생한다. 개인용 MP3 플레이어에 내장되어 대체가 어려운 배터리나 한정된 기간에만 생산되어 고객 지원 서비스가 종료된 특허 케이블과 충전기, 접착제로만 붙여져서 열리면 바로 망가지는 플라스틱 케이스(enclosure) 등[note title=”8″back]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팟과 같은 개인 오디오 플레이어나 그와 비슷한 장치들은 배터리를 포함해 그 내보에 사용자가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없도록 생산된다. 사용한 지 약 3년이 지나면 리튬-폴리머(lithium-polymer) 배터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장치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필요로 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note]. 다르게 말하자면, 전문 기술적 객체는 ‘블랙박스’로 디자인된다. 그것들은 애초에 고칠 수 없도록, 내부에 사용자가 직접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없도록 설계된다.

 

 

동시대 미술에서 쇠퇴의 용도 변경

계획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표준 수명이 끝난 가전제품의 탐사하기(probing), 탐색하기, 조작하기(manipulating)는 동시대 예술 실천의 주요 전략 중 하나이다. 1912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작업의 발견된 신문들(found newspapers)부터 1913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나 1917년 그가 가치를 전도시킨 베드퍼드셔(Bedfordshire)의 소변기 〈샘 Fountain〉까지, 소비재의 재사용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예술 실천 방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디어 아트의 역사적 글쓰기가 이러한 실천들을 광범위하게 증언하기 때문에[note title=”9″back] Diane Waldman, Collage, Assemblage, and the Found Object (New York: Harry N. Abrams, Inc. 1992) 17. Calvin Tomkins, Duchamp: A Biography, (New York: Holt, 1998), 181. 초기 아방가르드에 관한 미디어 아트의 역사적 서술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Erkki Huhtamo, “Twin-Touch-Test-Redux: Media Archaeological Approach to Art, Interactivity, and Tactility” in Mediaarthistories, edited by Oliver Grau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7), 71-101; and Dieter Daniels, “Duchamp: Interface: Turing: A Hypothetical Encounter between the Bachelor Machine and the Universal Machine” in Mediaarthistories, pp. 103-136.[/note] 우리는 이 글에서 다른 양상에 집중할 것이다.

 

상품의 대량 생산은 1910년대 브라크와 피카소,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 이래 한 세기 동안 상당히 바뀌어 왔다. 미국 사회 안에서 상당한 ‘레디메이드 상품 부분이 전자 제품이 된 이래 예술가들은 전자 제품, 컴퓨터, 텔레비전, 가정 도구(gadget)로 작업하고 그것들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해 왔다. 가전제품을 예술적 용도로 변경한 초기 예술가 중 한 명인 백남준은 1963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추상과 미니멀리즘 형태를 보여 주기 위해 텔레비전을 재배선했다(rewired).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뉴 미디어 형태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어떤 예술가들은 아상블라주, 브리콜라주, 콜라주나 레디메이드의 맥락에서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데에 접근해 왔다. 사용 가능한 원자재의 일상적 예비물로, 혹은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비축품(bestand)으로 말이다[note title=”10″back] David Joselit, American Art since 1945 (New York: Thames & Hudson 2003), 126. Edward A. Shanken, Art and Electronic Media (London and New York: Phaidon, 2009).[/note]. 이 접근법은 첨단(cutting-edge) 전문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탐색하기 위해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대신 일상의 전문 기술, 쇠퇴한 ‘구식(trailing edge)’ 전문 기술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회로 굴곡하기: 더 인칸토〉

1950년대 신시나티(Cincinnati) 출신의 미국인 예술가 리드 가잘라(Reed Ghazala)는 ‘회로 굴곡(circuit bending)’이라고 불리는 개발의 구심에 있다. ‘회로 굴곡’이란 기본적으로 새로운 사운드나 시각적 결과물을 발생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가전제품을 창의적 방식으로 합선(short-circuiting)하는 것이다[note title=”11″back] Q. Reed Ghazala, “The Folk Music of Chance Electronics, Circuit-Bending the Modern Coconut,” Leonardo Music Journal 14 (2004) pp. 96-104.[/note]. 이 기술(technique)은 배터리로 작동하는 어린이 장난감이나 값싼 신시사이저 같은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s)를 사용하며 그것들을 DIY 악기와 홈메이드 저주파 신호 발생기로 변형한다.

 

비슷하게, 회로 굴곡의 가장 쉬운 예시인 가잘라의 〈인칸토 The Incantor〉 시리즈 장치들은 어린이용 말하기&철자법, 말하기&읽기, 말하기&계산하기 장난감들을 고도로 사용자화(customize)한 것으로, 그는 1978년부터 이러한 장치들을 만들어 왔다. 장난감 ‘굴곡(bending)’의 방법론은 전자 장치 분해나 부품 추가와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부품의 예시로는 사용자가 회로를 대체 및 전환 가능하게 하는 스위치, 놉(knob), 감지기 등이 있다. 가잘라의 〈인칸토〉 장치들은 장난감 안에 합성된 인간 음성 회로망을 완전히 재구성하여 더듬거림, 반복, 비명, 울림 같은 시끄러운 글리치 사운드를 뱉어내게 만든다.

 

회로 굴곡의 절차는 보통 중고 가게나 창고 세일에 가는 것을 수반하는데, 이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값싼 장치를 얻기 위해서이거나, 장치의 뒷커버를 열어보기 위해서, 혹은 작동 구조의 회로판 탐사를 위해서다. 수선공(tinkerer)은 회로판 위의 어떤 두 점을 연결하기 위해 ‘점퍼(jumper)’ 선을 사용해 일시적 합선을 일으키고 장치의 배선을 교체한다. 이 과정 중에 배터리 기반 작동 장치에는 전원이 들어오며 개인은 탐사의 결과로 만들어진 비일상적 사운드 효과를 듣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연결점들이 변형의 표시라는 점이다. 이 연결점 사이에 스위치나 버튼, 다른 장치들을 삽입해 효과를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뉴 미디어의 회로 굴곡

회로 굴곡은 개인이 정식 훈련이나 허가 없이 행하는 전자 DIY 운동으로, 회로 조작과 전문 기술의 고유한 기능을 바꾸는 데에 초점을 둔다. 가전제품의 조작자는 봉인된 하부로 진입하는 재미를 위해 주로 전문 기술적 시스템 내부의 감춰진 부분을 드나들면서 공식적인 전문성이나, 매뉴얼, 정해진 목적 없이 장치를 역설계하고 분해한다. 이러한 접근은 20세기 초의 와이어리스, 라디오 문화, 2차 대전 후 전자 문화(특히 1970년대 이후 전자 아마추어리즘)와 당시의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note title=”12″back]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비공식 그룹으로 컴퓨터 부품과 회로, 장치들을 취미로 제작하고 조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스티브 잡스나 스티브 워즈니악, 밥 마쉬, 조지 모로우 등이 이 클럽의 회원이었다.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개념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홈브루_컴퓨터_클럽)(역자 주)[/note] 같은 조직에서 전형화되었던 취미주의, DIY-수선(tinkering)의 특징이다[note title=”13″back] John Markoff, What the Dormouse Said: How the Sixties Counterculture Shaped the Personal Computer Industry (New York: Penguin, 2005). Susan Douglas, Inventing American Broadcasting, 1899-1922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9).[/note]. 개념적으로 이러한 기술의 역사는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가 개략했던 방식의 유목적, 비주류적 실천들과 관련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후타모가 주지했듯 이 역사는 폴 드마리니스(Paul DeMarinis) 같은 예술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난 것처럼 미디어 고고학적 예술 작업의 방법론인 수선하기로 연결될 수도 있다[note title=”14″back] 각주 [4]에 후타모의 글을 참조하라. 여기서 수선공에 관한 개념은 노마디즘이라는 더 긴 문화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음 글을 참조하라. Mary Burke, ‘Tinkers’: Synge and the Cultural History of the Irish Travel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9).[/note]. 세르토(Certeau)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작동 방식(ways of operating)’은 사용자들이 사회문화적 생산 기술로 조직된 공간을 재전유하는 방법을 취하는 무수한 실천을 구성한다[note title=”15″back] Michel de Certeau,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translated by Steven Rendall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xiv.[/note].” 장치 내부 작동의 설계가 전문가 영역으로 의도되었을 때에도 회로 굴곡은 사용자들이 소비재를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전유하고, 사용자화하고, 조작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작동 방식이다. 가잘라의 〈인칸토〉는 우리에게 계획적 쇠퇴, 전문 기술의 블랙박스화, 일상 소비재의 내부 접근 불가능성을 포함한 동시대의 사회기술적 이슈를 상기시키는 도구로 유용하다.

 

작동하기의 한 방법인 회로 굴곡은 ‘뉴 미디어’라는 단어와 쉽게 어울리지 않는 디지털 문화의 한 양상이다. 회로 굴곡의 사용자화된, 폐물의, 소박한 방법론은 재사용의 역사적 실천을 재소환하고, 화려한 하이테크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note title=”16″back] 1995년에 리처드 바브룩(Richard Barbrook)과 앤디 캐머론(Andy Cameron)은 동명의 에세이에서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 에세이는 지리학 너머에 존재하는, 해방적이고 제한이 없는 정보 기술과 함께 무장소(placeless)적이고 보편화된(universalizing) 유토피아로서의 인터넷 개념의 계보학을 제공한다. www.hrc.wmin.ac.uk/theory-californianideology- main.html[/note]의 언어로만 디지털 문화를 상상하는 것에 대항할 유용한 반격 포인트로 여겨진다. 우리는 가잘라의 탐색과 미디어 고고학 사이 유사점을 포착하고 예술적 방법론으로서의 미디어 고고학을 더 강력하게 주장하고자 한다. 여기서 미디어 고고학은 과거의 미디어를 다루는 예술적 방법론일 뿐 아니라 죽은 미디어, 혹은 우리가 좀비 미디어(zombie media)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에 관한 더 많은 질문들로 확장된다. 좀비 미디어란 미디어 역사[note title=”17″back] Cf. Charles R. Acland, “Introduction. Residual Media.” In: Residual Media, edited by Charles R. Aclan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7), xx.[/note]와 분해된 폐기물의 산 주검들(the living dead)이다. 이 주검들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동시에 유독성 화학 물질과 중금속에서 기인하는 자연의 실제 죽음, 즉 아주 실제적인 의미의 죽음을 시사한다. 짧게 말하자면, 굴곡되는 것은 선형적 역사의 거짓된 이미지뿐 아니라 동시대 미디어 풍경을 형성하는 회로와 아카이브다. 우리에게 ‘미디어’란 구체적인 인공물과 디자인 솔루션, 그리고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 절차에 이르는 다양한 전문 기술적 층을 통해 접근되는 것이며, 각각은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시간과 기억의 순환에 참여한다. 푸코적 의미에서 미디어는 지식의 조건뿐만 아니라 인식과 감각, 기억과 시간의 조건으로서 그 자체로 아카이브다. 달리 말하자면, 이 아카이브는 기록물의 체계적 보관을 위한 장소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지식의 조건이다. 이 글은 하드웨어가 미디어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유일한 측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드웨어를 특히 강조한다.

 

 

회로망 굴곡하기로서의 미디어 고고학

소비 자본주의의 정치경제 또한 미디어 고고학적 문제다. 미디어 고고학은 그동안 잊힌 아이디어, 비일상적 기계의 방법론으로 그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성공적이었으며, 주류 전문 기술적 자극과 과대광고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요소를 찾으려는 욕망과 담론을 재부상시키는 데에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정치경제나 생태학과 연결하는 데에도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카이브 개념은 미디어 고고학적 방법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면서 역사의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 시간성을 재분배하는 동시대의 전문 기술적 회로로 점점 더 재고되고 있다. 이는 볼프강 에른스트(Wolfgang Ernst)가 이론가와 예술가에게 미디어 고고학을 재고해 보도록 요청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미디어 고고학을 과거의 발굴일 뿐 아니라 전문 기술의 컴퓨터화된 회로에서 발생하는 미시시간적 변조(microtemporal modulation)에 대한 집중적 시선으로 바라본다[note title=”18″back] Wolfgang Ernst, “Let There Be Irony: Cultural History and Media Archaeology in Parallel Lines.” Art History, Vol. 28, No. 5, November 2005, 582-603.[/note]. 전문 기술적 시간성을 바라보는 이러한 대안적 관점은 역사가의 해석학적 기록물(document) 독해라기보다 회로와 도식(diagram)의 공학기술(engineering)에 더 가깝다. 전문 기술적 시간성에 의해, 우리는 어떻게 전문 기술이 시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작동하는 고유한 시간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푸코를 직접 인용하는 에른스트에게 미디어 고고학은 내러티브(narrative)이기보다 기념적인 것(the monumental)이다.[note title=”19″back] 파리카는 다른 글에서 에른스트의 작업이 “미디어 역사의 이용과 재매개를 역사적 내러티브 대신 물질적 기념비로서 새롭게 들여다보는 방식(a fresh way of looking into the use and remediation of media history as a material monument instead of a historical narrative)”이라고 설명하는데, 위의 문장은 이러한 설명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Operative Media Archaeology: Wolfgang Ernst’s Marterial Media Diagrammatics,” Theory, Culture & Society, 28 (5), 2011, 52-74.(역자 주)[/note]. 미디어 고고학은 미디어의 내용이 아니라 표현을 위한 실제의 전문 기술적 조건들을 다룬다. 그러므로 에른스트는 (이를 테면 후타모나 지그프리트 질린스키 Siegfried Zielinski의 맥락에서의) 대안적 미디어 역사들이나, 미디어 전문 기술의 주류 담론에 도전하는 상상적 미디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note title=”20″back] 다음 글을 참조할 것. Eric Kluitenberg, ed. The Book of Imaginary Media (Rotterdam: Nai Publishers, 2006).[/note]. 그의 관심은 아주 구체적인, 그것을 통해 우리가 동시대 전자 문화와 디지털 문화가 가지는 시간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들에 있다. 에른스트에게 미디어 고고학은 실제로 작동 가능한 미디어 아상블라주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사례는 미디어 고고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드마리니스나 게브하르드 센그뮐러(Gebhard Sengmüller), 더 최근의 움직임으로는 동시대 미디어의 소리 고고학(sonic archaeology)에 관심 있는 알고리드믹스 인스티튜트(Institute for Algorhythmics) 같은 젊은 예술가들의 사례이기도 하다.

 

회로는 IT에 의해 조직된 우리의 조건과 모더니티를 규정한다. 라디오, 컴퓨터, 텔러비전 안의 회로는 회로망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플라스틱 케이스 내부로부터 개봉할 수 있는 회로들도 케이블, 선, 전기 라디에이션, 무선 전송의 차원에서 더 넓고 더 추상적인 회로로 이어질 뿐이다. 대기(the air) 중에는 ‘실체에서 분리된(disembodied)’ 정보 기술의 파동이 가득하고 문화에는 정치 경제 회로가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회로의 미디어 고고학을 쓰는 일은 중요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재활용과 재매개(remediation)[note title=”21″back] Cf. Jay David Bolter and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99).[/note]를 예술적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더욱 구체적이고 설계된 버전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과거가 아닌 회로야말로 미디어 고고학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러나 전문 기술의 실질적 개방을 목표로 하는 작업에는 특별한 과제가 남아있다. 가전제품과 정보 기술의 내부 작동은 점점 더 밀봉되고 있는데, 이는 더 새로운 세대의 전문 기술이 개발되면서 나타난 결과로 전문 기술 문화에서 최근 몇 십 년간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미디어 역사로 돌아가는 대신 장치의 내부로 들어갈 때 소비자 객체(consumer object)의 미디어 고고학은 어떤 형태로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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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블랙박스화된 시스템은 시스템 내부 기능에 관해 사용자가 알지 못해도 입출력을 처리한다. (© 가넷 허츠)

 

일단 개발되어 광범위하게 배포되기만 한다면, 기술적 부품들은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전자 장난감, 전화를 거는 전화기, 요청이 있을 때 서류를 인쇄하는 컴퓨터 인쇄기와 같이 사용자들에게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사물로 이해된다. 그 사물을 사용하는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신비한 블랙박스 같은 장치의 회로망이나 내부 작동은 사용자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특정 입력에 특정 출력을 내어놓는 사물일 뿐이며, 그것의 메커니즘은 보이지 않는다(그림. 1).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전문 기술은 단일하고 결절화된(punctualized) 사물로서, 보이지 않으면서 사용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작하려는 의도 하에 만들어진다.

 

결절화(Punctualization)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note title=”22″back] Cf. Jay David Bolter and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99).[/note]을 참조하는데, 이 이론은 단일 객체로 취급될 수 있는 단일 복합 시스템(single complex system)으로 각 부품들의 합체를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 이 단일 객체들의 분해를 “비결절화(depunctualization)”라고 일컫는데, 이는 하부 구조(infrastructure)와 부속물들(dependecies)의 회로를 보여 주는 실천이다[note title=”23″back]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Bruno Latour, Pandora’s Hope: Essays on the Reality of Science Studie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Eugene Thacker, “Introduction” to Alex Galloway, Protocol: How Control Exists after Decentralization (Cambridge, MA: MIT Press, 2004), xiii도 참조하라.[/note].

 

기술적 객체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블랙 박스화, 즉 단순 사용에 초점을 두는 전문 기술적 객체(technological object)의 개발은 하부 구조와 전문 기술 개발의 필요조건이다. 가령 컴퓨터 시스템은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 회로, 수학적 계산 및 기술적 부품의 측면에서 보자면 거의 불가해하다. 블랙박스는 새로운 전문 기술과 하부 구조가 구축되는 결절화된 빌딩 블록(building block)[note title=”24″back] Albert Borgmann, Holding on to Reality: The Nature of Information at the Turn of the Millenniu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176. 하부 구조에 관한 더 상세한 논의로는 다음 글을 참조할 수 있다. “Steps Toward an Ecology of Infrastructure: Design and Access for Large Information Spaces,” by Susan Leigh Star and Karen Ruhleder, 1996, Information Systems Research, Vol. 7, No. 1, 63-92.[/not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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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블랙박스화된 시스템이 고장 나면 출력이 멈춘다. 이 시점에서 블랙박스는 비결절화된다. (© 가넷 허츠)

 

그러나 블랙박스는 기술적 측면에서 이해되지 않거나 접근할 수 없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 전문 기술은 쇠퇴하거나 고장 난다면 완전히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입출력이나 의도된 기능이 작동을 멈추면, 이런 장치들은 대부분의 개인이 변형할 수도 수리할 수도 없다. 우리가 전구를 갈아 끼워 수리할 수 있는 가정용 램프와는 달리, 많은 가전제품 장치에는 사용자가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며 해당 장치가 고장 난 후에, 그 블랙박스를 만드는 데 사용된 전문 기술은 폐기되고 만다(그림 2). 장치의 부품 단위 해체나 비결절화는 쉽지 않은데, 이는 인공물 디자인에 사용하는 고도로 전문화된 설계와 제작 과정 때문이다. 동시대 전자 장치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므로 사용자들은 장치를 폐기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장치의 쇠퇴는 명확하게 계획된 것이다(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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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블랙박스화된 시스템의 내부는 전문가 영역이며 사용자가 수리할 수 없다. (© 가넷 허츠)

 

미디어 고고학의 맥락에서, 블랙박스가 단순히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하나의 블랙박스는 그 내부에서 상호작용하는, 서로 다른 역할과 유효 기간을 가지는 다중의 다른 블랙박스들을 숨긴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가 썼듯, 어떤 사물이 고장 났을 때, 즉 겉보기에 비활성인 시스템이 개방되어 그 내부에 더 많은 객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실제로도 많은 수의 객체가 관계, 역사, 그리고 우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투르가 미디어 고고학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사용했던 방법론적 연습을 고려해 보라.

 

방을 둘러보자. (…) 방 안에 얼마나 많은 블랙박스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블랙박스들을 열어 보라. 내부의 조립 부품들을 시험해 보라. 블랙박스 안의 각각의 부품은 그 내부가 부품들로 가득 찬 블랙박스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고장 난다고 가정했을 때, 몇 명의 사람들이 즉시 그 주변을 물질화하겠는가? 당신이 책상에서 이 글을 읽는 데 조용히 기여하는 침묵의 실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공간으로부터 분리된 시간에서 얼마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가? 이 실체 각각의 첫 번째 발걸음으로 돌아가 보자. 각자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타자의 플롯에 굴곡되지도, 기록되지도, 협력하지도, 움직이지도, 접히지도 않고 자신의 길만을 가는 시간을 상상해 보아라. 어떤 숲에서 우리의 나무를 취해야 하는가? 어느 채석장에서 돌을 조용히 쉬게 해야 할까?[note title=”25″back] Latour, 각주 [22]와 같은 책, p. 185.[/note]

 

예술에 있어서, 객체는 비활성화 상태였던 적이 없으며 한데 묶이거나 해체될 수 있는 다양한 시간성과 관계, 잠재성으로 구성된다. 사물들은, 특히 첨단 전문 기술은 매일 어떤 방식으로든 고장 나며, 비활성 객체의, 죽은 미디어의, 폐기된 전문 기술의 상태로 끝이 난다. 그러나 죽은 미디어는 위험한 독소가 되어 흙으로 되돌아가거나, 좀비 미디어가 되어 새로운 조립 부품으로 재활용된다. 에른스트에 따르면 미디어 고고학은 “죽은 미디어가 아니라 (…) 죽지 않은 미디어(media undead)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형성되는 미디어의 때 아님(untimeliness)이 있다.”[note title=”26″back] Wolfgang Ernst, personal correspondence with Garnet Hertz, 20 October 2009.[/note] 그러므로 볼프강 에른스트와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의 죽은 미디어 프로젝트(Dead Media Project)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좀비 미디어는 사용할 수 없게 된 미디어와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용과 맥락, 개조를 위해 부활하는 미디어와도 관련되어 있다.

 

 

아키비스트/회로 굴곡가

예술가의 역할(figure)에 있어, 기술적 미디어는 공학기술과 아카이브 양쪽 모두에 긍정을 의미해 왔다. 이에 관해 후타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0년대에 현저해진 아티스트-엔지니어의 역할은 (물론 이 두 역할이 한 사람에게서 나타난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최소한 부분적으로 아티스트-고고학자의 역할로 대체되어 왔다[note title=”27″back] Erkki Huhtamo, “Time-Traveling in the Gallery: An Archaeological Approach in Media Art.” In Immersed in Technology: Art and Virtual Environments, edited by Mary Ann Moser with Douglas McLeod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96), 243.[/note].

 

그렇지만 재사용, 하드웨어 해킹, 회로 굴곡의 방법론은 이 맥락에서 점점 더 중심을 차지하는 중이다. 미디어 역사 아카이브의 용도 변경이나 굴곡은 폴 드마리니스나 조우 벨로프(Zoe Beloff), 게브하르드 젱뮐러(Gebhard Sengmüller) 같은 예술가들의 선구적 작업과 강력히 연결된다. 이들의 작업에서 올드 미디어 전문 기술의 다양성은 사변적(speculative) 미래로부터 유사-역사적 오브제의 제작을 위해 변형되고 용도가 변경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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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수리할 수 없는 블랙박스 시스템의 내부는 부분적으로 비전문가에 의해 조종되거나 굴곡될 수 있다. 저자들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역사적 아카이브 또한 굴곡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가넷 허츠)

 

〈에디슨 효과〉(1989-1993)나 〈회색 물질〉(1995)과 같은 드마리니스의 다양한 사운드 기반의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후타모는 “생각-수선공(t(h)inkerer)”으로 불릴 수 있는 아티스트-고고학자에 대한 개념을 제안한다[note title=”28″back] Huhtamo, 각주 [4]와 같은 책.[/note]. 가전제품 시대의 예술가는 고고학적 회로 굴곡가와 해커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미디어 고고학과 동시대 미디어 생산의 정치적 아젠다 사이 연결점을 만든다. 역사적 아카이브와 가전제품의 블랙박스들은 깨져서 열리고, 굴곡되고, 변형된다(그림 4.).

 

 

미디어 고고학적 시간: 산 주검의 시간

우리는 이제 계획적 쇠퇴, 정보와 전자 폐기물의 물질적 본성 같은 다양한 부품들을 한데 모으고자 한다. 계획적 쇠퇴는 소비자 전문 기술 순환주기의 기저 논리로 도입되어 물질적 정보 기술 문화에 삽입되었다. 이 물질적 정보 기술은 그 자체가 미디어 기능이 소비된 후에 남겨진 화학 물질, 유독성 부품 및 기타 잔여물의 원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보 기술은 수명이 짧지 않으며 그러므로 언제나 완벽하게 죽을 수 없다는 깨달음은 생태학적이고 미디어 고고학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물질적 아상블라주 형식의 정보 기술 또한 인간 중심의 사용 가치에 제한되지 않는 유효 기간을 지닌다. 미디어 문화 오브제와 정보 기술은 실질적, 시간적 실체로서의 토양이나 대기, 자연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자연이 정보 기술의 몸체를 이루는 것처럼 – 구타페르카(gutta-percha)가 19세기 전신선 절연에 얼마나 필수적인 물질이었는지, 콜럼바이트-탄탈석(columbite-tantalite)이 동시대 다양한 첨단 기술(high-tech) 장치에 얼마나 필수적인 광물인지 생각해 보라 – 이 장치들도 최종적으로는 자연으로 돌아간다[note title=”29″back] 구타-페르카는 자연 라텍스 고무로 열대 나무에서 만들어지며 동남아시아와 북오스트랄라시아가 원산이다. 콜럼바이트-탄탈석, 다른 말로 ‘콜탄’은 둔탁한 검은 금속성 광물이다. 기본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 동쪽에서 발견되며 이 물질의 수출은 현재 콩고에서 벌어지는 분쟁 상황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note].

 

요약하자면 정보 기술은 정치 경제와 자연적 생태학을 가로지르는 다중의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note title=”30″back] Félix Guattari, The Three Ecologies. Trans. Ian Pindar and Paul Sutton (London and New Brunswick, NJ: Athlone Press, 2000).[/note]. 이 가타리주의(Guattarian)는 사회적인 것, 정신적인 것, 육체적인 것, 비유기적인 것과 동물 사이의 상호관계에 영향을 주는 중첩된 생태계(overlapping ecologies)에 대한 인식인 생태철학(ecosophical)의 입장과 미디어 생태학을 연결한다. 션 큐빗(Sean Cubitt)을 따라, 우리는 스크린과 정보 기술 미디어의 고고학이 과거만을 볼 것이 아니라 스크린 내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미래 지향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완전히 다른 견해를 밝히기 위함이다.

 

디지털 영역은 영구적 혁신과 해체에 의해 결정되는 영역을 위한 아방가르드다. 디지털 문화의 내장된(built-in) 쇠퇴, 지난 모델의 끝없는 폐기, 배터리와 휴대전화, 모니터, 마우스를 버리는 낭비벽… 그리고 중국의 어느 재활용 마을로 보내지는 모든 중금속과 유독성 물질들… 그것이 바로 디지털 아방가르드다[note title=”31″back] Sean Cubitt interviewed by Simon Mills, Framed, online at 〈www.framejournal.net/interview/10/ sean-cubitt〉.[/note].

 

그러므로, 이 재조합(remixing), 콜라주, 수선의 고고학은 뒤샹이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아니라 스크린과 전문 기술의 개방에서 시작된다.

 

미디어 고고학적 방법은 미디어 문화적 역사들의 측면에서 인간 세계의 복잡하고 중첩된, 다중 스칼라 시간성[note title=”32″back] 스칼라란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크기만 있는 물리량을 뜻한다. 물리량의 크기를 나타낸 수에 단위를 붙여 그대로 사용하며, 질량이나 온도, 에너지 등이 이에 속한다. 벡터와 함께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물리량의 한 형태이다. 같은 반에 속한 학생 수, 전자가 가지는 전하량, 길이, 에너지 등이 스칼라량에 속하며 크기를 나타내는 수에 단위를 붙여서 그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다중 스칼라 시간성이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 인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이나 생물들이 포함되는 여러 개의 시간을 가리킨다.(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6915&cid=40942&categoryId=32227)(역자 주)[/note]을 개척해 왔다. 그러나 생태학적 위기의 중심에는 보다 철저한 비인간적 관점이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미디어 고고학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굴곡하는 것은 생태철학적 잠재성을 이용하는 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회로 굴곡이나 하드웨어 해킹, 죽은 미디어를 새로운 삶의 순환 주기로 재사용 및 재도입하는 다른 실천들이 포함된다. 새로운 구축 하에 결집된 그러한 물질과 아이디어는 좀비가 되어 그들 자신과 역사를 전달할 뿐더러, 기술적 미디어와 연루된 비인간적 시간성을 상기시킨다. 기술적 미디어는 하부-현상학적(sub-phenomenological) 속도와 빈도로 작동하고 처리될 뿐 아니라[note title=”33″back] 그러한 숨겨진, 부분적으로 추상적인, 그러나 전적으로 실제이고 물질적인 “일상생활의 인식론”은 알고리드믹스 인스티튜트가 미디어 고고학적 맥락에서 연구한바 있다. www.algorhythmics.com/[/note], 수천 년의 비선형적, 비인간적 역사(his-tory)인 자연의 시간성을 활용하기도 한다[note title=”34″back] Cf. Manuel DeLanda, A Thousand Years of Non-Linear History (New York: Zone Books, 1997).[/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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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정치경제를 참조하여 배치된 미디어의 단계. 뉴 미디어와 미디어 고고학은 가트너 그룹의 광고 사이클(Gartner Group Hype Cycle)과 소비자 수용 누적 곡선(Cumulative Consumer Adoption Curve)의 다이어그램 위에 겹쳐져 있다. 이 다이어그램은 특정 전문 기술의 경제적 성숙과 수용 그리고 비지니스적 적용의 그래픽 재현이다. (© 가넷 허츠)

 

결론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문 기술은 뉴미디어 단계 너머로, 그리고 소비재 단계를 지나 이동해 왔다.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이미 쇠퇴했으며 고고학적 단계에 있다. 아마추어리즘과 취미주의 DIY 실천은 전문 기술의 초기 수용뿐 아니라 쇠퇴 단계를 특징 짓는다. 연대기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는 1990년대의 투기적 기회 단계(speculative opportunity phase)로부터 2000년대의 광범위한 소비재 수용을 지나 고고학적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로 재사용, 재조합, 샘플링에 관련한 연구는 기술적 잠재력에 관한 논의보다 더욱 중요해졌다(그림 5.[note title=”35″back] 가트너 그룹의 광고주기 이론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라. Jackie Fenn and Mark Raskino, Understanding Gartner’s Hype Cycles, 2009. Gartner Group.[/note]). 더 나아가, 만약 시간성이 기술적 미디어 장치 – 의식적 인간 지각의 한계 밖에 존재하는 미시시간성을 활용하는 도식과 실제 회로 – 에 점점 더 순환되고 변조되고 저장된다면 우리는 그것과 비슷한 회로 굴곡과 예술, 그리고 행동주의 실천을 분석적이고 창조적인 방법론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아카이브를 향한 전회는 광의적 의미에서 회로, 스위치, 칩(chip)과 다른 첨단 기술 프로세스들을 망라한다. 이러한 인식론-고고학적 과제는 예술적 흥미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주체성, 자연, 그리고 전문 기술 전반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생태계 사이 관계를 이해하고 재창안(reinventing)하는 생태철학적 영역을 활용한다.

 

미디어의 새로움에만 집중하는 견해에 대한 반대 전략으로, 미디어의 죽음과 관련한 주장들이 유용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미디어가 절대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부패하고, 썩고, 개선되고, 재조합되고, 역사화되고, 재해석되고, 수집된다(그림 5.를 보라). 그것은 또한 토양에 잔류물로 머물고 대기 중에 실제 죽은 미디어로 머물거나, 예술적 수선의 방법론으로 재전유된다.